바위를 받치는 나뭇가지의 심성이란...

1.

서초동에 모인 사람들의 숫자를 놓고 설왕설래하는 건 많이 웃긴다. 그냥 "엄청 모였다"라고만 해도 된다. 사진들은 괜히 찍고 동영상은 뭐하러 올리나? "엄청 많이" 모인 거 다 증명할 수 있잖아? 이미 그 정도 되면 숫자의 의미는 없다. 아닌 말로 숫자로 자꾸 뭘 따지면 그게 다 향후의 부담으로 남는다. 지율이 단식한 기간을 따지기 시작하면 100일 이하 단식은 하지 않으니만 못하게 되듯.

2.

검사에게 조사 한 번 받아본 적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아마도 저 수많은 군중의 거의 다일 듯. 한편 저 사람들 중 검사이거나 검사가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아마도 10 손가락 안에 들 것. 무섭기가 가렴주구보다 더한 것들이 검사인데, 검사 까는 일에 저리 많은 사람이 몰린 이유는 뭘까? 그 심성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한 비판과 구분 정립은 불가능할 듯.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용자 삽입 이미지

북한산 형제봉을 지나다보면, 거대한 바위 밑에 사진처럼 나뭇가지를 무수히 받쳐 놓은 걸 보게 된다. 저 바위가 얼마나 무거울까? 100톤? 200톤? 저 바위의 한쪽이 살짝 들린 채로 한 자리를 지킨 게 몇 년 쨀까? 100년? 1000년?

사람들이 받쳐놓은 저 나뭇가지는 만일 저 바위가 움직거린다면 아마 그 즉시 다 부러져 나갈 거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뭇가지를 받친다. 게중에는 그냥 재미로 갖다 댄 사람도 있겠지만, 상당한 사람들은 저 바위가 구르지 않기를 바라는 신심으로 받쳤으리라 짐작한다.

그 사람들이라고 해서, 자신이 받쳐놓은 나뭇가지가 한 순간이면 그냥 힘도 못 써보고 가루가 될 거라는 걸 몰랐을리 없으리라. 그럼에도 저렇게 하는 이유는 뭘까?

4.

전철 안에서, 하루 피죽 한 그릇이 아쉬울 것 같은 초라하고 초췌한 어른이 이재용이 재판받고 감옥가는 걸 비판한다. 경제를 살려야할 판에 이재용을 가두면 삼성은 어쩌란 거냐? 이게 그 분 말씀 요지다. 물론 거기 대고 조목조목 따져 비판할 건수는 많겠다만, 그보다도 궁금해지는 건 어째 하루 먹고 살기도 빠듯한 사람들이 자신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삼성의 총수를 걱정하는 걸까? 삼성 이재용에게 심정적 동화를 일으키는 이 감수성은 무엇인가?

5.

어떤 적대가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킴으로써 무조건적 편들기가 벌어질 수는 있겠다. 그렇다면 그 적대의 관계에서 편을 정한 자들끼리 서로 조지고 죽여서 끝장을 보면 문제는 해결될 것인가? 저 서초동의 촛불은, 아마도 조만간 이 모든 개혁논의가 다 개뻥이었음을 알게 되겠지만, 그때 과연 저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될까? 아니면 그나마라도 반 걸음 더 나은 곳으로 나가게 되는데 자신들이 기여했다고 뿌듯해할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19/09/30 10:00 2019/09/30 10:00
Trackback Address :: 이 글에는 트랙백을 보낼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