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호치민 10 - 통일궁을 돌아보며

호치민에는 통일궁이 있다. 프랑스 총독이 사용하던 궁인데, 프랑스가 물러간 후 '독립궁'이라는 이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남베트남 공화국의 대통령 집무관저가 되었다. 한국의 청와대와 같은 급이었던 거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의 작전본부로 사용되다가 통일 이후 '통일궁'이 되었다.

수도인 하노이는 국가차원에서 관급공사 및 관 주도의 외자유치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이곳 호치민은 민간자본의 유입이 많다고 하는데 그중 상당한 비중이 바로 '보트피플'들의 것이라고 한다. 도이머이 정책 이후 외자유치가 활발해지고 경기부양이 속도를 내는 과정에서 과거 남베트남 패망 당시 보트 타고 나라를 떠났던 사람들이나 그 후손들이 호치민 쪽에 자본을 넣고 있다는 거다.

분위기가 하노이와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는데, 워낙 하노이를 갔다온 게 너무 오래 전 일인지라 섣부르게 그런 느낌을 말하지 않았는데 친구는 실제로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는 말을 해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그럴싸 하다.

동네를 돌아다니다보면 간판이나 골목 여기저기에 '사이공'이라는 구 도시명을 많이 사용하는 걸 볼 수 있다. 호치민이라는 말은 그저 공공기관이나 도로명 표지판에 등장할 뿐이고, 그 외에는 호치민이라는 이름을 건 곳도 없지는 않지만 압도적으로 사이공이라는 이름을 많이 걸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치민 시민들 중 연식이 된 분들 등 상당수는 호치민이라는 도시의 이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며, 특히 보트피플이었거나 그와 연관된 사람들은 호치민이라는 이름에 대해 시큰둥하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예를 들어, 만일 남북한이 전쟁을 했는데 북한이 이긴 상태에서 통일이 되었다고 치자. 그랬더니 조선인민공화국이 남한을 점령한 후 서울의 이름을 '김일성 시'로 바꿔버렸다. 그리고 청와대를 '통일궁'이라고 해놓고 승전기념관으로 바꿔버렸다. 그렇게 되었을 때 원래 서울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하게 될 것인가? 서울 점령 당할 때 인천항에서 빠져나가 보트피플로 전전하다가 겨우겨우 목숨 부지하고, 어찌어찌 해서 다시 가계를 일으켜 세웠는데 마침 '김일성 시'를 개발하게 되고 거기에 외자를 유치한다고 하면, 그렇게 보트피플로 떠났던 사람들이 평야에 투자할까 '김일성 시'에 투자할까. 뭐 이런 류의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인다.

아무튼 그러저러한 정황과 사람들의 태도 등을 보면서 통일궁을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더랬다. 입장료는 일반적인 것과 특별한 전시가 각각 40000동(2000원)인데 둘을 합쳐서 동시에 관람하게 되면 65000동으로 깎아준다고 해서 함께 보는 표를 끊었다. 그런데 통일궁을 죄다 돌아봐도 일반전시와 특별전시가 구분되어 있지 않았다. 내가 몰랐을 수도 있으니 그러려니 한다. 흥!

그렇게 통일궁 이곳 저곳을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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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 사진 순서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네. 이 진보블로그 툴은 어째 아무리 써도 영 적응이 안 되냐... 뭐 어쩔 수 없고, 다시 정리하자니 귀찮아서 관두기로 한다.

호치민시 역사박물관을 둘러볼 때 마침 일본관광객들이 가이드를 따라다니고 있길래 그 덕에 박물관의 전시물에 대한 설명을 잘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마침 통일궁에는 한국인 관광객들이 있었고, 이주민인지 아니면 한국에서부터 따라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인 가이드가 따라붙어 설명을 하고 있었다. 호치민시 역사박물관에서 덕을 본 바가 있었기에 이번에도 따라다니면서 귀동냥을 할 요량으로 관광객 무리에 바짝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 가이드 뭔가 이상하다. 관광오신 분들도 대부분이 60대 후반 이상의 노인들이었는데, 가이드 역시 연세가 꽤 들어보이는 분이었다. 이 가이드는 다른 전시실에서는 그다지 말도 없고 흥미도 없는 것처럼 시큰둥하니 별 액션이 없었다. 그러다가 지하 벙커-과거 미군이 작전본부로 사용하던 곳-으로 들어가 전황지도며 전쟁관련 물품이 전시된 곳에 가자 갑자기 물 만난 물고기처럼 온갖 말을 풀어대는데, 이게 가관인 게 베트남 전쟁에서 얼마나 한국군이 잘 싸웠는지, '채명신 장군'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며 베트남에서 어떤 무공을 쌓았는지 막 이런 설명을 하는데 갑자기 낯이 확 뜨거워졌다.

입구에 전시된 땡크가 이 궁의 담장을 깨부수며 돌입했던 전차라고 한다. 그 전차가 돌입하던 그 순간은 전 세계로 타전되었다. 바로 그 때, 아마도 미군들과 대통령집무실에 있던 자들 등 남베트남의 관료들이 저 사진의 지하탈출로를 통해 사이공강까지 탈출을 했으리라.

승리한 북이든 패배한 남이든, 전쟁은 모든 사람들에게 물리적 상처를 남기고 정신적 충격을 남긴다. 그 과거가 전시된 공간에 지금은 까페가 들어섰고 아름드리 나무가 자라고 있고, 거대한 분수대가 물을 뿜어대고, 그 앞에 펼쳐진 대로에는 오토바이와 차량이 넘실대지만, 전쟁의 상흔이라는 건 이 도시 곳곳에 아직도 흔적들을 남기고 있다. 거기에서 남의 땅에 들어와 용병으로 전쟁을 수행하고 그 핏값을 모아 재생의 발판을 마련했던 나라의 역사가 함께 묻어 있다. 전쟁에서 얼마나 잘 싸웠는가를 이야기하는 그 가이드는 어쩌면 그때의 기억으로 삶의 연장을 이어가는지도 모르겠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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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30 10:16 2019/10/30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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