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 칼럼을 대하는 어떤 태도
그러고보니 장정일의 칼럼이 입길에 오르락거리고 있네. 뭔일인가 싶어 봤더니 장정일의 연속 칼럼이 상당한 논란이 되고 있나보다. 하긴 뭐 장정일 글 두고 논란을 벌일만한 사람들이 다 거기서 거기다만.
난 장정일의 글들이 보여주는 얕은 철학을 따지고 싶진 않다. 장정일이라고 해서 뭐 언제나 시원한 이야기만 하라는 법도 없고. 오히려 난 장정일의 글 자체보다는 그 글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재미진다.
장정일이 까고 있는 '좌좀'이나 혹은 '입진보'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허수아비치기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내 주변에도 자본주의 사회에서 누릴 거 다 누리고 있으면서도 당장 혁명하지 않으면 다 반동분자 식으로 '쎄게' 말하는 사람들 꽤 있으니까.
지난 칼럼에서도 그렇고 이번 칼럼도 그렇고, 좌파연 하는 자들 중에는 대중들의 상태를 언제나 몽환 속에 빠져 있는 약쟁이들 수준으로 생각하는 자들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현상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사고체계를 갖춘 대부분의 '좌파'들은 장정일이 이야기하는 수준으로 대중을 생각하진 않는다.
예를 들어 장정일이 이번 칼럼에서 언급한 김지하 같은 경우, 그게 김지하라는 이름의 위세와는 걸맞잖게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 기실 김지하는 대중'운동'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김지하가 '엘리트 운동권'인 건 그가 유수의 대학에서 짱 먹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맞는데 그의 인식수준이 '엘리트'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 웬만한 좌파들은 로자 룩셈부르크가 갈파한 대중의 속성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장정일이 이야기하는 식으로 "광장이 여태껏 좌파의 전능감을 손상시켜" 왔다고 생각하는 좌파는 별로 없다. 뭐 어쨌든 장정일의 글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서 끝내기로 하고.
운동권이 장정일을 까는 건 뭐 당연하다고 본다. 나부터도 저 두 칼럼 수준이라면 얼마든지 까고 싶기도 하고 깔 것도 천지삐까리고. 그런데 재밌는 현상은, 그동안 입바른 소리는 다 하면서 사회의 문제를 거론했던 주요 지식인들이, 이번에는 갑자기 입장을 바꿔 검찰개혁을 위해선 조국을 살려야 한다고 설레발이 치던 그 사람들이, 이 사람들은 과거에 장정일 따위 사문난적 취급이나 하던 사람들인데, 급작스레 지난번 칼럼을 막 들고 오면서 장정일이 너희 좌파들 죄다 개쉑기래~! 이러면서 나오는 것이었다. 아니 지들이 언제부터 장정일 말 들었다고.
이들 지식인들은 장정일에 대해 쥐뿔 대학도 못 나온 생양아치가 글빨 좀 있다고 우쭐 거리면서 너절한 사변이나 늘어놓고 있다고 생각하던 자들인데, 난데없이 뭐가 이뻐서 장정일 글을 막 들고 나오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런데 더 희안한 건 그랬던 그들이 이번의 장정일 칼럼에 대해선 입 닥치고 있다는 거. 아마도 장정일이 칼럼 중간에 "자기들이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조국도 아니면서"라고 써놓은 부분에서 턱 하니 목에 뭐가 걸렸기 때문이 아닐까 싶긴 하다만, 아니 ㅆㅂ 그래 앞에서 그렇게 환호했으면 뒤에 것에도 환호해야 일관성이 있지 이게 뭐여. 응? 지들 입장 편들어줬다가 졸라 까이고 있으면 같이 뭔가 편들어주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지식인의 가벼움이 어떤 것인지를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요즘이다. 그래서 난 이제 지식인 따위는 염을 내지 않기로 했다. 어떤 자격을 논할 때는 한 없이 냉정한 척 하지만, 정작 그들이 환호하는 기준은 대중을 뭐라고 하기 전에 자신들부터 귀에 발린 소리만 좋아하는 것이고, 남들에 대해서는 내로남불의 이중성을 비난하지만 정작 자기 자신들의 내로남불에 대해선 변명하는 자들. 이런 자들이 지식인인냥 행세하는 세계가 헬이 아니면 뭐가 헬인지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장정일 까는 건 그냥 남들이 까는 걸로 대신한다. 장정일까지 까기에는 저 지식인들의 작태가 너무 한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