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로 먹기의 달인들
아주 오래 전에 어떤 재벌 총수가 "요즘 대학 나온 신입사원들은 할 줄 아는 게 없다. 대학에서 뭘 가르치는 거냐? 애프터서비스 해달라고 할 수도 없고..." 운운하여 파란을 일으킨 일이 있다. 워딩이 정확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용은 딱 이거였다. 이 블로그에도 그와 관련된 글을 올린 것 같은데 도대체 찾질 못하겠네... 내 글도 제대로 검색을 못하는 걸 보면 나부터도 대학에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 헐...
암튼, 교육문제가 나오면 어김없이 이 재벌총수의 말이 생각나는데, 왜냐하면 나는 이 말이 '날로 먹는다'는 말의 참 표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사하는, 사업하는 자들이 밑천도 들이지 않고 이윤만 뽑아먹으려는 심뽀를 가장 잘 보여주는 태도였다. 샤일록만도 못한 자들이라고 비웃어줄 만한 것이었는데, 정작 한국사회는 이 재벌총수를 비웃긴커녕 이때부터 그 비위를 맞추느라 교육체계가 일변한다. 이 이후 한국 대학은 본격적으로 취업준비를 위한 취준생양성학원으로 전환한다. 아, 물론 그 이전이라고 해서 한국대학이 학문의 요람 역할을 온전하게 하고 있었다는 건 아니지만.
기업이 이윤을 뽑아내기 위해 인력을 충원할 때, 그 인력이 기업이 원하는 수준의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능력이라는 것이 입사하자마자 기업이 요구하는 이윤을 바로 확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그 기업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 기업이 요구하는 기능을 단시간 내에 확보할 능력, 그 능력을 이용하여 기업이 요구하는 이윤을 확보할 능력이 해당 능력이다. 그렇다면 애초 가지고 있었던 자질을 바탕으로 기업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만들 책임은 기업에게 있고, 기업은 이를 위하여 비용을 들여야 한다. 이게 투자다.
만일 기업이 입사 전에 기업이 필요한 모든 제반능력을 갖추고 들어오길 바란다면 기업은 채용 전에 예비사원이 될 수 있는 누군가의 능력제고를 위하여 비용을 투자하고 교육에 개입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거 하나도 없이 교육은 사비로 하도록 만들어놓고 나중에 이윤만 뽑아먹겠다고 하면 그건 심각한 문제다. 더구나 오늘날은 과거처럼 도제식으로 기능인을 양성하면서 기술 배울 때까지 부려먹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다. 하물며 옛날에 도제식으로 할 때에도 임금은 못줘도 먹여주고 재워주는 건 했다.
부산 시내버스 업체들이 견습기간 중에 월급을 안 줬다고 한다. 회사측에서는 "견습기사에게 무상으로 운전 실습 등 테스트 기회를 주고 있다, 견습기사가 운전하다 사고가 나면 회사가 부담해야 할 보험료가 오르는 등 회사도 피해를 입을 수 있는데, 이를 감수하고 견습기회를 제공한다"고 해명했단다.
국제신문: 부산 시내버스 업체들, 기사 견습기간(3주~최대 2달) 월급 안 줬다
아니, 씨앙 그럴 거 같으면 견습이라고 하지 말고 회사 부설 학원을 차리던가 해야지... 사고처리 등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운전연습시키면서 '견습'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나? 견습기간 중 임금차등을 두는 건 예전에도 있었고(통상 70% 지급 선)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다만, 부산 시내버스 업체들의 행태는 근로기준법 위반일 뿐이다.
뭐든 집어 넣는 게 있어야 나오는 게 있다. 집어 넣는 것보다 나오는 것에서 뽑아 먹을 것이 더 많은 게 이윤이고, 이러한 원리를 극대화한 체제가 자본주의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간에, 뽑아 먹고 싶으면 집어 넣어야 하는 원리는 변함이 없다. 이 원리를 부정한 채, 들이는 거 없이 빼먹기만 하려고 하는 건 '사업'이라고 하지 않고 도둑질이라고 한다.
도처에 날로 먹으려고 작정한 것들 때문에 사람들 살아가는 일이 점점 팍팍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