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발로 호치민 14 - 돌아와서
돌아다닌 걸 이렇게 정리해본 것도 오랜만인데다가, 그나마 좀 꼼꼼이 정리한 건 처음이지 싶다. 어차피 일기장에 써놓는 것이고 누구 보여줄라고 한 것이 아니니 괴발새발 써도 부담은 없다만, 그래도 좀 잘 정리하고싶었는데 역시나 중구난방이 되어버렸구나. 하긴 뭐 이나마도 정리해놨으니 뭔가 남겼다는 생각이 들고, 그거면 됐지 뭐.
처음부터 어딜 돌아보고 뭘 해보고 하는 여행이 아니었다. 진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좀 갖자는 것이었다. 그런 시간을 가지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낯선 곳을 그냥 하염없이 걸어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어디까지 얼마나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걷고 걸으면서 생각을 비우다보면 그때부터 뭔가 차오르는 것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이런 질문들을 머리 속에 넣고 그 답을 찾아보자고 떠난 여행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답을 얻지는 못했다. 기간이 짧아서일 수도 있고, 뭐 여러가지 원인이야 만들면 되겠지만, 그건 다 변명일 뿐이고. 아직 머리 속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지 뭐 별 거 있나. 그렇게 쉽게 답이 나올 문제같았으면 이렇게 헤매고 있지도 않았을 걸.
호치민의 밤은 화려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화려해질지 모르겠다. 마지막 밤이 깊어간다. 마지막 밤이었지만 뭐 별다른 이벤트는 없었다. 친구의 집에서 바라본 전망이 매우 아름다워서, 오늘이 지나면 언제 또 이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을지 몰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 잘 쉰 친구의 집을 정리한다. 빼꼼이 보이는 침대방은 나름 출입금지구역이었고, 내 침소는 저 거실의 소파였다. 오래전 자취생활할 때와 분위기는 비슷했지만 환경은 압도적으로 훌륭한 공간이었다. ㅎ... 소파도 나름 괜찮은 침구역할을 해줬고. 혼자 쓰는 자취방이 뭐 다 똑같겠지만, 암튼 이런 공간에 있으면 나가기 싫어진다. 조만간 또다시 이용할 수 있을라는지 모르겠다. ㅎ
이제 이번 여행의 마지막이 될 까페농을 비웠다. 언제 꼭 다시 왔으면 좋겠다. 이 커피는 마셔도 마셔도 질리지를 않는다.
딴손녓 공항에 피어있는 난꽃. 예쁘다. 이제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에 혹시 오게 되면 이 꽃이 있던 자리엔 뭐가 있게 될지.
하긴 뭐 여행에서 답을 찾겠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었는지 모르겠다. 잘 먹고 잘 돌아다녔다. 답을 찾고 자시고 뭔 의미가 있겠는가? 잘 놀고 잘 쉬었으면 됐지. 고민은 이제부터 천천히 다시 시작해보도록 하고.
굳바이 사이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