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우면 시험 보고 오라고?

공장일이라는 게 원래 "닦고 조이고 기름치자" 이 구호 하나로 정리되는 거다. 이건 어떤 공장이든 구별이 없다. 정리정돈이 되어 있지 않은 현장에서는 항상 사고가 상존하며 효율도 떨어진다. 노동자의 건강과 생명에 직간접으로 관련이 있다.

다니던 공장은 먼지가 많이 나는 곳이었다. 특히 사료생산을 하는 현장은 먼지가 이루 말로 할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기계가 돌아가는 곳은 물론이려니와 문 닫고 환기시설을 돌리는 컨트롤룸 역시 먼지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그래서 이곳은 작업이 끝나면 먼지를 제거하는 게 일과 중 하나다.

대졸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을 담당한 나의 입사 동기는 고졸이었는데, 군면제를 받은 통에 꼬박 죽치고 현장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놈이었다. 동기들 연차가 5년이라고 해도 군복무 만기제대 한 놈은 현장으로 따지만 고작 2년 짬밥에 불과하지만, 이 친구는 꽉 찬 5년인 거다.

현장실습이야 당연히 현장 작업자가 가장 잘 아는 것이고, 5년차 기능공이면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하는 것쯤이야 껌씹는 정도다. 그래서 대졸 신입사원들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했는데, 문제는 이 신입사원들이 연수가 끝나면 번개처럼 사라져버린다는 거.

뒤치닥거리를 노상 혼자 떠맡던 이 친구놈이 일주일 오리엔테이션 마지막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이고 하니 현장 뒷정리를 같이 합시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신입사원들이 뜨악한 표정을 지었는데 그 중 하나가 "아, ㅆㅂ 내가 청소 할려고 대학 나온줄 아나"라는 말을 뱉었다.

그 말을 들은 동기놈이 빡이 쳐서 "이 ㅆㅂ 그럼 난 니들 시다발이하려고 5년 동안 뺑이친 줄 아냐?" 이러는 바람에 싸움이 났는데, 공고가 괜히 공고가 아니고. 공치는 날이 많아 공고고, 공치는 동안 사고치는 놈들이 공고생인지라 신입들이 봉변을 된통 당했다. 뭐 지들이 건수를 만들었던 터라 조용히 넘어가긴 했다만.

지금보다는 덜 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당시에도 고졸사원과 4년제 대졸사원의 처우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일단 기본급이 너무 달랐기에 임금비교가 의미가 없는 수준이었다. 승진도 마찬가지여서 공고졸은 5급부터 시작하지만 4년제 대졸은 3급부터 시작했다. 고졸 출신이 대리 다는 일이 대단한 일이었지만 대졸이야 뭐 입사하고 한 2~3년 지나면 대리 다는 거야 식은 죽 먹기였고.

상대적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정도가 더 심한 것 같다. 특히 비정규직이라는 업무형태는 고졸/대졸 비교하는 것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차별이 심하다. 차별은 해소되기는커녕 갈수록 더 교묘해지고 더 심해진다. 그러니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구호가 여전히 의미를 잃지 않는 것이고.

지금 정권이 내세운 가치지향은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결과는 정의롭게"였던가. 기회의 평등 따위 개나 줘 버리는 통에 이제 조금 이야기되는 것이 과정의 공정성인데, 최근 그나마 꽤 괜찮게 생각했던 청년 하나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구호를 비난하면서, 그렇게 아쉬우면 시험 쳐서 들어오면 될 것 아닌가라는 말을 하는 통에 정신이 아득해지고야 말았다.

저 친구가 저런 이야기를 하는 정도라면, 다른 청년들은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 걸까? 그들이 말하는 공정은 과연 시험이면 족한 건가? 그들이 시험을 치기 위해 들어 앉아 있는 동안 현장에서 갈고 닦고 익힌 어떤 기술들은 공정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인가?

물론, 시험은 선발의 객관성을 보장하는 지표로서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결론을 제시한다. 그 외에는 자칫하면 개인적인 능력과는 별개로 연줄이나 부정한 방법이 결부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유독 시험의 공정성에 사람들이 매달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시험은 역시 공정한가?

어제 JTBC 신년 토론회를 보는데, 진중권과 유시민이 부딪쳤다. 유시민은 아웃파이터였고 진중권은 인파이터였다. 유시민이 언제부터 경기 스타일을 바꿨는지 모르겠지만 별로 효과는 없었던 듯. 아무튼 그 와중에 조국 부처가 유학간 아들래미 시험을 대신 쳐줬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피식하고 말았다. 그게 업무방해로 처벌이 될 사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시험의 공정성이라는 신화는 이렇게 엉뚱한 곳에서 깨지게 된다.

공무원 시험 준비한다고 노량진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 과정이 일체 공정할까? 기회의 평등은 애초부터 없었듯이, 즉 그 위치까지 갈 수 있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이미 갈려 있고, 거기 안에서조차 공시에 대응할 수 있는 여건이라는 게 공정하곤 거리가 멀다. 그런데 시험지 답안지를 작성할 수 있는 것이 공정한 것이라는 걸 뭘로 확신한단 말인가?

공정은 말로 되는 게 아니다. 어제 토론회에서도 언론의 공정성에 대한 논의가 계속 되던데, 솔까 그런 말이야 개나 소나 다 할 수 있는 이야긴 걸 무슨 교수씩이나 되설랑은 뭔가 엄청난 이야길 하는 것처럼 인상 구겨가며 근엄하게 목소리를 높이는지.

비정규직 청소노동자들이든 톨게이트에서 수납하다 졸지에 비정규직으로 전락한 노동자든, 이 사람들은 "시험 쳐서 그 자리에 온" 사람들에게 큰 소리 칠 자격이 있다. 니들이 책상머리 앉아 시험 친답시고 공부만 하고 있을 때 난 여기서 뺑이쳤다고. 그걸 인정하는 게 공정이고 정의다. 정의는 결과의 평등이지 기회의 평등 따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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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17:07 2020/01/0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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