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또 구라쟁이들이...
많이 팔렸다니까 뭐 링크까지 걸어줄 필요는 없겠다. 내 일기장에 올린 거 누가 보기야 하겠냐만, 블로그의 특성상 한 번 훑으러 왔다가 궁금해서 링크따라 갈 사람이 아주 없을 거라고 생각할 수 없으니.
난 자기기망을 하는 사람들이 셀럽이 되어 이렇게 각광받는 현상을 어떤 병리학적 용어로 설명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당신이 옳다"라는 책이 벌써 25만부나 팔렸단다. 정혜신 이명수 두 사람의 이름값도 있었겠다만, 한국사회는 여러모로 사람들의 마음이 흉흉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드는 거다.
이 두 사람이 그동안 해온 일을 일체 폄하하고 싶진 않다. 낙심천만한 사람들을 만나서 감정을 교류한다는 건 나 같은 사람은 사실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니까. 이들은 그렇게 해왔고. 이 두 사람이 대중에게 보여진 모습이나 높은 평판 외에 가려진 비판적 부분도 있다. 특히 노동권과 관련한 일련의 문제들에 대해 아직 이해를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 어쨌든 그건 그렇고.
그런데 이 기사의 인터뷰 안에서조차 자신들의 이해와 태도가 자신들이 하는 말과 괴리되는 것을 자신들은 모른다. 예컨대 타인에 대해 '충조평판(충고/조언/평가/판단)'하지 말라고 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직업이 바로 충조평판하는 것이고, 이 기사에서조차 독자들에게 충조평판하고 있다.
인간의 관계의 동물이고, 이 두 사람 역시 바로 인간의 그 특수성에 기해 지금의 활동을 하고 있다. 인간의 관계는 서로를 상처줄 수도 있지만 상처입은 사람을 보듬어줄 수도 있다. 이 두 사람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후자의 역할을 해왔다고 주장하고 있고 통상의 사람들도 그렇게 여긴다. 그런데 그 과정은 그저 들어주고 고개 끄덕이고 "네가 옳아"라고 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인간 간에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여러 장치들 중 하나가 바로 '충조평판'이다. 이거 없이 관계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하다못해 이명수 정혜신 조차도 그들이 수행하던 심리치유라는 과정이 어떤 말로 대체한들 '충조평판'을 벗어날 수 있는가? 조작간첩사건의 고문생존자들에게 하는 "아, 그러셨어요? 잘 견디셨어요. 생존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이 말은 그냥 감사의 덕담인가, 아니면 '충조평판'인가?
기사에도 나오지만, 이 에피소드를 보자. 가슴에 한이 맺힌 한 아내가 "운전면허가 있었다면 트럭을 몰고 경찰청 정문을 들이받고 나도 죽고싶다"고 했더니 정혜신은 "운전면허가 왜 필요해요. 들이받고 말 건데. 면허 없어도 돼요!"라고 했다. 자, 들이받고 죽을 건데 굳이 운전면허 따위 없어도 된다는 이 말은 그냥 저질러보라고 하는 말인가, 아니면 그런 마음 먹지 말라는 말인가. 아니면 그냥 아, 당신 생각이 그런 거였어?라는 표현이거나 더 간단하게는 "우와! 그런 생각을!"이라는 감탄사를 문장으로 풀어낸 것인가?
난 두 사람을 만날 때마다, 아 옛날 무당들이 하던 일을 요새는 심리학자들이 하는구나라고 느끼게 된다. 이 책도 그렇고. 나는 말로써 혹은 안아줌으로써 인간의 감정이 치유된다고 믿지 않는 입장이라 더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이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를 건 없다. 물론 이 두 사람은 "자기 존재가 온전히 받아들여지면 사람은 합리적인 존재로 돌아온다"고 하는데, 여기서 중요한 건 '합리적'이라는 게 뭐냐는 거다. 두 사람의 관점에서 합리적? 아니면 세간에서 통용되는 일정한 수준에서 '합리적'? 혹은 그 당사자가 여지껏 혼란스러워했던 가치판단이 명료해지면서 세워지는 주관적인 '합리적'?
과거 이런 책이 초히트를 친 적이 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소비학 내지 미래학이라고 해야하나, 암튼 그거 전공인 김난도 교수가 쓴 책이었는데, 이 당시는 소위 '힐링'이라는 말이 입에 붙을 정도로 감정치유에 관한 책들이 팔리던 때였다. 그러나 이 책과 저자는 곧 비판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가 위로하려 했던 어떤 일들이 실은 그 자신의 머리 속에서나 조립되어 가공되던 일들이었을 뿐 현실은 그냥 생지옥이었기에 망상계와 현실계가 조응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나온 그 유명한 말, "아프니까 청춘? 아프면 환자지 이 ㅆㅂㅆㅎ"!
마찬가지. 그 힐링이 이명수와 정혜신의 입에선 치유로 나오겠다만, 내가 보기엔 도낀개낀이다.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는 조력자로서 이명수와 정혜신 같은 사람의 역할이 분명 있을 거다. 그렇지만, 치유는 자신이 입 앙다물고 정신 바짝 차림으로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그 누가 "당신이 옳다"고 추켜준다고 해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당신이 옳다"고 해줄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 앞에서 "내가 옳다"고 할 때가 있고, 아마도 거의 절대적으로 후자의 경우가 더 많은 거다. 거기다 대고 그러지 말고 "당신이 옳다"고 해야 한다고 '충조평판'하는 자들은 거개가 다 구라를 치는 것이거나 제대로 뭘 알지도 못하고 그런 것이다. 더불어 "내가 옳다"고 하기 위해선 상대방에게 가차없이 충조평판 해야 한다. 인간의 관계는 그렇게 해서 끊어질 수 있지만 충조평판이 무슨 한남들 꼰대짓인 것처럼 등치될 필요는 없다. 남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거 자체가 일종의 허세고 구라다.
그래서 묻고 싶다. 이 두 사람에게. 그렇다면 당신들은 스스로를 옳다고 믿고 있는가? 당신들이 그다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당신들은 "당신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