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의 역사와 미래-김유신의 애마를 추념하며
원래는 작년 말까지 운전면허를 따기로 짝꿍과 약속을 했더랬다. 그러나 사정이라는 건 여하히 찾아오는 것이고, 내일이 있기에 우리는 모든 일을 내일로 미룰 수 있지 않던가? 게다가 천성의 게으름도 한 몫하고, 거기에 소심하기 이를데 없는 소심쟁이라 대고 지르지도 못한 터라 결국 운전면허는 해를 넘기고야 말았다.
따지고 보면 나의 운전면허 도전기는 만18세에서부터 시작되었으나 그로부터 30년이 훌쩍 넘은 지금까지 운전면허를 손에 쥐지 못하고 있는 지경이다. 한 때는 환경보호와 생태적 삶을 위하여 차량은 최소화되어야 하며 따라서 개인적인 운전면허 따위는 없어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괴변을 늘어놓기도 하였으나 이게 뭐 나의 주체적 가치관이 아니라 그저 핑계에 불과했던 것임은 솔직히 고백하고 자시고 할 것도 아니고.
이러다보니 요즘 뜨거운 의제인 '자율주행차'가 먼저 나올지, 아니면 운전면허를 따는 게 더 빠를지 그게 되려 궁금해지는 판이다. 다만, 내가 올해부터 연구자의 위치를 접고 현장 생활인으로 거듭나기로 하면서 짝꿍의 동의를 얻을 때, 이를 수락하는 조건이 운전면허 취득이었으니 이젠 뭐 게으름의 호사를 부릴 게재도 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이 대목에서 자율주행 차량이 진작에 상용화되지 않았음을 통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통탄도 잠시, 모든 기술은 절대 가치중립적이지 않다는 의심병을 달고 사는 입장에서, 과연 자율주행이 나의 이 애처로운 현실을 극복하게 해줄 것인지를 따지게 되었다.
일단 자율주행이라고 한다면, 첫째로 운행에 적합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갖추어야 할 것이며, 둘째로는 이러한 장치들이 '자율적'으로 제어될 수 있어야 하고, 셋째 인간으로 보자면 시각, 청각, 촉각 등으로 감지되는 외부환경에 대한 즉각적이고 효율적인 대응이 이루어져야 하며, 넷째는 사람이 직접 운전하는 것과 같은 제어와 운행이 가능해야 할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목표한 지점에 안전하게 도착하여 탑승자가 불편함이 없이 하차하도록 하는 한편 저 스스로도 정확한 위치에 정렬함으로써 이후 운행을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족해야 할 것이다.
뭐 장치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이 많은 연구를 할 것이므로 내가 기껏 생각할 수 있는 수준의 자율주행, 즉 운전면허도 없는 내가 아무 불편함이 없이 목적지까지 가는데 필요한 자율운행의 조건을 생각해보면 이 정도 될 듯싶다.
그런데 이렇게 따지고 보니, 우리 역사에는 이미 자율주행의 기록이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격동의 삼국시대, 신라의 화랑이었던 김유신은 자율주행 애마의 등에 업혀 천관녀의 거처에 도달한다. 김유신의 애마는 내가 생각했던 자율주행의 모든 것을 갖춘 이동 수단이었다.
김유신의 애마는 첫째, 운행에 적합한 지능과 신체를 갖추고 있었다. 둘째, 주인이 술에 떡이 되어 떡실신이 된 상태에서도 애마 자신에게 장착된 지능과 신체를 알아서 움직일 수 있었다. 셋째, 뛰어난 감각장치를 활용하여 사고 없이 목적지까지 승객을 모실 수 있었다. 넷째, 사람이 운행하는 것과 같은 제어와 운행이 가능했다. 다섯째, 애마는 김유신을 가장 안정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천관녀에게 정확하게 김유신을 배달했고, 천관녀의 집 앞에 정확하게 주차했다. 이정도면 자율운행의 끝판왕을 보았다고 할 것이다. 게다가 애마는 자체 난방시스템을 가동함으로써 최적의 수면조건을 김유신에게 제공함으로써 술에 떡이 되었음에도 하차하자마자 일도양단의 칼부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가공할만한 인체공학적 승차시스템을 갖추고 있었고. 자율안마기능까지 갖추고 있었던 것인가...
그러나 불운은 이 자율주행시스템을 제대로 업그레이드 하지 않았다는 데서 기인했다. 김유신은 어머니에게 질책을 들은 후 천관녀에게 가지 않기로 작심을 했는데, 이때 애마에게도 충분히 이 사실을 숙지시킴으로써 자신이 술에 떡이 되든 주어 터져서 뚝배기가 터져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든 간에 어떠한 돌발상황에서도 목적지를 천관녀에게 향하지 않도록 숙지시켰어야 했다. 그러나 이러한 소프웨어 업그레이드 과정을 거치지 않음으로써 자율주행을 할 수 있었던 애마는 목적지 변경을 하지 않은 채 천관녀의 집으로 향했다.
애마에게는 주인의 혈중알콜농도가 일정한 수치 이상에 달하면 반드시 집구석이 아니라 천관녀에게 주인이 향한다는 것을 그동안의 데이터 축적을 통해 경향적으로 확인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때 김유신은 혈중알콜농도에 상관 없이 목적지는 집이며, 천관녀의 거처는 행선지 목록에서 삭제하거나 반드시 사전 확인 및 동의 후에 향하도록 하는 등이 조치를 취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고, 당시 애마는 이러한 업그레이드가 유저에 의하여 직접적으로 이루어지기 전에 학습을 통해 자동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기능까지는 탑재하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일종의 빅데이터를 통한 자율주행형 인공지능의 한계일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 한계로 인하여 김유신의 애마는 CPU 탑재부와 동력부가 강제 분리되는 애절한 사연을 갖게 되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물론 찾아갈 천관녀도 없는 내가 걱정할 단계는 아닌데다가, 아니 술 처먹고 떡이 된 지가 잘못이지 자율주행한 애마가 뭔 잘못이라고 그 목을 절단한 김유신의 처사가 어처구니 없기도 하고, 이런 음주운전자는 진짜 강력 처벌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만, 어쨌든 그건 다 집어 치우고설라므네, 과연 자율주행차량이 나에게 행복을 선사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 회의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잡생각을 하는 통에 자율주행의 원류가 이미 한반도의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놀라운 경험이었으나 그래서 얻은 결론은 뭐 탐탁한 것이 아니었다. 이게 무슨 국뽕 페스티발도 아니고, 당대의 기록에 남아 있는 정설도 아닌 설화를 가지고 구라를 치다보니 "아니 이게 뭔 개소리얔ㅋㅋㅋ"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이 아침에 시간이 남아 도는 백수가 별 헛짓을 다하는구나.
하지만 나름 생각이 미치는 건, 과연 앞으로 나올 자율주행차량이 김유신의 애마와 뭐가 그리 다를 것이며, 인간과 도구의 관계가 또 얼마나 차이가 날 것인가였다. 어떤 기술을 만들든, 그것을 만든 이와 그것을 운용하는 이와 그것으로 인한 결과에 책임을 져야할 이는 결국 사람이다. 오히려 김유신의 애마보다 앞으로 등장할 AI가 더 의심스러운 것은 애마는 주인의 주체성이라는 것을 비록 오도된 형태로나마 유지할 수 있게 해줬다면, 이 AI는 그러한 인식마저 잠식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김유신의 애마는 피가 흐르고 주인에게 감정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였지만, 자율주행차량은 그런 것이 전혀 없기에 더 겁이 난다.
그렇다면, 일단은 운전면허를 취득한 후 운전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추고 나서 자율주행차량을 맞이하는 게 더 낫다. 자율주행차량에 의심스러운 현상이 발생했을 때는 즉각 수동으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하니까. 아무것도 모른 채 편리함만을 따라 살다가 정작 위급상황이 발생해도 그 원인이 된 것에 목을 매달고 있어야 하는 이상한 일을 당하긴 싫으니까.
그래서 결론은, 자 운전면허를 따자. 이게 왜 결론일 수밖에 없느냐면, 계속 미루다간 짝꿍에게 진짜 쫓겨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율운행차량이 어쩌구 하는 건 그냥 공부하기 싫으니까 잡생각하다가 구라치는 것 뿐이고.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