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창당 20주년
취기가 오르면 아직도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을 몇 알고 지낸다.
"새 세상을 꿈꾸는 자만이 새 세상의 주인이 된다
자유로운 민중의 나라 노동자 해방을 위해..."
이 노래를 함께 부르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2008년 2월 이후 민주노동당을 떠난 사람들이다. 내부갈등을 해소하지 못한 채, 창당의 주역에서 졸지에 폐족이 되어 쫓겨나듯 민주노동당을 뛰쳐 나왔다. 민주노동당은 2011년 연말 역사에서 사라졌다. 폐족을 만들었던 자들과, 폐족이었던 자들과, 이들을 싸잡아 비엇었던 자들이 한데 모여 통합진보당이라는 걸 만들면서 그렇게 되었다.
"인간을 인간답게 사회가 평등하게
노동이 아름답게 민중이 주인되게..."
역사에 이름만 남기고 형체는 사라졌지만, 함께 모여 이루고자 했던 세상의 꿈이라는 건 이렇게 당가에 남아 있다. 이 꿈을 여전히 지키며 사는 사람들과 꿈과는 영영 이별한 사람들이 갈라서 있다. 서로 추억만을 공유한 채.
그러나 누구든 가슴에 저리 뜨거운 열망을 간직했던 시절을 잊지는 못하리라. 어떤 이에게는 이루지 못한 아쉬움으로, 또 어떤 이에게는 그래도 끝내 이루어야 할 과제로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만, 나에게는 여전히 단련의 채찍으로 남아 있다. 나처럼 그 꿈을 그 노래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거고.
2000년 1월 30일 창당하던 그 순간 나는 그 역사적인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러나 창당소식만으로도 가슴은 충분히 끓어올랐고 온 몸의 힘줄이 결연히 일어났었다. 그로부터 불과 4년만에 중앙당에서 정책연구를 하게 되었고, 놀라운 사람들로부터 놀라운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동시에 반민주적인 정파조직 간 알력으로 끝내 내 사랑하는 당이 쪼개지는 현장에 서서 분노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참담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20년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당운동에 몰입했던 것이 결과적으로는 그다지 탐탁하지만은 않다. 당은 예상보다 너무 빨리 궤도를 이탈해버렸고, 당에 모든 것을 걸었던 내 계획 전체가 엉켜버렸다. 강에 전력을 쏟아 부으면서 미뤄놨던 일들은 결국 하나도 제대로 수습된 것이 없고, 허공으로 사라진 당과 함께 나의 20년도 허공에 떠버렸다. 현재까지의 결과가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에 걸었던 나의 꿈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거기에 걸었던 나의 열정이 다 헛된 것이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내가 오늘날 감당해야 할 이 비루한 일상이 민주노동당 때문이었다고 변명할 수도 없다. 그러기에 민주노동당의 역사는 내 가장 자랑스러웠던 시간들 속에서 너무나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짬을 내서 옛 동지들에게 문자라도 넣어봐야겠다. 아예 궤도를 벗어나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에게까지 굳이 추억 한 자락을 던져 싱숭생숭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그저 지금 만나도 술 한 잔 하면 어김없이 저 노래를 같이 부를 수 있는 몇 사람이 생각났을 뿐이고, 그들과 함께 스마트폰 화면을 통해서라도 20주년을 기리고 싶기 때문이다.
"평등과 해방의 길에 어떠한 시련도 마다않겠다
아-, 민주노동당이여, 이제는 전진이다"
사라진 내 영혼의 일부를 기억하며, 같이 할 수 없는 전진을 약속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