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은 따로 있지

하승수 변호사가 정말 앞뒤를 재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나보다. 이해찬과 동급이 되어가는 건가.

하승수 페이스북: 이제 쟁점이 좁혀진 듯 합니다.

하변의 멘탈이 어느 정도로 붕괴되었는가는 이 한 문장에서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대로 놔두면 선거제도 개혁의 성과를 미래한국당에게 도둑질당합니다." 맨정신에 이야기하자면, 지금 바뀐 선거법 내용을 어마무시한 "선거제도 개혁의 성과"로 생각하는 한 하변의 정신이 제정신으로 돌아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진보연 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주장하는 어떤 대안이 실은 가치중립적일 수밖에 없는 일종의 원론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주장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그 주장이 진보적인 것이라 착각하는 경향들이 꽤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소위 '직접민주주의 3종세트'라고 했던 국민발안, 국민소환, 국민투표다. 이 제도는 그냥 민주주의 실현의 한 방법일 뿐이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에 대한 일종의 방어선이다. 다만, 이러한 절차 자체가 봉쇄되어 있는 현실은 문제가 있으며 차제에 이러한 제도들이 도입되어야 한다는데는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이 제도들이 '진보적'이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기실 시민혁명이 대의제로 귀결된 건 부르주아지들의 '음모'에서도 비롯된 바가 없지 않긴 하나, 루소 같은 이들이 그토록 주장했던 인민의 직접정치가 실제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당시에는 오히려 대의제가 진보적인 제도였다고 봐야할까.

대의제가 일종의 주된 절차로 민주주의의 틀에 안착하게 된 계기다. 그러나 대의제 역시 그 한계가 분명하기에 어떤 하나의 절차에 국한한 것이 아니라 직접적인 것이든 간접적인 것이든 필요한 과정과 절차를 충분히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저 소위 3종 세트의 역할이 있었던 거다.

그런데 한국의 인권단체/시민사회진영에서는 한때 저 3종 세트를 진보적 제도의 도입이라는 취지에서 강력하게 주장했던 일이 있다. 난 이런 제도가 도입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이걸 진보적이라고 하면 곤란하다고 했었다. 아닌 말로 저 3종 세트가 작동하는 과정에서는 오히려 권력과 자본이 있는 쪽에 훨씬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까놓고 이야기해서 사실 진보가 권력과 자본이 상대적으로 더 많은 건 아니잖나? 가오라면 몰라도...

이렇게 가치중립적인 것을 자꾸 진보적인 것이라고 포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연동형 비례제였다. 민주노동당때부터 주장되었던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라는 것이 바로 이건데, 민주노동당때도 그렇고 진보신당때도 그렇고, 지금 와서는 정의당 쪽에서도 그랬는데, 암튼 선거법을 진보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이 연동형 비례제라는 주장이 누차 제기되었다.

난 이렇게 연동형 비례제를 진보적인 제도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형식적으로는 맞을 수 있으나 내용적으로는 그다지 적절한 레토릭이라고 볼 수 없었다. 오히려 이게 잘못 이해되면, 나중에 진보진영을 긍정적으로 보았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있는데, 왜냐하면 연동형 비례제가 도입된다는 것은 극우들의 원내진출 역시 지금보다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이고, 기껏 제도 개선해놨더니 변희재 당에서 의원배출하더라 이렇게 되면, 대중들은 아니 진보적인 제도라메 어떻게 변당에서 의원이 나와? 이렇게 회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어차피 연동형 비례제라는 것은 표의 등가성의 문제에서 접근한 것이고 정치적 권리에 있어 평등권의 보장을 목적하는 것이지 그 제도로 인하여 진보정당의 당원들 또는 진보적인 개인들에게 일방적으로 유용한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정치관계법 개혁과 관련한 어떤 발제에서 실제 연동형 등의 제도개선은 가치중립적인 것이라고 했더니만 토론자 한 분이 그럴 거면 뭐하러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느냐, 그럴 필요가 있냐? 이렇게 반문하더만. 이 반문은 진보진영에 유리한 것이니 주장하는 것인데 네가 지금 초를 치느냐는 의미였다. 많이 어이가 없었더랬는데...

사설이 길었는데, 지금 하변이 하고 있는 발상이 바로 이런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거다. 이번 선거제도 개편의 효과는 '진보'에게 유리한 "개혁의 성과"가 아니다. 미통류나 미한류에게도 이용하기에 따라선 편리한 제도변화일 뿐더러 아닌 말로 변당이 등장하게 되면 그들에게도 유리한 제도라는 거다. 새삼스레 미통류나 미한류에게 도둑질 당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런데 하변은 이번 선거제도 개편을 엄청난 개혁의 성과이며 진보진영의 승리라고 착각하는 듯하다. 진짜로 개혁의 성과이자 진보진영의 승리였으면 안철수 따위가 은근슬쩍 숟가락 얹을려고 돌아왔겠는가? 그건 이번 선거제의 변화가 개나 소나 다 할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변화임을 의미한다. 이걸 무슨 엄청난 개혁의 성과인냥 착각하고 있는 하변 등은 도대체 이해를 못하고 있는 듯하지만.

이렇게 사고수준이 쪼그라들어 있다보니 조급해지는 거다. 왠지 말야, 응? 도둑질 당하는 것 같고 말야. 아니 이게 썅 다 내 건데, 미통 미한 이것들이 도둑질을 해가려고? 이렇게 빡도 치고. 그런데 제도가 그렇게 생겨먹은 거라니까? 하변 생각하는 것같은 그런 숭고한 게 아니라니까?

하변의 뚝배기가 깨질 위기에 처하자 마음은 급해지니 더민당의 위성정당이라도 좋다, 미한당에게 의석만 안 간다면. 그러니 죄다 개소리 집어 치우고 통 큰 단결, 비례용 더민당 위성정당 아래 모이자! 이런 주장을 하변이 하게 된다. 그 똑똑하고 슬기롭던 하변이.

그러면서 이런 저런 짱구를 굴리다가 이제 "쟁점이 좁혀진 듯합니다"라면서 두 가지 방안을 내놓고는 이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된다고 한다. 정신이 나갔다. 앞서도 하변의 계산기 두드림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난 원 ㅆㅂ 정치를 어떻게 배워처먹었기에 정치를 계산기로 다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네,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지금 하변이 제시하고 있는 저 두 가지 '방안'은 방안도 아니고 '쟁점'도 아니다. 진짜 쟁점이 되어야 할 건, 이번 21대 총선을 끝으로 진보정당운동은 문을 닫아야 하느냐이다. 하변이 제시한 '방안'이라는 건 그냥 어떻게 하면 이번 총선에서 미한당보다 더 많이 비례의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 방안조차도 그냥 하변의 공상에서 나온 이야기일 뿐이다만.

저 계산기 두드림에는 진보정치/대안정치의 미래가 전혀 들어있지 않다. 저짓 하게 되면 진보정치/대안정치는 87년 대선에 등장했던 비판적 지지의 망령이 지금까지 고착시킨 민주당류 중심의 선거판짜기가 영원불멸인 것으로 고착된다. 즉 진보는 그냥 닥치고 민주당 옆에 꼽사리나 끼라는 이 저주받을 판이 뒤집어질 가능성이 거의 제로에 수렴하게 된다는 거다.

하변은 이 이야기를 자꾸 이상하게 꼬고 있다. 하변은 정반대로 이번에 더민당 위성정당이라도 만들어서 의회로부터 저 미통당류의 뿌리를 뽑아내야 정치개혁이 온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될 가능성도 없을 뿐더러 그렇게 된다고 한들 그게 정치개혁이냐? 어차피 더민당이 1당 독재 하면서 지금은 그나마 진보정당과 시민사회 눈치를 보느라 못하고 있던 짓들을 이명박근혜 정권에서보다 더 화끈하게 하겠지. 거기에서 하변은 그 주변 86들과 개혁 완수했다고 희희낙락하면서. 뭐하자는 짓거린가?

나도 쟁점을 좀 좁혀야겠다. 이제 두 가지 방안을 제시하련다.

방안 1: 하변이 그냥 녹색당 탈당하고 더민당에 입당한다.

방안 2: 하변이 그냥 녹색당을 더민당의 위성정당으로 만든다.

두 방안 어떤 것이든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그냥 녹색당은 하변의 사당이었고, 녹색당 당원들은 이제 대안정치 따위는 입에 올리기 어렵게 되었다는 거다. 하변은 지금 정치도의적으로 매우 잘못된 짓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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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06 09:42 2020/03/06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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