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을 둘러싼 이상한 논쟁들
이준석이 국힘의 대표가 되었다. 그런데 정작 그 여파가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
이준석 따위 대표된 게 뭔 대순가 하는 입장들이 그렇다. 이것도 좀 구분을 지어보면,
- 택도 없는 능력주의 신봉자에다가 안티페미 코인 물고 뛰는 정신나간 놈이 대표된들
- 수구 꼴보수 국힘에 있는 것들끼리 그 안에서 자리바꿈한 것일 뿐인데 뭘 그렇게
대충 이렇게 갈리는데, 여기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어떤 이야기는 그래서 그게 어떻게 세대교체냐? 바뀐 거라고는 이준석이 아직 30대라는 것밖에 없는데, 나이가 대수냐? 뭐 이런 류의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준석 '현상'에 대하여 뭔가 들여다볼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견해에 대해, 이준석을 칭찬하는거냐, 치하하는 거냐 이런 식의 비아냥을 하는 사람도 있다.
더민류에서 이런 반응이 나오는 건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하겠는데, 자칭타칭 진보좌파 선수라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 이런 태도를 보이는 건 의아할 지경이다. 난 솔직히 이 사람들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정세를 파악하고 전망과 실천경로를 만들어 나갈 자세가 되어 있는 건지 모르겠다. 하긴 이모양이니 진보고 좌파고 나발이고 오늘날 요모양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하고.
'세대교체'는 외양일 뿐이다. 신임 대표의 나이 때문에 '세대교체'라는 포장이 제법 부각되는 면은 있지만, 정작 중요한 건 '세대교체'든 뭐든 간에 국힘 안에서 변화가 있었다는 거다. 그 변화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함의가 있고, 그렇다면 그게 뭔지 찾아내고 대응해야 하는 게 정치활동가의 자세다.
어차피 국힘이나 더민이나 그놈이 그놈이라고 하는 입장에 있는 진보좌파는 오히려 더 세밀하게 이 사태를 봐야 한다. 보수양당의 세력다툼의 추이가 진보좌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측하고 대응하기 위해서다.
겨우 하루도 안 지났지만, 그동안 나온 여러 견해 중 그나마 가장 정확하게 현실을 짚고 있는 건 정의당 장혜영 의원의 덕담이다.
장혜영 페북: https://www.facebook.com/serious.hyeyeong/posts/10225723063366052
현직 의원이다보니 덕담 형식으로 이야길 하면서, 장혜영은 "이준석 대표의 시험지가 온몸으로 구조적 불평등을 겪고 있는 이 모든 운동장 밖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할지 진심으로 기대하겠습니다. ... 정치인의 책무는 그 어떤 시민도 그 시험에서 낙오하지 않게 하는 것임을 잊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당연히, 장혜영의 이 '바람'은 말 그대로 덕담일 뿐, 실제 이준석에게 기대하고 한 말이 아닐 터이다. 그럴 기대할 수준이 아니므로. 오히려 국힘은 이 '바람'과는 정반대로 달릴 가능성이 거의 100%가 아닐까 싶고.
그렇다면 기실 이 말은, 이준석 또는 그를 대표로 만든 국힘이 저 일을 해주길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아니라, 국힘의 반대편에 서서 국힘의 반동에 대응해야 할 사람들이 뭘 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는 것이다. 왜 지금 이 시점에서 이렇게 명확하게 전선을 그어야 하는 건가?
그건 이준석이 '세대교체'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준석을 당대표로 만들어준 안티페미니즘, 능력주의 같은 의제들이 그 당은 물론 그 당의 외곽에서도 일정하게 먹혀 들어간 '현상'을 주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저 고리타분한 수구 정당에서 젊은 정치인이 한 자리 했다는 세대교체는 그냥 세대교체의 의미만 있는 게 아니다. 저 여파가 결국 다음 또는 그 다음 국가의 통치기구를 장악할 어떤 대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측면을 봐야 한다는 거다.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빈 방문하는 오스트리아의 총리는 올해 36세의 제바스티안 쿠르츠다. 얘도 그 나라에서 보수 꼴통이라 취급받는 국민당의 대표다. 그보다 더 꼴통인 자유당과 연정하여 한 나라의 총리를 시작했는데, 총리를 시작한 2017년 쿠르츠의 나이는 불과 31살이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라 그가 총리가 된 과정을 봐야 한다. 이준석이 박근혜 키드로 본격적인 정치에 뛰어들었다면, 쿠르츠는 이미 스물한 살 되던 해에 국민당의 청년 대표를 했다. 그 다음해 바로 시의원이 되었고, 2년 후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국회의원이 된 해에 외무부장관이 되었다.
원래 국민당은 오스트리아 사회민주당과 연정을 한 역사가 있는데, 이때 국민당에서 대통령을 9대, 10대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회민주당과 사이가 틀어지면서 연정에서 배제되고 야당에 머물러 왔는데, 2013년 총선에서 극우정당인 자유당에게 턱밑까지 쫓기는 등 제1야당의 지위가 흔들렸다. 이때 국민당 오비들이 죄 은퇴를 하면서 쿠르츠에게 당권을 넘겨주다시피 한다.
그 후 쿠르츠가 어떻게 됐냐? 뭘 어떻게 돼. 총리가 된 거지. 쿠르츠가 당대표가 되고 총리가 된 것은 그 당의 '세대교체'의 의미 이상의 것이 있다. 오스트리아 국민당은 쿠르츠라는 '현상'을 만들어냈고, 그 '현상'을 통해 집권을 했던 거다. 여기서 그들이 어떻게 '현상'을 만들어냈고, 그 '현상'이 어떤 사건-쿠르츠를 당대표로 만드는 사건-을 만들어냈고, 그 결과 오스트리아 정치가 어떻게 흐르게 되었는지를 꼼꼼히 들여다 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이준석이 당대표가 된 것 역시, 그 의미를 분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 현상은 주의 깊게 들여다 봐야 한다. 어차피 그나물에 그밥인데 나이 젊은 게 대표 된들 뭔 차이가 있냐고 넘긴다면, 글쎄, 그게 과연 정치활동가의 자세 또는 정당운동의 자세인지 오히려 의심스럽다.
다시 장혜영이 짚은 부분을 살펴보면, 이준석의 대표 당선은 더 극악한 경쟁체제에 대한 긍정적 호응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인일 수 있다. "그 어떤 시민도 그 시험에서 낙오하지 않게 하는" 정치가 대중적으로 외면받고 있다는 것을 이준석의 대표 당선이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 아니 나는 거의 그렇다고 보지만.
이 흐름을 저지하고 "그 어떤 시민도 그 시험에서 낙오하지 않게 하는" 정치가 대중들에게 승인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답을 찾기 위해서라도, 이준석의 대표 당선에 대해선 주목하고 주의해야 한다. 그냥 "뭐가 세대교체냐", "그놈이 그놈이지", "이준석 돌대가리 흥!" 이러고 지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