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과장의 푸념

지난 어공 4개월차의 간략한 소회에 이어 다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올려본다.

한시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대략의 문제는 지난번 개관을 했지만, 현장의 중간관리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보자. 이 사람은 4급 과장이며, 별정직이고, 조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과에 2개 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각 팀은 6명의 조사관이 활동하고 있고, 과에 1명의 행정담당관이 있다. 검찰과 경찰에서 파견나온 조사관이 모두 7명이며 나머지는 별정직 및 기간제 전문위원이다. 그가 토로하는 업무의 어려움은 이렇다.

- 직원 관리를 하라, 악역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당근이고 채찍이고 뭘 쥐고 있어야 그걸 근거로 관리를 하는데, 내가 가진 게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 단지 과장이라는 직책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직원들을 관리 통제하는 건 힘들다. 결국 지휘부는 자신들이 책임질 생각은 없으면서 관리자의 손에 피묻히려는 거 아니냐.

- 지휘부는 방에 앉아서 우리에게 관리하라고 하면 그만이겠지만, 난 여기 와서 하루 종일 저사람들하고 같이 일해야 한다. 서로 얼굴 붉히면서 해봐야 결국 나만 손해다. 나 처음 여기 발령받았을 때 팀장과 팀원 간에 싸움 나고 틀어져서 고생했다. 솔직히 지금은 아무 일도 안 해도 되니 조용히만 있어줬으면 하는 생각도 있다.

- 파견 공무원들은 여기가 놀이터다. 일할 생각이 없다. 쉬러 왔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A급도 아니다. 폐급 아닌 게 다행이고. 저쪽(원 근무처)에서 일 잘하는 사람을 여기 보냈겠나? 에이스들은 자기 조직에 더 필요할텐데. 또 여기서 뭐 잘 한다고 해서 저기 가서 평가 잘 받는 것도 아니다. 얘기 들어보니 그냥 B받는다고 하더라(인사평정). 그 조직도 그 조직 안에서 일하는 사람, 눈에 보이는 사람 먼저 좋은 점수 주지 여기 보내놓은 사람에게 굳이 좋은 점수 주겠나. 그거 아니까 일도 안 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뭐라고 하고 일시키는 게 어렵다. 말 안 듣는다.

- 내가 잔소리하면 싸움밖에 안 난다. 그리고 저쪽에서 근무할 때도 개별 사건에 대해서 상관이 개입하고 그러지 않았다고 한다. 저쪽에 있을 때도 안 그러는데 네가 뭔데 상관하려고 하느냐, 이런 식으로 나오면 할 말 없다. (아니다. 검경도 개별 사건에 대해 기획단위와 관리체계가 있다. 거기서도 그래서 팀, 반, 이렇게 조직화해서 일하잖냐? 우리 위원회의 팀제도 그걸 원용한 건데 뭔 소린가?) 아니다. 파견 나온 사람들이 그렇다고 우기면 뭐라 할 수도 없다.

- 파견직들에 대해 상부에서도 뭐든 할 수 있는 게 없잖나? 그러면서 과장들에게 관리하라고 하는 건 책임전가다. 자신들도 못하면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는 건 그냥 자기들은 책임지지 않고 우리에게 악역만 하라고 다그치는 거 아닌가.

- 조사관들은 의욕부족, 역량부족이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정량적인 기준을 세워서 일정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바로 원직복직시키겠다는 등의 조치라도 해달라. 뭔가 일관된 기준이 서고 그게 충족된다는 사인이 제시된다면, 나도 직원들에게 못이기는 척하고, "아, 위에서 이렇게 한다고 하니 좀 뭔가 해야되지 않겠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거 없다면, 굳이 과장들에게 관리하라고 시킬 것이 아니라 위에서 직접 조사관들 관리하는 게 더 효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어차피 우리는 싫건 좋건 간에 같은 자리에 앉아 남은 기간을 보내야 한다. 그럴 바에는 개인적인 관계가 깨지면서까지 관리책임을 질 생각이 없다. 팀장이 팀원들의 조사결과를 보고 정리하고 조정해야 하는데, 그거 안 하니 내가 한다. 나도 번아웃 상태다. 그렇게라도 해야 기간 안에 실적을 어느 정도 채울 수 있지 팀장에게 맡겨 놓으면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캐리어관리에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 파견직들에게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러니 그냥 사건 처리해서 갖다 주면 그걸로 됐다고 하고 나머진 내가 하는 거다.

이런 반응이 나온다.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면, 나는 당장 이 과장에게 과장 그만 두라고 할 수 있다. 저 어려움이라는 거 다 감수하면서 그래도 그 와중에 조직관리를 하고 일을 할 수 있게 길을 만드는 게 관리자의 역할 아닌가? 그거 못하겠으면 과장 하면 안 된다.

그러나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그냥 이상적인 이야기일 뿐이다. 관리자로서 의식이 바닥수준이라고 한들, 저 과장이 처한 상황은 실제 상황이다. 실제 상황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과장 개인의 능력으로 등치하는 건 쉽지만, 그건 조직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래서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 거다.

하지만 무척 어렵다. 과장의 말마따나 최고 책임자조차도 인사권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고 예산편성권마저 없는 상황에서 무슨 관리권한을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겠나? 물론 나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낼 거다. 그렇게 찾아낸 방법이라는 건 아마 태평양 한 가운데 침 한 번 뱉는 정도 효과도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뭐든 만들어내야 하는 게 지금의 나의 역할이니 당연히 그렇게 할 거고.

다만, 지난번에도 그런 생각을 놓았지만, 이런 과거사 정리를 위한 한시적 기구는 다시는 만들어져서는 안 된다. 이건 세금 낭비다. 정권의 민주성을 포장하기 위한 알리바이로 만들어지는 이런 형식의 기구는 결국 체계적인 미래의 준비를 방해한다.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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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17 17:53 2022/01/1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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