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가 너희를 구원하리라?
늘상 하는 이야기지만, 지금과 같은 고착된 체제에서 제헌에 버금가는 전면적인 개헌은 그다지 실현 가능성이 없다. 뭐 다 들고 일어날 판이라도 되어야 그 가능성이라는 게 도드라질 수 있는데, 지난 촛불에서 봤듯이, 그리고 이번 정권에서 확인했듯이, 그런 거 없다.
그래서 국민발안, 국민투표, 딱 요것만 가지고 개헌을 하자고 제안해왔다. 여기서부터 출발해서, 국체나 인간존엄과 기본적 인권과 같은 부분은 현행 개헌의 방식대로 두되, 나머지 국가기구구성에 관한 내용과 경제분야 등 헌법사항은 좀 쉽게 바꿀 수 있도록 하자는 거.
하지만, 이렇게 주장하는 것과는 별개로, 직접민주주의의 방식이라고 대표되는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를 만능의 보검처럼 여기는 건 위험하다. 마치 기본소득이 세계를 구원하리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오류인데,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직접민주주의 만능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링크한 칼럼도 그렇다.
열린 뉴스: 제왕은 선출직(대통령 등)이 아니라 관료(검찰총장 등)들이었다.
검찰(을 비롯한 관료) 개쉐이론이 직접민주주의 체제로의 전환(여기선 특히 국민투표)으로 이어지는 논리전개의 허술함은 둘째 치고라도, 도대체 이런 식의 대의제 폄하와 직접민주주의 만능론이 민주주의에 어떤 긍정적 영향을 끼치는지 잘 모르겠다.
기실 이렇게 직접민주주의 만능론을 펼치는 분들이 종종 빠지는 오판은, 세상엔 자기편이 더 많다는 착각, 또는 '정의(자신의 주장)'는 이긴다는 정신승리다. 그렇지가 않아요...
오히려 지금 이 칼럼이 보여주고 있는 각종의 문제들과 직접민주주의의 필요성은 한국 사회에서 정치인들이 얼마나 정치를 개판으로 만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검찰(을 비롯한 관료)에게 휘둘리면서도 정신 못차리는 정치인, 그리고 정치를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고민되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는 그 방법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이 부분에 대한 고찰이 없다보니 대의제를 중심으로 할 바에야 유신헌법도 민주헌법이라고 할 수 있지 않느냐는 얼척 없는 소리를 할 수 있다.
검찰을 비롯한 관료사회에 문제가 많다는 거야 누구나 이야기할 수있다. 그런데 거기 휘둘리는 정치를 넘어서는 방법으로 직접민주주의를 내미는 건 너무 안이한 처방이다. 이런 주장들을 자꾸 보게 되면, 그나마도 저 국민발안, 국민투표만 가지고 원 포인트 개헌부터 해보자는 나의 주장도 그냥 접어야 하는 거 아닌가 주저하게 되는 거다.
- 첨언하자면, 직접 민주주의 3종 세트 중에서 국민소환은 좀 나중에 해도 된다는 입장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 칼럼의 필자와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인데, 대표자의 소환이라는 거, 그거 저 3종 세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게 사용될 수 있는 칼이기 때문. 칼럼의 필자는 국민투표와 국민소환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칼럼 필자의 표현대로 탄핵을 위한 국민투표를 한다손 치더라도, 예컨대 윤석열을 국민투표로 탄핵하자고 나서는 주체와 내용이 무엇이냐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칼럼 필자야 지금 이 순간 논란이 되는 의제를 가지고 윤석열을 탄핵하자고 할테지만, 만일 그게 아니라 지난 박근혜 정권 당시 국힘류 내지 태극기부대가 탄핵하자고 나선다면 어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