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지 못할 '대통령 소속 위원회'는 만들지 말길
대선후보들의 공약 중에 드디어 '대통령 소속 위원회' 설치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한다. 우려스럽다. 과연 과거에 존재했던 또는 지금 존재하고 있는 각종 대통령 소속 위원회들의 현황은 살펴보고들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공공연하게 내놓을 이야기지만, 당분간은 그냥 속앓이로 견뎌야 할 이야기들을 조금씩 정리 중이다. 그 중의 하나가 이 '대통령 소속 위원회'들의 문제. 내가 현재 처해 있는 상황과 직접 관련된 이야기이다.
특히 과거사와 관련되어 만들어진 대통령 소속 각종 위원회, 또는 특정 인권이슈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대통령 소속 위원회 중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곳이 있는지 모르겠다.
대개의 경우, 이러한 위원회들은 그 위원회를 설치한 정부가 스스로의 민주성에 대한 알리바이를 확보하기 위해 구성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집권의 과정에서 자신에게 표를 줄 수 있는, 또는 표를 끌어올 수 있는 대상들에게 일정한 급부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위원회 설치가 공약화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설치되었던 각종 과거사 위원회들을 살펴보자. 의문사위, 군의문사위, 진화위, 사참위, 518위, 군사망위, 진화위2기 등등 대통령 소속으로 설치된 위원회들은 어떻게 되었으며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가?
거의 대부분의 경우, 정권의 임기가 만료되면 뭘 했는지도 모르게 흐지부지 되고, 다시 해당 종류의 위원회를 만들어야 하니 마니 사회적으로 난장판이 벌어지다가, 이런 위원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꿀 빠는 소위 '업자'들이 정권창출에 바쁜 정치인들과 손을 잡고, 그리고 정권을 만들면 위원회가 또 만들어진다. 돌고 도는 무한 루프.
참고로, 여기서 아니꼬운 건, 저 과정에 끼어 한자리씩 꿰차는 자들이 도대체 10년 전인지 20년 전인지조차 기억도 못할 과거에 잠깐 운동판에 있었던 걸 무슨 영구업적으로 들먹거리면서, 정부 월급 받은지 10년인지 20년인지도 모르는데 아직도 무슨 인권운동갑네 하고 명함 팔고 다닌다는 거. 쪽팔리지도 않나들...
암튼 그건 그렇고, 이런 위원회들이 망하는 건 여러 요인이 있겠다. 인사권, 예산권도 없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의 위원장에, 저런 '업자'들이 지들 패밀리 끌어들여 서로 먹고 살 자리 마련해주고, 파견 나온 늘공들은 놀러나온 것처럼 앉아 할 일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준비나 대학원 학업에 매진하질 않나, 별정직들은 정부 채용공고 훑어보면서 자리 나는 거 찾느라 모니터에 구멍이 날 정도로 머리를 처박고 있거나, 이 와중에 문제가 생기면 꼬리자르기 하는 통에 하급직들이 궁시렁 대고, 아니면 책임 져야 할 것들이 제 멋대로 소설 써가면서 자기 합리화하며 남 탓만 해대고...
그런데 이런 요인들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바로 '대통령 소속' 임에도 대통령커녕 그 밑에 시다바리들조차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거. 아, 신경 쓰는 건 있다. 사고나지 않나 노심초사하는 건 있다. 괜히 이상한 일 생겨서 정권에 쓴소리 나오지 않을까 하는 거엔 관심이 집중된다. 그러나 위원회가 하는 일 자체에 대해선 그 위원회를 소속기관으로 두고 있는 청와대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아니 신경 끄고 있다는 게 맞을 듯.
청와대가 소속 위원회에 신경쓰는 일은 그 위원회에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 예를 들면 과거사의 유족들이 항의를 한다거나 할 때나 일을 어떻게 하는 거냐고 생 난리질이나 칠 줄 알지. 평소에 그 소속기관의 운영이나 업무 처리에 대해 대통령 등 청와대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누군가는 그게 더 바람직한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말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으로 소신껏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거 아니냐는 거. 물론 각 위원회의 실질을 좌우하는 조사에 개입하거나 결과를 유도하는 짓을 하면 안 되는 건 맞다. 그런데 앞서도 보았듯이, 특정한 유족의 사건 등에는 은근히 조사에 개입하거나 결과를 유도하는 짓을 한다. 반면, 예산의 보장, 권한의 보장이나 저 어공 늘공들의 복무기강 확립 등 운영에 필요한 사항까지도 손 놔버리고 있으면 아무 일도 진행이 될 수 없다. 기본적으로 방치해놓고 있는 위원회에서는 위원장을 비롯한 최고 결재라인의 '영'이 서질 않는다. 어차리 직원들은 여기 위원장이 최고 권력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이다. 눈치 볼 곳은 청와대밖에 없는데, 거기선 여기서 뭔 일이 나도 정치적 반향이나 혹은 유족들의 문제제기가 없으면 아무 개입도 하지 않으니 뭐가 두렵겠나?
예컨대, 장관급 위원장이 복무태도와 업무수행을 이유로 검찰직 파견공무원을 원직복직하라고 하자 검찰직 파견공무원들이 떼를 지어 위원장실로 들어와 태업을 해도 되겠냐고 엄포를 놓는다. 이것들이 지들 근무처에서는 법무부장관은커녕 하다못해 지청장실조차 고개 들고 들어갈 배포도 없는 것들이 지들 쪽팔린 걸 모르고 집단행동을 한다. 왜? 장관급이고 나발이고 여기 위원장이 뭔 힘도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으니 이러는 거다. 별정들도 마찬가지. 코딱지만한 조직인데도 여기서 패밀리끼리 어울리고 지들 마음에 들지 않는 다른 직원을 왕따한다. 이게 또 은밀하게 그러는 것도 아니고 공공연하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최고 결재권자가 이걸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뭐라고 하면 갑질이라고 온데 다 떠들고 다니면서 찌르고, 퇴직을 시킬래야 시킬 수도 없고, 해 볼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배짱을 튕겨도 뭔가 조치를 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결국, 이런 위원회는 이걸 설치한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위한 알리바이에 불과하다. 집권을 향해 달리는 과정에서, "여러분이 이 고생을 하는 건 저 악랄한 전 정권의 구태와 적폐 때문입니다"라고 하면서 "여러분의 억울한 사정을 다 풀어드리겠습니다"로 자신이 집권해야 할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그 구체적인 방안으로 각종 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고, 그렇게 해서 어찌어찌 집권을 하게 되면, 그 공약 믿고 자신을 찍은 사람들의 원성을 피하기 위해 위원회를 설치하고, 그리고? 그냥 그걸로 끝. 이 대목에서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는 거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집권을 위해 사람들 소원풀어준다고 약을 친 거다. 한풀이 해준다고 선동한 거다. 그런데 이런 장난질이 소위 '민주정부'에서 더 광범위하고 심각하게 벌어졌다.
이 와중에, 정말 힘든 사람들은 한 맺힌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이런 종류의 위원회는 자칫 희망고문이 될 수도 있다. 아, 이번엔 뭔가 되는 건가? 나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겠지? 그런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이런 저런 위원회에 자신의 사연을 진정하고, 그 결과를 기다려봤자, 될 듯 될 듯 결국은 지나온 세월에서 겪은 고통을 되풀이해 겪고 마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 사람들의 한과 분노는 누구 책임인가?
이 한과 분노가 다음 정권을 준비하는 자들에게는 또다른 떡밥을 만들고 싶은 동기가 된다. 그래서 위원회 만들겠다는 공약이 나오고, 당선되면 또 만들고, 내팽개치고, 그렇게 사람들은 다시 한이 맺히고, 또 항의하고, 그러면 또 공약 내놓는 놈이 나오고, 그놈이 당선되고... ㅆㅂ...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앞에서 다 말했다. 앞에서 말한 문제점이 안 생기게 하면 된다. 그거 못할 거 같으면 처음부터 이런 류의 위원회는 만들지 않는 게 더 좋고. 특히 특정 단체나 조직, 또는 '업자'가 끼었는지 잘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이거 관리 못하는 순간, 세금은 눈 먼 돈이 되는 거고, 눈 먼 돈 퍼먹는 재미로 장난질 치는 것들이 횡행하는 사이, 갋잖은 희망고문 속에서 진짜 억울한 사람들의 한은 점점 깊어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