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비리의 차이-촛불의 한계
"염병하네"라는 욕설을 새삼 상기시켜주는 칼럼을 보다가...
이 칼럼에서 얼핏 그려지는 하나의 구조는 촛불의 한계가 어디에서 유래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의 단초를 제공한다. 칼럼은 "정유라-조민-정호영의 아들딸로 이어지는 입시비리 사건"을 뭉쳐서 바라본다. 고학력, 고소득, 전문직의 안정된 지위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이 기득권자라는 점을 알지 못한 채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벌이는 문제적 행태를 지적하는 것이다.
여기서 정유라 건은 다른 측면에서 사회적 변화의 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정유라-조민-정호영' 라인에서 분리할 필요가 있다.
사회 모든 곳에서 경쟁이 진행되고 있고, 심지어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조차 경쟁을 하고 있다. 논문품앗이며 인턴허위경력 발급이며 등등조차도 '그들'은 경쟁적으로 스펙을 채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그들만의 리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이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들만의 리그'안에서 '그들'은 다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런데 '그들'을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 폭로되었다. 박근혜 뒤에 앉아 최순실-정유라조가 벌인 입시비리는 기득권을 가진 '그들'조차 범접할 수 없는 경지의 그것이었다. 최순실-정유라조의 행태는 '그들'도 벗어날 수 없었던 경쟁마저 없는 초월적 상황이었던 거다. 경쟁따위 필요 없고, 말이 필요하면 삼성에서 말을 갖다 바치는 우월적 계급이 실존한다는 것을 '그들'은 확인하고 경악했다. '그들'은 사회 최상층 계급인 자신들이 육두품 취급을 당한다는 것에 자존심 파괴되었고 자신들조차 하고 있는 경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자가 있다는 것에 격분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때라면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광장의 촛불이 되기로 자원하고 실제로 거리로 나오기까지 했다.
냉소적으로 말하면 촛불은 '그들'과 그들이 될 수 없는 자들이 '그들'조차 범접할 수 없는 5000만분의 1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일시적 연합체에 불과했던 거다. 이것이 바로 촛불 승리의 원천이었던 동시에 촛불의 한계였다. 그 한계는 촛불의 과실을 '그들'이 먹었고, '그들'이 될 수 없었으나 촛불동맹에 함께 했던 자들은 촛불이 끝난 후 여전히 '그들'이 될 수 없는 위치에서 촛불의 과실을 나눌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슬픈 현실은 '그들'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그들'이 갈라놓은 편에 휩쓸리고 '그들' 간의 공방에 참전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태가 "교수나 의사, 고위직 공무원을 부모로 두지 못한 대다수 청년들에게는 ‘로맨스’고 ‘불륜’이고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어야 하는데, 대다수 청년들은 모르겠지만, 그 청년들의 부모쯤 되는 사람들은 조국기부대로 태극기부대로 편을 갈라 공방을 벌인다.
진짜 염병들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