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없다는 말 하기 전에... 그러니까 지역정당
윤석열 정부 내각 구성을 거론하면서, 그 인적 풀의 협소함을 지적하는 분들이 보인다. 협소함도 협소함이지만 그 치우침이란 보는 내가 무안할 지경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비단 이번 정부에서뿐이었을까? 2017년 요맘때 쯤 올렸던 글을 보면, 지난 정부 역시 큰 차이가 없었다. 협치를 강조하면서 등장했던 지난 정권 또한 초창기 청와대 인선 및 총리를 비롯한 내각 인선의 양상을 보면 협치 따윈 고사하고 아예 상대 정치세력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것과 같은 협량함과 편벽함을 보여주었더랬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에서만 그랬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기실 소위 '탕평'이라고 할만한 인사구성을 할 수 있었던 건, 그 저간의 내막을 막론하고 DJ때가 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적어도 권위주의정권의 유지를 위한 재생산 과정에서 배출된 인물들과 민주화운동의 전선에서 길러진 인물들이 상호 경합하면서 백가쟁명하던 때에는 그나마 지금보다는 상대적으로 넓은 인적 풀이 존재했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면 앞으로는 정치권의 인물난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여지가 있을 것인가 생각해보면, 지금과 같은 구조에선 그다지 가망 없는 이야기라고 본다. 공중전만이 남아버린 정치관행에서 소용이 닿는 인물이란 대중적 인지도가 있거나 이미 정치적 지분을 가진 개인이나 인물과 실효적으로 연관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일 수밖에 없고, 그런 사람들은 결국 제한된 관계망 내부의 근린의 정도에 따라 요직을 담당하게 마련이다.
현 정부의 인선에서 보듯, 특정 연령대의 특정 학맥의 남성 위주 인력충원이라는 것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다. 정치권에서야 때만 되면 청년이니 여성이니 이야기하지만, 정작 쓰임새를 따질 때가 되면 그래도 아는 사람, 말 통하는 사람, 또는 더 나가 말 잘 들을만한 사람 위주로 골라내기를 하고, 그 와중에 평소 지연, 학연, 혈연 기타 온갖 연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재력과 학력과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자들이 그 골라내기에 더 쉽게 안착하게 된다. 이러니 말만 청년이고 여성이고 할 뿐이고, 실재 청년과 여성은 그냥 선거철에 잠깐 앞에 세우는 포장지 역할만 하다가 끝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인물에 대한 검증의 과정을 보다 중장기적이고 체계적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 검증의 과정이란 다른 게 아니다. 바로 대중들이 직접 겪어 보는 것, 그리고 이를 통해 대중들이 직접 인정하는 것이다. 지역과 현장에서 직접 보고 경험한 인물들을 검증하고, 그렇게 검증된 능력과 자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 인적 풀을 풍성히 하면, 그 가운데에서 필요에 따라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하여 국가의 일을 맡길 수 있게 된다.
2002년 독일 하원은 19세의 여성 의원을 맞이했다. 독일 녹색당의 안나 뤼어만이 그 주인공이다. 비례대표로 의원이 된 뤼어만은 이후 재선의원이 되었다. 비례의원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의 여느 정당 비례의원처럼 어쩌다 공천받아 느닷없이 정계에 진출하는 케이스가 전혀 아니다. 뤼어만의 아버지는 사회민주당원이었고, 그런 아버지와 뤼어만은 어렸을 때부터 정치현안을 두고 토론을 했다. 10살 때 그린피스 활동을 시작했고, 그러한 활동이 15세부터 녹색당의 활동으로 이어졌으며, 당내 녹색청소년 활동은 물론 헤센주 녹색당 청소년 대변인을 역임하였다. 그 과정에서 정치활동의 능력에 대해 인정을 받았고, 절차를 거쳐 비례대표로 선출되었다.
독일도 당원연령을 16세부터로 하고 있다고 하는데, 사실 정당활동을 시작하는 데 연령의 제한을 두는 건 아니고 그 이전에라도 얼마든지 정당 산하의 청소년 단체에서 활동할 수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독일에서는 정당활동만이 아니라도 청소년시절부터 여러 경로를 통해 정치적 의사표현과 정치적 참여를 할 수 있도록 보장되어 있다는 점이다. 기초자치단체에 '어린이 청소년 의회'가 있고, 이 의회는 지역현안에 대해 어린이 청소년들이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며, 심지어 지자체는 이 의회에 독립된 재정을 보장한다고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실재 역할을 하고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뤼어만은 19세에 연방의회의 의원으로서 활동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일본의 가나가와 네트워크는 스스로를 직접 대표하겠다며 지역의회에 의원을 내세웠을 때가 1987년이었는데, 15명이 출마해서 9명이 당선된 이래 지금까지 주로 여성들의 의회진출이 두드러졌다. 지역활동과 정치활동의 면면이 네트워크를 통해 검증됨으로써 능력과 자질이 보장되는 정치인들이 직접 정치의 일선에서 활동하게 되는 거다. 물론 일본의 정치구조가 중앙정치와 지역정치가 상호 인적 구조의 시너지를 유발하기 어려운 형태로 되어 있다고는 하나, 지역정치에서만큼은 협소한 사적 관계망이 아니라 정치적 과정에서 대중에게 검증된 일꾼들이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역과 현장, 즉 풀뿌리에서부터 일찍부터 활동을 시작하고, 직접 체험 가능한 지근거리에서 능력과 자질을 대중에게 보여주면서 성장한 사람들이 넘쳐날 때, 지역정치를 넘어 중앙정치에 이르기까지 보다 풍성한 정치인의 풀이 형성될 수 있다. 이러한 지형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에서는 훌륭한 인재들의 풀이 만들어질 수 없고, 좁은 틈바구니 안에 낑겨져 있던 그놈이 그놈인 중의 하나가 줄과 재수로 한 자리 하는 꼴을 면할 수가 없다. 이 와중에 정치적 냉소주의 또한 심화되게 마련이며, 그게 쌓이다보면 마르코스의 아들과 두테르테의 딸이 정권을 장악하는 퇴행을 겪게 될 거고.
그러므로 또 다시 강조하거니와, 풀뿌리의 강화가 모든 정치적 난제를 극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고, 그 출발의 도구로써 지역정당이 필요하다. 그러니 다들 빨리빨리 사는 동네마다 지역정당 하나씩 만듭시다.
아, 그나저나 헌법재판소가 미적거리는 동안 지역정당의 이름을 걸고 활동하는 정치인들에게 벌써 탄압이 들어오고 있다. 정당법과 선거법을 위반하였으니 수사대상이 될 것이고 결국 처벌될 것이라는 건데, 아니 이거 도대체 국민들을 얼마나 범죄자로 만들고 나서야 헌법재판소는 판단을 하겠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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