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욱 2심 선고를 보면서
최강욱 의원이 의원직을 상실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아들의 인턴경력확인서를 허위로 써준 혐의에 대해 2심에서도 의원직 상실형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최강욱 의원은 즉시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1심, 2심에서 확인된 위법의 법리가 한결같아서 상고한들 막판 뒤집기에 성공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쌍디귿을 쌍지읒이라 우기거나 '한삼엠'이라는 유행어를 만들어내던 그를 이제는 원내에서 볼 수 없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일들이 누적되면서, 이젠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의 위법행위들이 어느 정도 확인되는 과정을 거친 것 같다. 이미 올 초에, 조 전 장관의 딸과 연관되어 있는 소위 '7대 스펙'에 대해서 대법원은 전부 유죄를 인정했다. 조 전 장관 자녀 관련 여러 행위들이 결국 사법적으로 유죄에 해당한다는 판단들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위법사실에 대한 사법적 결론이 나와도 끝내 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조 전 장관과 그의 식솔은 그가 추진하던 검찰개혁에 저항한 검찰세력과 그 추종세력들에 의해 번제물이 된 희생양들이라는 식의 주장은 끊임없이 쏟아진다. 죄가 없는데 검찰이 죄를 만들었다는 식의 주장도 빈번하게 등장한다. 이들은 앞으로 진행될 조 전 장관 본인의 재판 과정에서도 변함없이 이렇게 떠들어댈 것이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짚어야 할 점이 있다. 과연 문재인 정권을 뒤흔들며 결국 정권마저 뒤바뀌게 만든 진원이었던 '조국사태'는 처음부터 위법이냐 아니냐의 문제가 핵심이었던가?
애초 조 전 장관 자녀들의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그를 옹호하는 측에서 했던 말은 이거였다.
"조국이 무슨 죄를 저질렀는가?"
즉, 조 전 장관이 어떤 위법행위를 했느냐는 거였다. 조 전 장관 자녀 관련 문제가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것이 이들 항변의 핵심이었다. 이러한 입장의 저변에는 "다들 그렇게 하면서 살고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소위 '조국 사태'를 통해, 이 사회에는 논문 품앗이와 인턴경력 위조와 수상 경력의 제공과 서로 장학금 만들어주기 등등이 가능한 계급이 있고, 그들은 다들 그렇게 살고 있다는 것이 새삼 확인되었다. 다른 생태계를 가진 계급이 이 사회에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어떤 계급에겐 당연한 것이 다른 계급에겐 범접할 수 없는 세계의 이야기임이 공공연하게 인식되었다.
이렇게 계급분리의 상황이 드러나는 와중에, 상류계급의 일원들은 한국 사회의 상류계급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들만의 생태를 마치 모든이의 생태인 것처럼 왜곡했다. "다들 그렇게 하면서 살지 않는가?"라면서. 이들에겐 부모를 교수, 검사, 판사, 정치인, 재벌 기타 등등의 상류계급 구성원으로 두지 못한 청년들, 그리고 그러한 청년들의 부모들이 느끼는 박탈감과 허무함은 안중에도 없었다.
이너서클의 멤버들은 "다들 그렇게 산다"는 것이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인사청문과정에서도 드러났다. 한 장관의 자녀가 상당한 규모의 노트북을 복지관에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으로 상을 받거나, 논문을 저술하고 책을 출간하는 등의 엄청난 스펙을 쌓았는데, 이게 과연 아직 고등학생으로서 쌓을 수 있는 업적이냐를 두고 논란이 제기되었다. 윤리적 문제는 물론이고 법률적 문제까지 입길에 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장관은 입시에 사용하려고 한 것이 아니니 문제 없다고 주장했다. 조 전 장관과 비교하자면, 조 전장관의 자녀는 이미 범죄행위의 기수에 이르렀지만, 자신의 자녀는 실행의 착수는커녕 아예 실행의 고의조차 없다는 식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여지없이 한 장관을 옹호하는 쪽에서는 그동안 많이 들어봤던 주장을 내놓는다.
"어떤 법을 위반했는가?"
그런데 이 부류의 인사들이 이러면서 산다는 걸 그동안 몰랐던 것도 아니다. 전 정권, 전전 정권, 전전전 정권, 그 전의 전의 전의 전 정권에서도 이런 일들은 누차 벌어진 바가 있다. 국무위원 후보자들 뿐만 아니라 국회의원이나 고위공무원들도 마찬가지였고, 사법부에서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으며, 학계도 예외는 없다.
굴지의 기업에 채용청탁을 해서 구설에 올랐던 국회의원들이 있었고, 의원 자녀를 비롯해 유력 인사의 자녀들이 국회에서 보좌관이나 인턴 품앗이 했던 일들은 헤아릴 수도 없다. 논문 공저자로 자녀들을 올린 사례를 전수조사하자고 여론이 들끓을 정도로 대학 교수들이 자녀들의 논문실적 올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이걸 일일이 따져서 열거하려면 아마 한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 소위 '조국 사태'의 연장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현상에 내재한 문제의 핵심은 관계자들이 법을 어겼느냐에 있지 않다. 진정한 문제는 이 사회가 계급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공존의 방법을 찾아 나갈 수 있는 의지와 역량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국 사태'와 그 연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동훈 논란은 바로 이러한 우리 사회의 한계를 드러낸 상징적 사건들이다.
'조국 사태' 이전에는 적어도 어떤 마지노선이라는 게 있었다. 민주화 세력을 자칭하는 쪽에서는 말로라도 그런 특권계급을 견제하겠다고 해왔다. 그 반대편에서도 면구스러움 정도는 아니까 쉬쉬하거나 미안한 척이라도 했었다. 그런 양자의 태도를 보면서 대중은 그나마 끓어오르던 분노를 어느 정도 가라앉힐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최후의 기준과 대응의 구조가 깨져버렸다.
'조국 사태'가 터지자 민주화 세력이자 개혁세력이라고 자칭해왔던 그룹에서 "다들 그렇게 산다"는 강변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그동안 뱉어 왔던 주장을 대비해보면 분명 자아의 배신에 해당하는 행위임에도 그들은 "조국 보위=검찰 개혁"이라는 앞뒤 없는 주장을 내밀면서 조국을 감싸고 돌았다.
사건의 실체가 어느 정도 파악이 된 후에도 이들의 태도는 지속되었다. 2021년 연말 추미애 전 장관이 "조국의 강을 바닥까지 긁어내고 다 파내도 표창장 한 장 남았다"는 강변을 한 건 얼마나 이 사람들이 상황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였다.
그런데 정권이 바뀌자, 이번엔 그 반대편에서 똑같은 태도를 취한다. 그동안은 그래도 창피한 일인 정도는 아는 척을 했던 쪽에서 목에 깁스를 한 것처럼 꼿꼿하게 얼굴을 든 채 뭐가 문제냐며 들이댄다. 한 장관 뿐만 아니라 사퇴한 정호영 교육부장관 후보자도 그랬다. 그는 사퇴하는 순간까지도 "법적으로 또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겉으로는 대립각을 세우며 철저하게 쟁투를 벌이는 정치적 라이벌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가끔 서로 정권을 주고받으며 공고한 기득권연맹의 양대 축으로서 서로를 대접하고 있는 이들은, 자신들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환경을 삶의 기준으로 내세우며 그들과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다른 계급의 사람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다들 이렇게 살고 있다!", "법을 어긴게 뭐 있냐?"
자신들을 세계의 전부라고 여기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발상이다. 같은 시공간을 살아가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저 "다들"이라는 표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더 이상 자신들의 계급 안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을 달래고 설득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공존의 가치는 이너서클 안에서만 의미를 가질 뿐, 그 외의 사람들이 느끼는 상실감과 무력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이로서 공화국은 붕괴한다.
2심 판결이 난 후 최 의원은 "정치검찰의 폭주를 알리고 막아낼 수 있다면 어떤 고난이라도 감수하겠다"고 SNS를 통해 밝혔다. 끝내 누구도 어디에서도, 실정법적 차원의 판단 이상의 논의는 나오지 않았고, 모든 사건은 "검찰 vs 그 외"의 구도 속으로 녹아들어버린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씁쓸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어쩌다 이 사회는 이렇게 퇴행하게 되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