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하던 선배의 늙어감을 실감하며...
"저 분이 이제 늙으셨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는 매우 다양하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가장 슬프게 그런 생각이 다가올 때는, 패배주의를 정신승리로 치환하는 행위를 현자의 지혜처럼 이야기할 때이다.
나는 소심해서 공공연하게 공개되어 당사자도 알고 있는 공간에서 이 이야기를 하기가 너무 송구해 그냥 블로그에 끄적이다.
지난 조국사태 이래, 많은 사람들의 본색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 본색을 확인함으로써 분노로 인해 결별하는 사람도 생겼지만, 동시에 허탈함을 느끼면서 처연히 여기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 당사자는 후자의 경우이다. 이분은 내가 정신적으로 나태해질 뻔한 순간마다 공교롭게도 훌륭하고 예리한 글로 정신이 돌아오게 만들어줬던 분이다. 그의 붓끝은 세상의 부정의와 무뢰를 향한 칼끝이었다. 그 칼끝을 바라보며 나는 각오를 다질 수 있었고.
그랬던 분이 조국 사태 때, "그가 어떤 법을 어겼는가"라고 나서는 순간 기존의 신뢰는 깨지기 시작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분이 하는 말이 어떤 맥락인지를 놓치고 있지 않나 저어해서 되새김을 여러번 하기도 했다. 그런데 조국 일가의 불법이 드러나자 그의 칼끝은 검찰을 향했고, "한 가족을 도륙낸" 거악에 대한 분노로 휘감겼다. 혼란의 중심은 다른 게 아니다. 왜 그동안 부정의한 실정법에 대한 도전을 가치로 내세웠던 사람이 졸지에 실정법 주의자가 된 것인가. 왜 민중의 이익에 복무하자고 앞장섰던 사람이 이너서클의 이해관계를 옹호하고 있는 것인가.
오늘 페북에서 그분이 퍼온 이 그림은 나를 완전히 실망시켰다.
프랑스 사람이나 한국 사람이나 나이 들면 다 똑같다고 웃어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을 퍼온 사람의 (내게 가지는) 위상과 그의 멘트 "프랑스 노인에게서 배웁니다!"라는 말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왕의 목을 잘랐음을 자랑하는 프랑스 인민들이 왕의 목을 자를 때는 마크롱 시대였나?
프랑스가 그토록 자랑하는 레지스탕스의 전설은 마크롱이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던가?
오늘날의 민주화를 이루게 된 변곡이 되었던 87년 6월 항쟁은 DJ나 노무현 정권때 이뤄졌던 일이었나?
촛불로 대통령을 탄핵시킬 수 있었던 건 당시 대통령이 민주적이어서였고?
저 패배주의가 마치 세상 달관한 현자의 지혜처럼 돌아다니는 건 좋지 않다. 더구나 그래선 안 되는 사람이 앞장서서 그렇게 하는 건 더더욱 좋지 않고.
존경하던 분의 늙어감이 한없이 씁쓸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