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명예철학박사의 철학

한 명문대학으로부터 명예철학박사학위를 받은 어떤 명사께서는 김우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분"이므로 "이를 참작해서 선처를 바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

 

국가 경제에 쯔나미급 재난을 몰고와서 졸지에 수천명의 밥줄을 끊어버리고 국민의 혈세를 지 주머니에 챙겨 떠난 인간일지라도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면 죄가 사해진다는 것이 이 명예철학박사님의 생각이다. 이정도로 기발한 사고를 가지고 계신 분인지라 명예철학박사학위가 아깝지 않다. 더불어 이러한 기인을 발굴해서 일부 몰지각한 학생들의 궁시렁거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명예철학박사학위를 수여한 그 명문대학의 총장 이하 보직교수들의 혜안이 빛나보이기까지 한다.

 

그러나 기발한 생각이라고 해서 그 생각이 올바른 것이라고 볼 수는 없는 법. 우선 이 철학박사님은 논리구성을 위한 전제조차 부당하게 설정하고 계신다. 김우중이 "젊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는 이분의 판단. 무슨 "희망과 용기"일까?

 

김우중은 세계경영을 통해 상당히 다양한 각도에서 젊은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

첫째, 대우 경영과정에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

둘째, 도피과정에서 "세계는 넓고 토낄 곳은 널렸다"

셋째, 귀국 후 자수과정에서 "빼돌린 돈은 쌓였고 처먹은 놈은 깔렸다"

 

젊은이들이여, "희망과 용기"가 불끈 불끈 솟아나지 않는가? 분식회계도 좋고 빚더미라도 좋다, 문어발식으로 회사 확장하고 닥치는대로 독점하자, 그러다가 망해도 나라가 망하지 내가 망하냐? 한 탕 제대로 하면 평생이 보장된다! 어찌나 "희망과 용기"가 솟는지...

 

돈 버는 놈의 입장에서는 그게 "희망과 용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입장 한 번 바꿔놓고 생각해보자. 대우 그룹 공중분해되면서 구조조정 과정에 모가지가 짤려 슬픈 노동자들이 쌔고 쌨다. 그 중에 젊은 놈 없었겠나? 쌔가 빠지게 일해준 죄밖에 없는데, 졸지에 직장 잃고 길바닥에 나앉아버린 이 젊은 사람은 과연 "희망과 용기"가 샘솟듯 솟구쳤을까? 오히려 "절망과 좌절"의 늪에 빠져버리지 않았을까?

 

그리하여 이 이름 높으신 명예철학박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젊은 사람"은 도대체 어떤 젊은 사람인지 분간이 가질 않는다. 그저 직장에서 짤리지 않기만을 바라던 젊은이들이 추풍낙엽처럼 모가지가 날아갔는데, 이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선처는 커녕 법정최고형에 보너스를 추가해도 모자랄 판이다. 대우신화를 보며 희망과 용기를 가졌을 젊은이들에게 명예철학박사님께서 해주실 일은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면서 지 주머니 채우는 넘들은 언젠가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훈화를 해주는 거다. 그런데 이 명예철학박사님, 생뚱맞게 엉뚱한 소리나 하시면서 "젊은 사람들" 운운하고 있다.

 

요새 젊은 사람들, 넋놓고 다니는 사람들 아니다. 김우중의 현실을 보면서 "희망과 용기"를 가지는 덜떨어진 젊은이가 어디있겠나? 남의 선처 바라지 말고 제 앞가림이나 잘 했으면 좋겠다. 노동자 위치추적, 노조파괴, 불법증여 같은 짓들이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 수 있겠는가? 김우중의 선례가 자신의 노후를 좌우하는 시금석이 될까봐 겁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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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16 19:47 2005/06/1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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