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어카 운구

* 간만에 취생몽사다. 왜 이렇게 뜸했냐고 물으신다면, 술먹었던 기억이 이젠 거의 나질 않기 때문이라고 답해주련다... ㅋㅋ

 

파란만장했던 직장생활을 때려치고 갑자기 뭐에 미쳤는지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대학이란 곳엘 들어갔다. 수험생 역할을 하는 동안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만 그건 또 나중에 썰을 풀기로 하고...

 

대학 가면서 고민한 것 중의 하나는 나이먹고 들어가는데 애들하고 어떻게 지내야하는가였다. 그런데 들어가서 보니 왠넘의 늙은이(?)들이 그리 많은지 행인은 아직 어린 축에 드는 거였다. 학교 분위기도 괜찮았고, 또 나이 들어 학교 왔다는 이유로 늙수구레한 선배들이 허구헌날 술을 퍼먹였다. 이게 왠 떡이냐? 행인이야 뭐 좋아 죽을 지경이었고...

 

입학식 끝나고 보니 같은 학번 중에도 예비역들이 10명이 넘는다. 행인보다 나이 많은 사람도 둘이나 되고, 동갑내기도 둘. 그 중에 한 넘이 어찌나 행인과 죽이 맞았는지 초장부터 알쪼였다. 생긴건 꼭 동네 쌀집아저씨같은 풍모였는데, 마빡은 반 이상 벗겨지고 구렛나룻이 심상치 않은 물건이었다. 배는 산만하게 나오고, 모 대학 다니다가 진로를 바꾼 넘이었는데 아무튼 술 퍼먹는 것에서만큼은 행인과 맞장을 떠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다보니 만난 첫 날부터 우리가 왜 이제 만났냐 하는 식으로 모여 앉아 술을 퍼마시게 되었다. 술자리에는 또 항상 파리들이 꼬이기 마련인지라 이넘 저넘 몰려들어 술을 제끼다보면 고주망태가 되어 아침 동틀 때나 처박혀 잠을 자게 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입학하고 내내 술을 퍼마시던 어느날이었다.

 

아마 3월 중순쯤 되었나보다. 날씨가 꽤 쌀쌀한 날이었는데, 그만 그 쌀쌀한 분위기 좀 풀어보자고 다시 술집에서 회동을 하게 되었다. 서울탁주(특정회사 선전 아님)를 줄세워놓고 빨아마시는데, 술집 주인 아주머니 놀라 기절한다. 배불러서 도저히 더 술을 못마실 정도가 되자 이제 소주로 주종을 바꾸었다. 두꺼비들이 사열을 준비하는 병사들처럼 오와 열을 맞춰 정렬하는 사이 술기운은 계속 뻗쳐 올라갔다.

 

그러다가 그만 이넘이 맛이 가버렸다. 술이 지나치게 취해서 도저히 몸을 가눌 수가 없는 상황이 전개된 것이다. 더 이상 술을 마실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0.1t에 달하는 그넘을 부축하고 학교로 들어갔다. 어디 잘 데가 없을까 하고 학생회실이며 동아리방이며 배회를 하는데, 뭐 딱히 잘만한 곳도 없고 아주 거시기 했다. 동아리방 한 구석의 회의용 테이블 위에 이넘을 눕히고 그냥 거기서 자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이넘이 덩치에 안맞게 몸을 덜덜 떨며 이빨을 딱딱 부딪치는 거다. 원래 추위를 잘 안타는 넘인데 이상하게 몸을 떨고 추워하는 것이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마침 창문에 연극무대에서 쓰는 것같은 두꺼운 커튼이 쳐져 있길래 그걸 뜯어서 이넘을 덮어줬다. 이 커튼은 안쪽은 자주색이고 바깥쪽은 검은색으로 되어 있는 예전에 흔히 보던 바로 그 커튼 되겠다. 꼭 빌로드 같은 느낌의 천으로 된 그거 말이다.

 

대충 덮어줬는데도 이넘이 연신 떤다. 시간이 갈수록 몸을 더 떠는데 이거 이러다가 무슨 사고라도 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겁이 덜컥 났다. 마침 학생회 간부들 몇이 집에 가지 않고 남아 있길래, 주변에 혹시 가서 잘만한 방이 없느냐고 물었다. 왠만하면 여관으로 가겠는데 술퍼먹느라고 남은 돈이 없었다. 학생회 애들이 어딘가 부리나케 갔다오더니 선배 하나를 데려왔다. 몇 차례 같이 술을 마셔서 안면이 있는 선배였는데, 학교 앞에서 야간 알바를 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마침 자기가 야간 알바를 하느라 자취방이 비어있으니 거기 데려가서 자라는 거다.

 

고맙기 짝이 없었는데, 문제는 이넘을 어떻게 데리고 가는가였다. 100kg의 거구인데다가 술까지 퍼먹고 퍼져 있으니 이넘을 굴려서 갈 수도 없고 들고 갈수도 없고 난감한 상황이었다. 궁리를 하다가 퍼뜩 생각나는 것이 있어서 수위 아저씨에게 리어카를 빌릴 수 없겠느냐고 학생회 간부들에게 물었다. 또 냉큼 갔다 오더니 수위아저씨와 함께 왔다. 처음에는 안 된다고 하다가 바로 가져다 드리겠다고 통사정을 했더니 못이기는 척 리어카를 쓰라고 한다. 궁하면 통한다고 이제 됐다 싶어서 얼른 리어카를 가져다가 이넘을 실었다.

 

싣긴 실었는데, 이넘 기장이 좀 길어서 그런지 리어카 길이와 맞질 않는다. 안쪽으로 머리를 집어넣고 발을 뒷쪽으로 뺐는데 정강이 부분부터 발이 리어카 밖으로 삐죽이 튀어나온다. 덩어리가 커서 접어 넣지도 못하겠고, 그냥 그렇게 가기로 했다. 추위를 계속 타기에 어쩔 수 없이 예의 그 커튼을 다시 덮어주었다. 검정색이 위로 가도록 해서...

 

그렇게 리어카를 끌고 학교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자취방이 예상 외로 멀리 있었다. 도보로 한 30분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대로변을 따라 지나가야하는 곳이었다. 한 11시쯤 되었을까? 대낮부터 점심 대신 술을 먹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부랴 부랴 리어카를 끌고 가다가 대로변을 지나게 되었다. 신호등도 건너고 버스정류장도 지나고 그렇게 끌고 가고 있었다.

 

그런데 끌고 가다보니 자꾸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뒤쪽에서 아줌마 아가씨들이 낮으막히 신음을 하거나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아 쒸 도대체 무슨 일이여? 하고 뒤를 돌아보면 아무 일도 없다. 거 참 이상하다 하고는 계속 끌고가는데 계속 그런 일이 벌어진다. 아무래도 이 리어카에 실린 짐때문인 듯 해서 자세를 바꿔 리어카를 밀고 가기로 했다.

 

밀고 가는데, 이건 행인이 봐도 기가막힐 노릇이었다. 시커먼 천에 덮힌 뭔가가 있고 그 뭔가의 발이 삐죽이 나와 계속 흔들거린다. 아무리 봐도 시체를 운구하는 모습 딱 그것이었던 거다.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정류장 앞에 서있던 여성들이 놀란 눈으로 손가락질을 하면서 입을 가리고 수군댄다. 오호... 이 처절한 쪽팔림이여... 그러나 어쩌랴, 가던 길을 계속 가야지...

 

그렇게 계속 가고 있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빽차 한 대가 계속 옆으로 따라온다. 속도도 내지 않고 리어카를 따라 오는데 안에 있는 경찰관이 계속 창문밖으로 넘겨다 본다. 아, 이런... 이 초난감한 상황을 어떻게 탈출해야하는가... 부리나케 뛸까 생각도 했는데, 그러면 진짜 오해 받을 거 같고, 동네 지리도 모르는데 괜히 골목길로 들어갔다가 밤새 헤메고 다닐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저넘의 짜바리들은 가지도 않고 왜 자꾸 따라오느냐 말이다. 차라리 내려서 검문을 하던가...

 

땀은 삐질삐질 나고 술은 다 깨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선배의 자취방에 도착하게 되었다. 따라오던 빽차는 그냥 돌아가고 리어카를 회수하기 위해 동행했던 학생들이 이넘을 방 안까지 집어넣어준 후 리어카를 끌고 돌아갔다. 그리고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같이 누워 잠이 들고 말았다.

 

자다가 눈을 번쩍 떴는데 아무 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방에 창문도 하나 없었던 거다. 완전히 동굴이었는데, 겨우 겨우 손을 더듬어 방문을 찾아냈다. 방문을 열고 보니 그제서야 방 안이 보이는데, 이넘이 없어진 거였다. 아니, 벌써 나갔나 하고는 방문 밖으로 나가는데 갑자기 고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당신 누구야? 뭐하는 짓이야?" 하는 등의... 얼핏 이게 분명 그넘이 뭔가 또 저지르는 것이리라 생각이 들어 후다닥 뛰어나갔는데, 아직 술이 덜 깬 이넘이 마당 한쪽에 있는 수도에다 대고 발사자세를 취하고 있었고 주인 아저씨로 보이는 분이 뛰어나오고 있었다.

 

비틀거리며 계속 소변을 보려고 하는 넘을 붙잡고 화장실을 물어 화장실로 보낸 후 백배 사죄를 했다. 겨우 달래서 들여보내고는 이넘과 함께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이넘...

 

그넘 : 여기가 어디냐?

행인 : 선배 자취방이다.

그넘 : 내가 어떻게 여기 왔냐?

행인 : ...

그넘 : ?

행인 : ...

그넘 : 야... 혹시 어제 내가 뭐 실수라도 했냐?

행인 : ...

그넘 : 아 쉬파 말 좀 해봐라, 뭐 잘못하기라도 했냐?

행인 : 너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고싶냐?

그넘 :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행인 : 너 신성일이라고 아냐?

그넘 : 알지

행인 : 그럼 너 트위스트 김이라고 아냐?

그넘 : 알지

행인 : 너 그럼 맨발의 청춘이라는 영화 아냐?

그넘 : 아직 못봤는데...

행인 : 그럼 그거 한 번 봐라

그넘 : 뭔 소리여??

행인 : 특히 그 영화 맨 마지막 부분을 봐라

그넘 : ?

행인 : 그럼 니가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넘 : ????

 

그넘이 그 영화를 봤는지 안 봤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튿날 이미 리어카 사건은 온 학교에 다 소문이 나있었으니까...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6/17 08:47 2005/06/17 08:47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