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birdwatcher님의 [이어지는 군바리의 시] 에 관련된 글.

#1.

훈련소에서 총기사망소식이 들어오던 날은 무척이나 덥던 날이었다. 사단 신병훈련소 사격장에서 사로에 대기중이던 한 병사가 지급받은 실탄을 장전한 채 자신의 머리를 날렸단다. 부대 전체가 뒤숭숭해지고 헌병대에서 전 장병을 정신교육장에 집합시키더니 소원수리를 긁으란다. 갑자기 미소를 띄며 사근사근하게 다가오는 간부들이 역겨웠다. 끈끈한 땀이 계속 몸을 적시고 있었다.

 

얼마후 진입로 보수공사에 차출되어 노가다를 뛰는데, 함께 작업배치를 받은 기동중대 대원 하나가 영 이상했다. 혼자 열심히 일하다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고, 쉬는 시간에는 멍하니 앉아 있다가 집합소리를 놓치고. 막 들어온 이등병이었다. 혹시 저거 고문관 아닌가 하다가 일 하는 거나 다른 사람이 말 걸 때 보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다가 몸이 워낙 좋아보여서 부쩍 의구심이 들었다.

 

쉬는 시간에 담배 한 대 물려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모 체대에서 기계체조를 전공했단다. 몸이 장난이 아니다. 그러나 표정은 밝지 않다. 이등병의 표정이라고 해도 지나칠 정도로. 무슨 고민이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이친구는 사단 훈련소에서 총기자살한 병사와 동기생이었다. 그리고 그 병사의 바로 뒤에 서 있었단다. 철커덕 소리에 고개를 돌리는 순간 뻥 하는 소리가 나고 뇌수와 피가 자신의 얼굴로 쏟아졌단다. 그것이 잊혀지지가 않는단다.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놀란단다. 담배연기만큼이나 진하게 쏟아져 나오는 한숨소리를 들으면서 아무런 이야기도 해줄 수가 없었다.

 

#2.

통신대에 있다보니 사단에서 오는 거의 모든 연락을 가장 먼저 듣게 된다. 그 중에 하나가 사건사고전파... 전 부대원에게 알리라고 내려오는 사건전파 문건 중에 하나가 유독 기억에 남는다. 그 사건은 바로 우리 부대 옆 부대에서 있었다. 사병 하나가 대검으로 고참병을 찌르고 목을 매달아 자살을 했단다.

 

짬밥을 보니까 자대배치를 받은지 얼마 되지 않은 병사였다. 보통 이런 경우 심약한 신병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사고를 저지르는 것으로 이야기되는데, 그 사건은 달랐다. 이 신병이 대검에 찔린 고참병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던 것이다. 역시나 사건전파가 있은 직후 갑자기 헌병대에서 또 전 장병에게 소원수리를 받았다. 갑작스레 소양교육이니 뭐니 하는 교육도 있었다.

 

그 부대 통신대에 아는 녀석이 있었다. 오밤중에 교환대에 앉아 있다가 심심하기도 해서 연락을 했다. 대략 안부 좀 물어보다가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신병이 아주 앳되게 생겼었단다. 신학전공을 하다가 온 친구였는데, 하필 공병부대 수송부로 보직을 받은 것이 화근이었다. 칼에 찔린 병사는 제대를 두 달인가 남겨놓은 상태였단다. 그런데 신병이 들어오기 얼마 전 애인으로부터 결별선언을 듣고 완전 또라이가 되었다. 마침 그 때 이 신병이 들어왔고, 이 신병은 그 고참의 성폭행 대상이 되었다고 한다. 신학생이었던 이 신병은 수양록에 고참을 용서해달라는 기도를 썼고, 자신에게 내려진 이 상황이 신이 준비한 고통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글을 썼다고 한다.

 

사건 당일, 그 고참은 내무반원이 보는 상황에서 신병에게 성폭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고참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를 했던 그 신병은 결국 사고를 쳤다. 대검을 들고 가 내무반에 누워 있던 고참을 찔렀고, 그대로 달아난 후 수송부 차고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대검에 찔린 고참은 대장이 다 끊겼는데도 용케 생명을 부지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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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방에서 한 병사가 수류탄 투척과 총기 난사를 하는 통에 아까운 생명이 여럿 쓰러졌다. 사건의 경과는 아직도 불투명하다. 국방부의 발표는 의문 투성이다.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사건을 저지른 병사 개인에 대해서도 의문이다. 왜 그런 일을 저질렀을까? 자신을 무시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튼 난감하다. 온갖 설왕설래가 있어 아직은 판단하기가 어렵다.

 

이 사건과 동시에 병사들과 관련된 기사가 속출했다. 귀대를 하지 않던 일병 하나는 목을 매달고, 훈련병 둘은 탈영을 하고, 이등병 하나는 분신을 하고...

 

군대의 특수한 상황, 또는 해당 개인의 이해할 수 없는 성격으로 이런 문제들을 바라볼 수 있을까? 한 언론사가 총기난사를 한 병사가 평소 '게임광'이었다는 기사를 게재한 것을 보았다. 기가 찬다. 그런 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뭘까?

 

근본적으로 이 땅에 군대라는 집단이 있는 한, 그리고 그 군대라는 것이 자기 밥그릇을 놓치기 싫은 육군 장성들의 먹이사슬로 이용되고 있는 한, 이러한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20대 초반 젊은 청춘들의 피를 얼마나 더 빨아먹어야 그들은 만족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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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6/21 09:52 2005/06/21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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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 놈의 '게임'타령 국방부가 또 하더군요. 한마디로 자기네 책임 회피하겠다 이겁니다. 구역질이 날려고 했습니다.

  2. 수부기/ 글게 말입니다. 뭐가 뭔지 모르고 있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