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문을 닫겠단다~!

강제철거 당하고 온 가족이 흘러 흘러 다니다 그나마 정착한 곳이 영등포구 독산동(나중에 구로구로 되었다가 지금은 금천군가??)이었다. 우마차가 다니고 대장간이 있던 동네였다. 도시빈민들이 죄다 모여들던 봉천동, 신림동, 난곡동과 더불어 이 동네 역시 힘들게 사는 사람들이 왕창왕창 몰려들던 시기였다.

 

국민학교(이젠 초등학교라네?) 입학을 했는데, 한 반에 130명이 넘었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3부제 수업을 했다. 아침반 낮반 오후반. 이렇게 3부제를 하면서 한 반 130명이 넘는 학생들이 바글거렸으니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한 학년에 24반이라면 말 다했잖은가? 하교시간과 등교시간이 겹치는 시간대에는 말 그대로 시장좌판이 저리 가라였다.

 

원래 두 명씩 앉도록 되어 있는 책상에 3명씩 앉아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학생들이 돌아다닐 통로도 만들지 못하고 책상 두 개씩을 항상 붙여서 앉았으니 한 칸에 6명의 학생들이 나란히 앉아 공부를 해야했다. 교실 뒷문은 아예 사용이 불가능했고, 겨울철에 난로라도 들일양이면 그 알량한 교실이 더 좁아지는 현상을 경험해야 했다. 그 당시 학생들을 가르치셨던 선생님들, 지금 생각해보면 초인이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물론 계속해서 신작로가 대로가 되고 건물들이 울뚝불뚝 들어서면서 학교도 새로 지어지고, 주소지 근처학교로 모두 전입학이 이루어지면서 어느 정도 아수라장같던 교실 문제는 해결되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 반에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웅성거려야 했고 저학년들일 수록 밀집수업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거주지 주변에 학교로 전학하면서 편도 3km넘게 걸어다녀야 했던 등교길이 부쩍 짧아졌다는 것이었다.

 

암튼 새로 지어진 학교, 공사도 계속 되고 있고, 제대로 다져지지도 않은 운동장은 완전 진흙밭이어서 물컹물컹 거렸다. 학생들은 쉬는 시간, 체육시간 마다 운동장 다지기를 해야했고, 아침에 새마을 청소, 하교길에는 의무적으로 운동장 몇 바퀴 돌고가기 등의 운동을 해야했다. 그땐 그 작은 학교가 왜 그렇게 커보였는지 모르겠다....

 

중학교도 신설학교로 입학했다. 역시 운동장 다지기가 일이었다. 새카만 교복을 입고 시커먼 모자를 쓰고 등교를 해서 허구헌 날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밟아야 했다. 역시 한 반에 80명 가까운 학생들이 북적거리는 것은 마찬가지. 고등학교 들어가서야 겨우 63명이라는 경이로운 소수정예(?) 반편성이 이루어졌다. 공고는 그랬는데 인문계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3년 학교다니면서 10여명이 퇴학을 당하거나 자퇴를 하는 바람에 졸업할 때는 48명이 졸업을 했는데, 인문계 다니던 친구들이 매우 놀라와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콩나물 시루같은 환경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왕따같은 것은 없었다. 학내에서 폭력을 행사하고 떼지어 다니며 물의를 일으키는(요즘 용어로는 일진이라고 하나?) 학생들도 없었다. 물론 인간 이하의 체벌을 가하는 선생들(님자 붙이기 싫다...)도 있었는데, 그거야 뭐 그 당시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겼었고...

 

돌이켜보면 지금 학교환경보다도 훨씬 열악했던 학창시절이지만 꽤 재미는 있었다. 그 많던 친구들, 급우들 중 지금도 기억나거나 함께 만나는 친구들은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다들 제 나름대로 사회의 한 구석에서 땀 삐질삐질 흘려가며 열심히 살고 있다.

 

행인이 다녔던 초중고등학교는 모두 공립 내지는 국립이었다. 사학재단의 문제라는 것은 경험해본 바가 없다. 친구들 중에 사립중학교나 사립고등학교 다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어린 나이에도 이상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는데, 사실 교육문제에 쬐끔 관심을 가지기 전까지는 그게 그리 큰 생각할 거리도 아니었었다.

 

그런데 오늘, 국회의사당 앞에서 일군의 어르신들이 동장군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집단으로 모이시어 여차직하면 학교 문을 닫아버리겠다는 충격적인 말씀들을 하셨단다. 해서 이게 어찌된 연유인가를 살펴보았더니 현재 국회에 계류중인 사학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학교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걸레가 된 사학법, 그거 가지고 이 난리를 칠 이유도 사실 이해를 잘 못하겠지만 학교 문을 닫겠다는 협박질을 해대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학교 문을 닫겠다는 것은 그 학교 다니는 학생들을 학교 밖에 내팽개치겠다는 이야기다. 엄동설한 혹한의 한파를 뚫고 그 자리에 모이신 어르신들이야 자신들의 밥그릇 때문에 비장한 각오로 학교 문을 닫겠다고 하지만 죄없는 학생들의 학습권이나 인격권은 전투경찰 방패에 묻은 때만도 못하다는 이야긴가?

 

사실 사학재단 문 닫고 학교 폐쇄한다고 하면 뭐 별수 없이 한 반에 130명이 바글거리던 과거 어느 시절을 재현해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해도 학생들 알아서 공부하고 지 찾아 할 거 다 찾아 한다. 비장한 각오로 학교의 문을 닫아버린 사학재단의 고명하신 어르신들에게 버림은 받았을지언정 학생들 어떻게든 배움의 길을 계속 걸어갈 수는 있다는 거다.

 

그런데 실제 사학재단 문 닫아버리면 가장 염려를 해야할 당사자들은 바로 그 차가운 아스팔트에서 비장한 각오를 다지던 어르신들이다. 어차피 학생들을 등록금 내는 상품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학교 문 닫는 바람에 거리로 나앉게 될 교직원, 교사, 교수들의 앞날은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학생, 교직원, 교사, 교수들의 목줄을 방패삼아 협박을 하고 계시는 거고. 하지만 헛다리를 짚어도 단단히 짚으셨다.

 

솔직히 대한민국 사학재단 중 학생들의 등록금 없이 재단 운영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재단 전입금 한 푼도 학교로 가져오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 등록금 전용해서 재단 관계자들 배채우는데 사용한 사람들 줄 세워놓으면 연병장 열바퀴 돌리고도 쬐끔 남을 거다. 그런데 이들이 학교 문 닫고 학생들 등록금 받지 못하면 이젠 뭔 수로 배를 채울 수 있을까?

 

비장한 각오로 문닫는 사학재단에 대해서는 국가가 그동안 지원했던 돈 모두 회수해야 한다. 그럼 누구 손핼까? 학생들, 당분간 힘들겠지만 좀 고생할 수도 있다. 뭐 어차피 학교에서 배우는 거 보다는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은 학생들의 경우에는 더더욱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거다. 기왕 그럴 바에 이 어르신들, 이번 기회에 정말 비장한 각오로 사학재단 문 닫아보실 것을 권한다. 학생들이야 공부를 하던 말던, 교직원 교사 교수들이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을 하던 말던 상관하시지 말고 학교 문 한 번 닫아보시기 바란다. 강추다.

 

노회한 어르신들, 산전수전 다 겪어 보신 분들이니까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 이런 협박을 해보시는지는 몰라도 이번엔 번짓수가 틀렸다. 그래도 착한(?) 전경들이 이 어르신들에게는 물대포를 쏘지 않았는가보다. 그거 한 번 맞아보시면 정신이 번쩍 들 수도 있었겠지만 반인권적 물대포를 강력 반대하는 행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어르신들, 제발 헛발질은 한 번만 하시고 따땃한 아랫목에서 그동안 세습족벌체제로 운영하던 재단관계자들 다 모아놓고 종친회 망년회나 한 번 하시기 바란다. 저물어가는 연말에 노망드신 것처럼 횡설수설 하셔서야 어디 교육자로서의 체면이 서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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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8 22:53 2005/12/08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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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5/12/09 17:08

    행인님의 [학교 문을 닫겠단다~!] 에 관련된 글. 사학법 통과되었다. 그 알량한 법안 하나 통과시키는데 뭔 시간이 이렇게 많이 걸리나 짜증스럽기도 하지만, 그나마 이렇게라도 통과가 되고

  1. 산오리가 서울의 어느 국민학교에 전학왔더니 한반에 110명 가까이 되던데... 130명은 좀 뻥튀기 한거 아니신지? ㅎㅎ

  2. 산오리/ 아무리 블로그 제목이 "뻥구라"지만 그런 걸 뻥튀기 했겠습니까? ㅎㅎㅎ 제가 있던 반은 거의 140명 가까웠습니다. 애들이 책상위로 돌아다니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였죠.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가려면 앞문으로 나가야되는데 이 때 책상위로 나오는 애들이 많아요. 담임선생님은 쉬는 시간에도 거의 교실에 같이 계셨는데, 그 때도 선생님이 모른척 할 정도죠. 그 학교 이름은 문성국민학교였습니다. ㅎㅎ 지금 생각하면 거기서 어떻게 지냈는지 희한할 정도긴 하지만요 *^^*

  3. 요새 초등학교는 한반에 30명 정도 되는거 같은데요..나때 거의 60명정도였던거 같은데 절반 정도군요..
    (행인님에 비하면 백명이나 줄었군요..ㅡㅡㅋ)

  4. 현근/ 나 다닐때도 50명이 조금 안됐었는데.. 60명이라니!!

  5. 정양>>정양네 동네는 그랬나 보죠...우리 동네는 그랬소..ㅡㅡ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