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플레이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을 본 심정을 한 줄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머리 진짜 좋은 사람이다"

 

물론 여기서 머리라는 뜻은 잔뇌(殘腦 : 우리말로 번역하면 잔대가리 쯤...)를 의미한다. 대뇌와 소뇌의 중간 어디쯤 있을 것으로 짐작은 되지만 아직까지 그 실체가 발견되지 않은 미지의 신체영역, 잔뇌. 그러나 황우석 교수를 보면서 드는 생각은 비록 실체가 발견되지는 않았지만 잔뇌가 무척 발달한 사람이 있다는 확신이었다. 존재하진 않았지만 존재했을 것으로 꽤 많은 사람들이 철석같이 믿고 있는 '황우석표' 줄기세포처럼...

 

그 현란한 수사들을 보면서 황우석 교수가 매우 잔뇌활동을 뛰어나게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 것은 다름이 아니다. 그는 검찰의 수사가 진행될 수 있는 모든 혐의의 영역에서 자신이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일단 황우석 교수는 업무상 배임·횡령, 무고죄, 생명윤리법 위반,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가 있고, 한 시민으로부터 사기로 고발당하기까지 했다. 여기에 또 어떤 죄가 추가될지는 검찰 수사에 달려있다.

 

모든 범죄의 원천은 논문의 조작. 논문조작을 황우석 교수가 직접 지휘했다는 정황과 증거가 있으면 앞에 열거한 가지각색의 범죄혐의로부터 황우석 교수는 자유로울 수 없게 된다. 그러나 황우석 교수, 그렇게 그냥 앉아서 당할 사람이 아니다. 졸지에 동반추락하게 된 연구원들을 뒤에 도열시켜놓고 처음부터 끝까지 일목요연하게 논문의 조작에 자신은 아무런 책임이 없음을 이야기했다.

 

우선 논문조작에 미즈메디와 한양대 등이 개입되어 있게 되면 무고죄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 생명윤리법은 연구원 난자적출과정에서 강압이 있었음이 증명되지 않으면 처벌하기 곤란하다. 의료법 역시 마찬가지. 나머지 죄목들이 문제가 되는데, 논문조작 과정에서 황우석 교수가 전혀 그 사실을 몰랐고, 직접 조작을 지시한 증거가 없다면 역시 처벌이 곤란해진다. 더구나 매우 과학적인 주의주장들이 배경에 깔려 있는 사건이라 검찰이 몇 년 충실히 생명공학 공부를 하면서 사건을 수사하더라도 쉽게 결론내기 어려운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전에도 한 번 언급했던 것처럼, 이 사건 해결될려면 최소 5년은 걸리지 않겠나 싶다. 사법적 판단은 물론 사법적 판단과 더불어 진상 자체가 어느 정도 명확해지기 위해서도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소요될 듯 싶다. 이 과정에서 사법적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황우석 교수의 범죄사실을 증명할 증거가 발견되어야 하는데, 확증을 찾기는 매우 까다로울 것으로 전망된다. 황우석 교수는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하긴 뭐 서울대 발표나기 전부터 변호인들과 계속 논의를 해왔다고 하니 머리 좋은 변호사들이 이것 저것 많이 가르쳐주기도 했을 거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 가고, 어느 순간 뭔가 결정적인 과학적 성과 하나 건져 올리면 그야말로 권토중래, 황우석 교수 이걸 노리는 건가? 아무튼 참 갑갑하다. 앞으로도 잊을만하면 한 번씩 황우석 교수의 이름이 세인의 혓바닥 위에서 돌아다닐 것이고 그 때마다 또 이러쿵 저러쿵 말들이 샐 것이고...

 

나도 의대를 갈 걸 그랬다. 가서 있는지 확인은 되지 않지만 있다고 우겨도 될 잔뇌에 대한 논문이나 써볼걸...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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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2 23:21 2006/01/12 2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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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물론 이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유야무야되겠지요.ㅠㅠ... 그러나 이번처럼 황우석 씨가 사기를 칠 수는 없을 겁니다. 젊은 과학자들이 끊임없이 사실을 밝힐 테니까요, 이번처럼!!! 이런 희망으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2. 황교수는 이미 연구의 윤리적 측면에서의 너무 많은 거짓말이 밝혀졌기 때문에, 뭘 어떻게 해서 만약 권토중래한다면, 정말 과학사에서 영원히 남는 야만적 사례가 되는거죠. 그러니 그것보다 스스로를 대상으로 새롭게 '잔뇌'연구에 나서는 것이 인류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_^;;; 행인님이 좀 양보하셔도 될 것 같네요. 하하. 그러고 보니, 연구대상이 무척 많아서 발전 가능성이 있어보이는데, 이참에 한 번....

  3. 이재유/ 그렇습니다. 저도 그게 이번 사태에서 거둔 최대의 수확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추려는 힘이 강한 만큼 밝히려는 힘도 강하게 작동한다는 것. 이거 까먹고 살뻔 했는데, 이번에 또 다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hand/ ㅋㅋㅋ 황박사께서 '잔뇌' 연구하신다면야 저는 빠져야죠. 그분을 어찌 따라잡겠습니까... 다른 거는 몰라도 기자회견에서 제자들 쭉 도열시켜놓은 거 보니 저런 사람 절대 큰 자리 올려놓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은 혼자먹고 과는 남들에게 돌리고... 이거 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