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나쁘셨어여?

한가한 틈을 타 웹서핑을 하는 낙에 사는 행인, 오늘도 하나 건졌다. 참세상 기사에 경제 5단체가 인권위 NAP권고안에 대해 집단적 대응을 했다는 내용이 떴다. 이분들, 경제활동에 바쁘실텐데 어쩐 일로 이렇게 떼로 모여 웅성거리셨나 하고 봤더니, 국가인권위원회의 이번 권고안 중 특히 몇 가지 문제때문에 기분이 나쁘셨던 게다.

 

그리하여 궁금증이 발동한 행인, 경제 5단체라는 곳에서 어떤 의견을 내셨나 하고 살펴보기로 결정. 가장 대표적인 단체인 한국경영자총연합회(이하 경총) 사이트를 방문하였다. 거기서 보도자료를 살펴보니 아니나 다를까 장문의 글로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반박하는 보도자료가 올라와 있었다.

 

'법제팀'이란 곳에서 작성했단다. 아무래도 법률과 관련된 부분이다보니 법률 전문가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대응논리를 만들었겠지. 전공이 전공이다 보니 이 전문가들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이론을 정립하고 있는가 확인해야한다는 의무감이 발생했다. 그래서 주우욱 읽어 보았는데 결론은 이거다. ㅗ(_._)ㅗ

 

양심적 병역거부, 공무원·교사의 정치활동 허용, 집회 시위의 보장 등과 관련하여 제시한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이 경총 법제팀은 "안보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으로서 인권의 존립기반 자체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이라고 평가한다. 뭐 줄줄이 이유를 제시하고 있는데 대부분 ㅗ(_._)ㅗ  이걸로 끝나는 이야기다. 특히 이들이 신념에 의한 병역거부(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인권위가 헌법정신과 보편타당한 사회적 가치를 반영한 헌재 결정과 대법원 판단에 거스르는 권고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한 것은 국가기관 스스로 헌정질서를 부인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는 실소를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뻔데기가 보톡스 맞고 주름펴는 소리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중언부언하는 이야기들은 그냥 애교로 봐 넘겨주고 이들이 촉구안이라고 내놓은 것에 대해서는 좀 이야기해야할 필요성이 있다. 이들의 촉구안 중 2번째 항목은 정부가 노사관계에 대한 국가인권위의 권고를 과감히 거부하라고 되어 있다. 국가인권위 권고 안대로 하면 "우리 경제와 사회는 총체적인 혼란으로 인해 엄청난 부담을 감수할 수 밖에 없음"이란다. 얘들은 이렇게 웃겨도 법적인 근엄함을 앞에 두고 근엄하게 사람을 웃긴다.

 

우리 경제와 사회를 총체적인 혼란으로 몰아가고 있는 주범이 쟁의하고 있는 노동자들인가?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행사하는 노동자들을 폭도로 몰아부치고, 그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면서 노동자 감시하고 폭력행사하는 범죄행위를 저지르는 자본가인가?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이윤을 둘러싸고 형제끼리 싸움질 하고, 편법 증여하고, 정치자금 갖다 바치는 경총 구성원들은 요단강 건너 저편에 살고 있는 천사들이냐?

 

촉구안 3번은 이 보도자료의 백미다. "노사갈등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인권위가 더 이상 노사문제에 관여하지 말아야 할 것"이란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고용상 차별에 있어서 직무, 능력, 성과에 따른 차이와 불합리한 차별을 구분하기 위해서는 산업에 대한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단다. 그러니까 이런 문제에 인권위가 끼어들지 말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 하나. 니들은 인권이 뭔지 알고 인권위가 하는 일에 감놔라 배놔라 하나? 쥐랄 옆차기도 이정도면 올림픽 금메달 감이다. 할 말이 있으면 또박 또박 할 일이지, 법제팀 씩이나 된 사람들이 어버버 하고 있으면 법전이 불쌍해진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이들이 제시하고 있는 해법은 여전히 성장이다. "840만명의 비정규직 근로자가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면 그것은 이미 인권으로 풀어야할 문제가 아니라 기업의 성장을 통해 경제적으로 해결해야할 문제"라는 발상이 그것이다. 이들이 경제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자신들의 말 마따나 "일자리 만들기"이다. 그러나 시설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자본의 팽창 및 투기자본의 성장이 경제성장의 중심이 된 지금, 지들이 주장하는 "일자리 만들기"를 지들이 하고 있지 않고 있는 현상에 대해서 이들은 침묵한다. 그나마 쪼끔씩 나는 자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비정규직으로 채워넣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이들은 함구한다.

 

겨우 한다는 소리가 앞으로 지들이 "투명하고 창의적인 기업가정신으로 재무장하는 한편, 지속적인 투자확대를 통해 보다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비정규 중소기업 근로자의 처우개선 등 사회·경제적 양극화를 해소하는데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겠다는 선언이다.

 

이 선언에 동참한 경제 5단체는 대한상공회의소,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무역협회,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한국경영자총협회다. 이 단체들에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는 기업들, 얼마나 투명한 경영을 하고 있을까? 인권위의 권고를 정부로 하여금 무시하라고 압력을 집어 넣으면서 이들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일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전환할까? 비인간적 노예노동구조 속으로 노동자들의 등을 떠미는 그 수많은 회원사들에 대해 이들은 어떤 책임있는 조치를 해봤는가? 앞으로 잘 하겠다고? 뭘 근거로 그 말을 믿을까?

 

경총 이하 경제 5단체, 주제넘는 짓 하지 말고 뜨끔하는 거 있으면 조용히 눈치나 보고 있을 일이다. 앞으로 진짜 잘 하던가. 특히 이 보도자료 작성한 법률팀이라는 소속의 사람들, 이런 식으로 학문의 본류를 왜곡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까 자꾸 법 공부한 사람들이 도둑놈 취급 받는 거다. 솔직히 말하자면 니들같은 사람들 때문에 멀쩡한 사람들까지 도매급으로 도둑놈 취급받는 것 이거 아주 불쾌하고 괘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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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7 20:02 2006/01/1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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