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평화를 위한 제전?

축구는 축구고 정치는 정치라는 말이 허구라는 것은 지난번 포스트에서도 밝혔다시피 개뻥이거나 순진무구한 발상이거나 둘 중 하나다. 다른 스포츠 역시 마찬가지지만 축구라는 이 일종의 주술과도 같은 운동은 그 발전과정 자체가 사회변화와는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관관계를 가지고 진행되어왔음을 보더라도 스포츠는 그 저변속에 정치적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옛날부터 공 비스무리하게 생긴 뭔가를 가지고 장난질 치는 것은 세계 도처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오늘날 영국을 축구의 종가로 만인이 인정하게 된 것은 현대식 축구의 룰과 형식이 영국에서 다듬어졌기 때문이다. 삼국시대에도 축국이라는 일종의 구기경기가 있었다고 한다. 이 축국과 얽힌 일화 중에 한국사람들 대부분이 알고 있는 김유신과 김춘추 이야기가 있다.

 

다들 아시는 이야기지만 그 내용을 간략히 말하면 이런 거다. 김유신, 삼국통일(?)을 이룬 명장이자 훗날 왕이 되는 김춘추의 처남이 되는 정치인. 화랑이었던 어린 시절부터 음주가무를 즐기던 김유신. 이 청춘은 한 때 천관이라는 여인과 사귀다가 어머니의 꾸지람을 듣고 개과천선 뭔가 열심히 해볼라고 했던 과거가 있었다. 그러나 제버릇 개 못준다고 이 청춘이 또 술을 퍼먹고 말에 올라 기절해 있는 동안 충직한 이 말이 주인을 옛 애인에게 데려다 줬단다. 그랬더니 이 청춘이 화를 버럭 내며 지 좋은 일 시켜줄라고 했던 애꿎은 말의 모가지를 베어버렸단다. 원 별... 술처먹기 좋아하는 지 혓바닥을 자르던가 아니면 지 腎을 자르던가 할 일이지...

 

그러다가 세월이 흘러 김춘추하고 친구먹고 지내는 동안 김유신, 김춘추가 왕자리 오를 위인이라는 것을 눈치챈다. 때를 보아 김춘추를 집으로 초대하고 축국을 했더란다. 그러다가 은근슬쩍 김춘추의 옷자락을 찢어놓고는 지 여동생에게 수선하라고 시키고설랑 어영부영 김춘추와 합방을 시켜버린다. 그리고는 나중에 김춘추가 나몰라라 하고 쌩까고 있자니 김유신, 선덕여왕이 행차하는 시간에 마당에 장작불 쌓아놓고 여동생을 태워죽인다고 생난리를 쳤다. 사정을 알게 된 여왕이 김춘추와 김유신의 동생을 맺어줌으로서 사건은 일단락 되었다는데...

 

생각해보면 이 김유신, 참으로 요사스런 짓을 한 거다. 다 큰 남녀 한 방에 넣어놓고 둘이 뭐 쎄쎄쎄 하고 있을 줄 알았나? 그게 걱정되었으면 수선할 옷 누군가에게 시키고 지가 김춘추 붙들고 앉아있거나 할 일이지. 게다가 그놈의 장작은 얼마나 물에 적셨길래 행차중인 여왕이 경주 남산자락에서 연기를 발견하고 수하를 보내고 다시 그 수하에게 보고받고 김춘추 부르고 김춘추가 에그머니나 깜짝 놀라 김유신의 집에 달려갈 때까지 불도 제대로 안 붙고 연기만 올랐다냐...

 

선덕여왕이 경주 시내에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던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당시 신라의 중심지였던 경주, 어찌나 살림살이들이 고급이었던지 아궁이 장작불까지 숯으로 해결했단다. 연기 날 일이 별로 없었던 거다. 그 덕분에 김유신의 장작불 시위가 먹혔던 거다. 하긴 그 후예인 오늘날 한국사람들, 뻑하면 청와대로 촛불들고 쫓아가긴 한다만...

 

아무튼 건 그렇고 이렇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 비스무리한 것을 차고 달리고 끼고 던지고 하던 놀이가 성행했다는 것은 여러 기록으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의 공놀이는 일정하게 사그라들었던 반면, 영국이라는 이 토끼 몸땡이같이 생긴 섬나라에서만큼은 유독 극성스런 공놀이가 성행했다. 영국 공놀이의 역사적 발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시간 날 때 다시 썰을 풀기로 하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놈의 축구가 중세 이후에는 계급간 투쟁의 다른 모습으로 발현하기 시작한다는 거다. 당시 축구는 오늘날처럼 규격화된 경기장 안에서 일정한 숫자의 선수가 모여 서로 승패를 가르는 형식으로 치루어진 것이 아니라 산으로 들로, 또는 동네 곳곳에서 수백 수천명이 서로 마빡 터지게 싸우고 다리뼈 부서지게 걷어차면서 즐겼던(?) 집단적인 경기였다. 물론 승패를 결정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누가 이기고 지느냐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얼마나 영웅적인 활약을 벌였으며 어떻게 상대방을 대적했는지 하는 무용담의 생성이었다.

 

눈여겨 봐야할 것은 영국의 인클로저 당시에 이 공놀이가 인클루저에 저항하는 일종의 투쟁수단이었다는 점이다. 졸지에 농경지를 양떼들에게 뺏기게 된 영국 민중들이 공을 농장 안으로 차고 들어가면서 울타리를 부수고 목축지를 황폐화시키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졌다는 거다. 당연히 지주와 자본가 계급, 그리고 이에 기생하던 권력집단은 이러한 인민들의 놀이를 일종의 소요사태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을 거다. 권력을 이용하여 집단적 공놀이는 수시로 금지되었지만 한 번 공이 뜨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게다.

 

계급간 경쟁의 수단으로 축구가 이용되던 현상은 오늘날 그 대상과 형식을 달리 하면서 본질을 유지한다. A매치로 불리는 국가대항전이 열리는 날이면 온 천지사방의 TV앞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건 "대~한민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잉글랜드에서, 이탈리아에서, 프랑스에서, 스페인에서, 브라질에서, 우루과이에서, 아르헨티나에서, 멕시코에서 공히 벌어지는 현상이다. 사상 첫 월드컵 본선에 오른 토고의 경우, 사실 축구를 하거나 보는 일 이외에 할 게 없단다. 13억 중국은 또 어떤가? 한국과 경기가 벌어지는 날이면 중국, 공장에 빠지는 사람이 줄을 선단다. 이건 뭐 좋은 일인 거 같긴 한데...

 

민족감정 역시 극도로 고조된다. 해방 후 한일전 처음 열렸을 때, 이승만은 왜놈들을 한국땅에 들일 수 없다고 하면서 월드컵 예선 두 경기를 모두 일본에서 치루라고 했다. 출정을 앞둔 선수들에게 "국부" 이승만이 한 이야기는 "일본에 지면 현해탄을 건너오지 마라" 였단다. 한국의 이승만도 그렇지만 이라크 후세인의 아들은 한 술 더 떴단다. A매치에서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온 자국 선수들을 목만 내놓고 땅에 묻어두었다나... 지가 무슨 고리대금 채권 추심하는 조폭이냐...

 

히틀러가 게르만 민족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올림픽을 개최했던 것처럼 무솔리니 역시 이탈리아 국민의 단결을 위해 월드컵을 개최했다. 독재자가 아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 인종간의 단합과 내부안정의 도모, 국민적 화합 모색이라는 취지에서 월드컵과 같은 국제대회를 유치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계속 이어진다. 배타적 민족주의의 분출을 총칼 대신 축구공으로 대신하거나 자국 내의 문제해결을 위한 해결사로 축구공을 띄우는 것이다. 98년 프랑스 월드컵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축구가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는 것이 진실. 국제대회에서 한국선수들은 일본을 만나면 죽자 사자 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줄곧 그렇다. 그리하여 어찌어찌 일본에게는 아직까지 높은 승률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다음이 문제다. 일본하고 이렇게 끝장을 보고 나면 다음 경기에서 완전 죽 쑨다. 일본전에서 힘 다써버렸으니 어쩔 수 있나... 월드컵으로 위상을 드높였던 무쏠리니는 히틀러와 마찬가지로 분사. 시체까지 홀라당 타는 수모를 겪는다. 이승만은 4.19로 쫓겨난다.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 기념일이다. 후세인은 미국애들에게 산채로 구덩이 밖으로 끌려 나왔고 그 아들이라는 넘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무소식이다.

 

이런 역사적 사실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축구를 통해 세계에 평화를 어떻게 해보자는 구호는 계속 이어진다. 그리하여 남한과 북한은 공동축구팀을 꾸린 바도 있다. 한국과 일본은 월드컵을 공동주최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남과 북은 하나가 되고 한일관계는 선린우호관계로 변화했나?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남과 북은 여전히 관계의 교착상태에 빠져있고 일본과 한국은 독도를 가운데 두고 신경전이 한참이다.

 

축구가 이처럼 정치적 맥락으로만 이해된다면 그것은 정녕 서글픈 일이다. 그러나 시원하게 날아다니는 축구공을 보면서 이것이 자칫 27만원짜리 인생 전두환이 펼쳤던 3S의 일환으로 어느 순간 전환될지도 모른다는 경계심을 늦출 수 없는 것은 항상 염두에 둬야만 하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이 스포츠가 어쩌면 평화를 가져다 줄 수도 있다는 희망을 버리기는 너무 아깝다.

 

이번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보신 분들은 '레인저스'라는 클럽의 이름을 들어보셨을 거다. 유럽 클럽 대항전에 왠 미국팀이 나왔나 하고 어리둥절하는 분들이 간혹 있던데, 이 팀 스코틀랜드 팀이다. 역사와 전통을 가진 클럽인데 이 팀은 흥미롭게도 프로테스탄트 교도들 즉 개신교도들이 만든 팀이다. 스코틀랜드에서 이 팀과 숙적으로 불리는 '셀틱'이라는 팀이 있다. 이 팀은 캐톨릭 즉 구교도들이 만든 팀이다. 이 지역에서 일어났던 역사적인 종교갈등에 대해 조금이라도 들어보신 바가 있는 분들은 대강 이 두 팀이 어떤 사이였을지를 짐작하실 수 있을 거다. 레알과 바르사 만큼이나 앙숙이다. 이 두 팀이 맞붙는다는 것은 구교도들과 신교도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960년대에 '셀틱' 팀에 개신교도 감독이 부임하고(나중에 스코틀랜드 국대 감독이 된 잭 스테인) '셀틱' 팀이 1967년 유럽 챔피언이 되자 신구교도 간의 갈등이 많이 해소되는 현상이 벌어진다. 축구 하나가 종교간 갈등의 치유제로 이용된 것이다. 물론, 이 종교간 갈등이 내부적인 것이었다면 그 내부적 갈등을 외부적 기제로 치유한 것이기에 결국 또다른 형태의 구분이 성립되는 것이겠지만서두...

 

축구라는 스포츠 안에 정치적 맥락이 살아 숨쉰다는 사실은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적 맥락이 악용되지 않도록 감시하는 것 역시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해야할 역할이다. 그런 부분을 이해한다면 축구가 좀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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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19 22:53 2006/04/19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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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축구라는 걸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 생각도 해보지만... 넘 재미없어! 공 날라댕기는 거 잼나게 보면 되지 뭐.

  2. 재밌네요.. 하지만 따지고 보면 모든 국제경기가 그런것 아니겠습니까.. 레인저스와 셀틱 얘기는 잘 모르던 얘기로군요.. 혹시 둘이 연고도 같은가요? 항상 둘이서 우승을 다투던데.. ^^;

  3. 우와 셀틱과 레인저스과 종교적인 문제가 연관 된건 또 처음 알았군요 >_< 흐음... 그러고보니 정치적인인 문제를 가지고 축구 골 세레머니를 하는 경우도 있다죠? >_< 옛날에 마라도나는 항의의 의미로 손으로 골 넣은 적도 있다고 하니... 아 이건 그것과 별개의 건가요? >_<;;

  4. 말걸기/ 공 날라다니는 거 보면서 재미를 느끼는 것은 축구를 좋아하게 되는 1단계. 선수들을 분석하기 시작하면 2단계 돌입. 응원하는 클럽이 생기고 그 클럽에 대한 역사와 인물들을 확인하게 되는 단계가 3단계. 축구에 얽힌 이야기들을 찾아다니기 시작하면 4단계. 자나 깨나 축구만 생각하고 축구만 보고 축구만 하는 단계는 폐인단계... 말걸기는 현재 1단계 ㅎㅎ

    ileshy/ 셀틱과 레인저스는 스코틀랜드 글라스고 동 서에 위치한 같은 연고지의 팀들입니다. 이들 두 팀의 더비는 글라스고더비(또는 올드펌 더비)라고 해서 전 세계 리그전 중에서도 가장 관심을 많이 받는 숙적간의 더비전이죠. 나중에 여기에 대해서 짤막한 포스트를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번 스코틀랜드 리그에서 셀틱이 우승을 했습니다. ㅎㅎ

    에밀리오/ 2002 월드컵 당시 미국과 경기를 할 때, 안정환이 골을 성공시키고 선수들이 일제히 코너플랙 부근으로 달려가 숏트트랙 장면을 골 세레모니로 연출했죠. 그 때 이천수가 오노의 '만세' 액션을 흉내낸 적이 있었는데, 국제축구연맹에서 이것을 A매치에서 금지한 "정치적 의사표현"이라는 이유로 제재했던 일이 있습니다. 벌금을 냈죠, 아마... 마라도나는 항의의 의미로 골을 넣은 것이 아니라 동물적 감각으로 손을 갖다 댄 겁니다. 나중에 영국 언론에서 그 사건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가를 물었을 때, 마라도나는 영국의 포클랜드 침공에 대한 부분을 들먹이며 다시 또 그런 기회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영국국민들의 격렬한 비난을 받은 적도 있죠.

  5. 중세 시대에 몇백 명씩 떼로 지어 공을 차는 모습은 저의 군대스리가에서 행해지던 것이었습니다^^... 아직도 군대스리가에서 이렇게 떼로 공을 차는지는 모르겠군요^^... 저는 일부러 군대스리가에 참가하지 않았습니다^^... 군대스리가(K리그)... 그러니까 K리그는 해방 이후에 생겨난 리그라는 말씀... 믿거나 말거나...ㅎㅎㅎ...

  6. 연고는 달라도 비슷한 정치적 맥락의 팀을 꼽으라면 보카와 리베르플라테를 꼽을..

  7. 이재유/ 말씀대로 한국축구가 국기로 승격된 데는 군대스리가의 힘이 컸죠. 특히 박통시절에 그랬는데요, 국대 이름도 1부는 화랑, 2부는 충무... 집단축구를 통해 전투력향상을 도모하던 그 경향이 아직도 남아 전투체육의 날의 꽃은 항상 축구였다는...

    나카무라/ 그쵸. 보카후니어스(보카주니어스)와 리베르플라테(리버플레이트)는 서포터나 응원층이 분명하게 구분되어있는 대표적인 팀인데다가 세계적 더비전으로(엘 끌라시꼬) 유명한 팀들이죠. 마라도나를 배출한 보카는 세계적으로도 많은 펜을 가지고 있는 팀이기도 하구요. 보카는 서민층, 노동자층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고 리베르는 중산층 이상 유산계급의 지지를 받고 있다보니 양팀 경기를 계급간 충돌로까지 보고 있는 사람들조차 있는 실정이죠. 그러고보면 세계적인 맞수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진짜 재밌네요. 혹시 또 아시는 팀들 있으면 같이 이야기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