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환영할 일인지...

헌법이라는 것이 있다. 명색 행인도 이거 전공해서 밥벌이 좀 해볼라고 했는데 앞날은 안보이고... 암튼 뭐 그런 상황인데, 능력없는 행인은 해당사항 없지만 헌법 앞세워 밥그릇 챙기는 사람들이 간혹 있기는 하다. 대표적으로 '헌법포럼'이라는 단체가 있다. 신행정수도 헌법소원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이석연변호사를 비롯해 쟁쟁한 사람들의 이름이 이 포럼 명단 안에 포함되어 있다.

 

지난 2004월 11월에 출범한 이 헌법포럼의 성격은 참가자들의 면면과 출범 선언문을 보면 잘 나타나 있다.

 

일단 헌법포럼은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판단하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한국 사회가 권력의 독선과 파편화된 개인들의 화해하지 않는 아집과 주장으로 새로운 세기와 세계와 향하기 위한 관용과 조화의 사회로 나가지 못한 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적 연대가 급속하게 허물어지고 있음에 의견을 같이 하였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다. 개인주의와 사회적 파편화를 걱정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들은 나라의 위기에 절박함을 느낀 나머지 나라 지키라고 들려줬던 총칼을 세금내는 국민들의 가슴에 디밀고 쿠데타를 했었다. 그리고 군화발로 천지를 내달리며 온갖 공작정치와 정치범 숙청, 공안사건 조작 등을 일삼았다.

 

사실 우리 사회가 언제 개인을 개인으로서 존중해준 적이 있었나? "나라의 발전이 나의 발전의 근본"이라고 주장하기 바빴고, 전쟁의 참화에 대한 기억을 혈관속에 간직한 사람들에게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협박하기 바빴다. 헌법포럼이 걱정하는 것 중에서 권력의 독선이라는 것은 더 설명이 필요치 않다. 그런데 지들이 과거 그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선적 권력집단에 대해 얼마나 개김성을 발휘했었던가? 뭐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지금이라도 독선적 권력집단을 경계하려한다는 굳은 의지를 표시한 것이라면 그럴싸하기도 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닌 거 같다.

 

"개인들의 화해하지 않는 아집과 주장"을 탓하기 전에 이 사람들은 먼저 얼마나 그 "독선적 권력집단"이 개인들의 의사를 자유롭게 개진하도록 보장해왔었던가를 주시했어야 한다. 즉, 헌법포럼이 유수한 인사들을 동원해서 사회통합을 이야기하기 전에 곳곳에서 기본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연대를 먼저 보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헌법은 사회적 통합을 이야기하기 전에 개인의 기본권을 우선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 헌법포럼 구성원들은 의도적으로 회피한다.(모르고 그랬을리가 없다. 이 사람들의 전공을 보면 헌법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그 전공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또한 "국가의 핵심이자 국제적 신인도의 척도인 헌법이 우리 사회에서 홀대되고 있음에 반성" 한단다. 아이구, 그러셔요? 천만 다행이다. 진작에 그런 반성을 했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반성만으로 들리지 않는다. 이들은 곧장 "시민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 신뢰와 예측가능성의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기득권 타파라는 정치적 구호로서 침해 내지 폄하되고 있는 비헌법적 상황을 배격"한단다. 한국에서 이야기되는 기득권은 거의 욕 수준에 가깝다.

 

지난 반세기 동안의 정치적 환경 속에서 기득권을 가진 정치세력이나 자본가집단 중에 욕 먹을만한 일을 하지 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정경유착, 권언유착, 정언유착, 독점재벌, 매판자본, 진흙탕 정치 하면서 기득권 가져간 사람들이 아직도 그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 반대편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행복추구, 신뢰와 예측가능성의 보장"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절망에 한숨짓거나 스스로 몸을 사른다. 그런데 헌법포럼의 주장대로라면 이 기득권을 타파하자는 주장은 "헌법적 가치"를 "침해 내지는 폄하"하는 것이 된다. 이 사람들 지금 자기가 무슨 이야기하고 있는지 몰라서 그러는 건가?

 

결국 이 사람들 본색을 드러낸다. "변화와 개혁은... 실용주의적인 것이 되어야 하고... 헌법은 바로 국민통합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철저한 실용주의 노선. 그런데 도대체 이 사람들, 자신들이 그렇게 경애해마지 않는 실용주의 노선을 관철하기 위해 그동안 뭐했던가? 이 포럼의 멤버들 면면이 대부분 그렇지만 모 대학 법학교수로 재직중인 J씨 같은 경우, 국가보안법 없애면 안 되고 보안분실 없애면 안 되고 경찰 보수대 잘 키워야한다는 주장을 노상 해왔던 사람이다. 그게 실용주의인가?

 

헌법 그 자체가 국민들의 컨센서스를 바탕으로 구성되는 일종의 국가적 정체성의 표현이며 국가가 지향하는 바를 선언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헌법은 이미 성립과정에서부터 "국민통합의 나침반 역할"을 하라고 만들어놓은 것이다. 그 안에 기본권을 보장하는 규정을 두고 국가기관들의 권한을 제한하는 규범을 설정해놓은 것은 이러한 내용들이 바로 "국민통합의 나침반" 역할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포럼의 멤버들, 사실 기본권이나 국가기관에 대한 견제나 이런 것들 해오신 분들이라기 보다는 기득권세력의 이해관계에 적극 호응하거나 "독선적"이었던 과거 정권들에 음으로 양으로 협조하시던 분들이다. 간단하게 말해, 바로 이 포럼에 참여하고 있는 분들이 그동안 "국민통합의 나침반 역할"을 하는 헌법의 정신을 비틀고 찢어발기면서 "화해하지 않는 아집과 주장"을 펼쳤던 바로 그분들이라는 거다.

 

아무튼 이러한 의식을 가진 분들이다보니 사고를 쳐도 꼭 이상하게 치고 만다. 지난 20일 이분들이 "포럼"을 했는데, 거기서 희안한 주장을 했다.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헌법은 제3공화국 헌법"이란다. 그래서 헌법개정을 통해 제3공화국 헌법을 부활시키고 좌파의 활동을 제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사학법, 부동산대책, 공정거래법, 신문법 등 좌파세력이 공공성을 앞세워 내놓은 정책도 현행 헌법의 철학과 비슷해 제한하기 어렵"기 때문에 개헌을 해야한다는 주장까지 한다.

 

이분들, 우리 헌법에 "적정한 소득의 분배, 시장지배와 경제력 남용 금지"등이 규정된 것은 사회주의 조항으로서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분들은 지금 자기 스스로 자신들의 두뇌가 조류의 그것과 비슷한 수준임을 밝히고 있다. 적정소득의 분배와 시장독점의 방지는 사회주의적인 것이라고 하기보다는 가장 기초적인 자본주의유지구도다. 이게 안 되면 자본주의 그 자체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이걸 좌파적 발상 내지는 사회주의적 규범으로 이해하고 있을 정도라면 이 분들의 사고방식은 국제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대단히 독보적인 것임에 분명하다.

 

하물며 전시작전권환수가 대한민국 헌법이념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주한미군을 계속 주둔시키려면 전시작전권이 미국에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대단히 신기한 일이다.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조항이 언제 미국에게 국토의 일정부분을 군시설에 제공하도록 해야한다고 규정되어 있으며, 평화통일규정이 언제 미국의 힘에 의지한 통일규정으로 바뀌었을까나? 그렇다면 결국 이게 그들이 이야기하는 "실용주의" 노선이고 "국민통합의 나침반"이란 말인데, 세상에 이런 해괴한 논리가 있을까...

 

헌법공부한 입장에서 말하자면, 확실히 이런 것만 보더라도 작금 벌어지는 개헌논의는 오히려 헌법의 해석논쟁으로 갔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헌법, 물론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현재 있는 규정만으로도 얼마든지 사회구조적 모순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 그걸 하지 않고 그저 지들 입맛에 맞는 대로 헌법개정하자고 주저리거리고 떠들 필요가 없는 거다. 전에도 한 번 언급했지만, 이런 닭성 정신상태를 가진 분들이 있는 상황에서 과연 헌법 기본권 조항의 서두를 "국민"이 아닌 "누구나"로 바꿀 수 있을까?

 

헌법가지고 장난치지 말고 그냥 찌그러져 있어주면 원이 없겠다. 헌법이 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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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4/21 12:05 2006/04/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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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들의 시도는 몇 년 안에 아주 구체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봄. 한국의 정치구도가 내각제로 갈 가능성이 있는데 이는 헌법 개정이 있어야 함. 예전에도 정치제도 변경을 위한 개헌에서 앞부분은 쉽게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에 내각제로 갈 때도 그러할 것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될 듯. 우파는 이제 갈때까지 가보자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어서 개헌의 국면에서는 앞부분을 수정하기 위해 목숨 걸듯. 이를 대비한 준비도 해야 한다고 봄.

  2. 현식이형 글을 읽다보면, 닭이 너무 불쌍해...

  3. 아니 이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길래;;; 헌법 배웠다는 사람들이 국가보안법을 찬성, 보존하려고 하는 걸까요 ㅠ_ㅠ 에휴.. 대체 헌법이 뭐라고 생각하는 걸지 그 사람들... 좌파라니... 안습입니다 ㅠ.ㅠ

  4. 말걸기/ 기본적으로 야네들의 관심과 우리의 관심 자체가 다르니까 그건 싸워야할 문제여요. 어쨌든 야네들, 그리 목소리 좀 키울만한 애들은 아닌듯 싶으...

    antiropy/ 글게요... 항상 닭들에게 미안해요... ㅠㅠ

    에밀리오/ 안습... 그것도 아주 꽉차게 끼는 안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