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이 먹히는 현상

행인님의 [벌써 5년...] 에 관련된 글.

루스체인지는 상당히 잘 짜여진 구조로 나레이션을 전개하면서 911이 미국의 자작극이 아니냐는 음모론을 펼친다. 1시간이 넘는 이 다큐멘터리는 음모론이 가지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는 것 같다.

 

루스체인지 동영상을 보시고 싶은 분은 아래로.

http://video.google.com/googleplayer.swf?docId=-2301934902458285549

 

내용은 대강 이렇다. 펜타곤을 때린 무엇이 과연 대형 여객기인가? 여러 가지 정황을 볼 때, 대형 여객기로는 도저히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없다. 그래서 루스체인지는 여러 가설을 내보인다. 그리고 결론 비스무리하게 나오는 사건의 원인은 크루즈 미사일...

 

WTC가 어떻게 폭파공법을 시공한 것처럼 내려 앉을 수 있었는가에 대해 논한다. 루스체인지를 만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이것은 미리 건물 곳곳에 폭발물을 설치한 후 비행기 충돌이 일어난 시점으로부터 일정한 시간이 흐른 후 폭파했다는 가설을 내세운다.

 

노가다판 출신으로 볼 때도 사실 WTC가 비행기에 직격당한 후 중간 부분이 잘려 나간 상태에서 그렇게 고스란히 아래로 내려 앉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의 의구심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 이 다큐다.

 

비행기 안에서 전화를 한 사람들의 통화내역이 조작되었다는 과감한 주장 역시 내세우고 있다. 고도비행을 하면서 그렇게 깔끔한 통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주장과 더불어 통화내용이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예컨대, 사람이 여럿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한 스튜어디스의 목소리가 마치 보고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준다는 것, 어머니에게 전화한 아들이 자신의 풀네임을 이야기하거나 어머니가 묻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믿느냐는 질문만 반복하는 점 등...

 

결정적으로 루스체인지는 911을 통해 이익을 얻은 자가 누군가를 살핀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부시가 911 사건으로 인해 가장 막대한 수혜를 받은 자임을 밝힌다. 결론은? 바로 이러한 이해관계 때문에 수 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911사건을 부시정부가 자작했다는 거다.

 

상당히 그럴싸한 주장이나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탁월한 반박을 보시려면 여기로.

http://blog.naver.com/jmecono?Redirect=Log&logNo=60028383038

 

루스체인지가 가지는 허술한 부분은 여지없이 반박된다. 사실 루스체인지가 전개하는 논리에는 다분히 억지스러운 점도 있고, 혹은 일반의 무지를 역이용하여 자신이 가진 정보의 일단이 모든 정보의 실체인 척 가장하는 부분도 없지 않다.

 

이처럼 음모론이 제기되고 이에 대한 반박이 제기되는데, 정작 음모론은 그 자체로 흥미를 유발시키며 확산되는 모습을 보인다. 루스체인지 말미에 나레이션은 이 다큐를 배포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리라고 선동한다. 일정정도 이들의 선동은 먹혀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역만리 한국땅에서도 번역본이 동영상을 통해 나돌고 있으니...

 

음모론이 이렇게 확산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 루스체인지에 대해 반박하는 측에서도 펜타곤 앞에 왜 여객기의 잔해가 없는지, 그 위치로 충돌하면서 어떻게 펜타곤 외곽 잔디밭은 멀쩡할 수 있었는지 등에 대한 의문에 대해선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는다. 하긴 이 부분은 미국정부 입장에서도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증명자료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WTC의 붕괴는 둘째 치고 한 블록 건너에 있넌 WTC7 건물, 즉 미 정보부처의 기관들과 자료들이 밀집되어있던 건물이 왜 붕괴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납득할만한 설명은 없다. 철근구조의 건물이 고열에 녹아 폭파공법 시공건물처럼 내려앉았다는 설명도 사실은 그다지 설득력을 가지지 않는다. 반박자료를 검토해봐도 사실 볼트너트를 쓰지 않고 리벳을 사용했기 때문에 층층이 건물이 내려앉았다는 설 역시 노가다 뛴 사람으로서는 별로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미국정부의 발표는 특히 설득력이 없다.

 

문제는 이런 부분에 있는 것이 아니다. 건물이 어떻게 그렇게 내려 앉을 수 있느냐 등등의 논란은 언제고 과학적 검증이 있으면 해결이 될 수 있는 문제다. 그러나, 사람들이 음모론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 중의 하나는 루스체인지가 주장하듯 911의 결과 누가 가장 큰 이득을 얻었는가이다. 두말할 나위 없이 그건 부시다.

 

911 이후 전개되었던 과정들은 마치 잘 짜여진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빈 라덴이 911테러를 자신이 주동한 것이 아니라는 발표를 할지라도 그 내용은 그다지 크게 알려지지 않는다.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더라도 이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 이라크에 무수한 폭탄이 떨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이러한 정황은 부시에 대한 반감을 사기에 충분하고, 결과적으로 그 반감은 부시가 의도적으로 911 사건을 일으켰다고 하는 주장에 감정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루스체인지는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살만한 내용을 잘 가공한 다큐멘터리다.

 

사람들이 음모론에 빠지는 또다른 이유는 미국 정보국 등이 이미 수 차례에 걸쳐 비행기 납치 및 특별한 건물테러에 대한 사전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 이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에 빠졌다는 것이다. 테러에 대한 정보는 매우 상세했고, 그 중에는 911을 거의 예견하는 듯한 정보도 있었다. 미국 정부가 이런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 어떠한 대책도 세우지 않았으리라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런데 왜 하필 그 순간에 그런 모든 준비와 조치들이 아무런 효과도 발휘하지 못했을까?

 

911을 자작극이라고 인정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미국정부가 911을 충분히 준비하지 않았다는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테러가 일어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정부분 방관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테러의 방조일 수도 있겠고, 그 모든 현상이 단지 우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연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구구한 억측을 가능하게 한다. 여기에서부터 음모론은 힘을 얻기 시작한다.

 

911을 음모다 아니다로 확연하게 구분지을 자신이 없다. 적어도 아무리 정신나간 부시라고 하지만 수천명의 사람들을 비명횡사하게 만들면서 이런 테러계획을 세웠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다. 반면에 그 또라이가 하는 짓을 보면 그러고도 남을 넘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석연치 않은 부분들에 대해 의문이 점점 더 커져가는 것도 사실이다.

 

어찌 되었건 음모론이 기세를 타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니다. 그건 그만큼 감추어진 것이 많다는 이야기이며,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신뢰를 잃어버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긴 뭐 정치 하는 사람들이 허구한 날 음모론을 들먹이는 이 땅에서 911 음모론이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제나 속고 사니까...

 

FTA, 대추리와 도두리, 기타 등등... 우리는 또 얼마나 속을 것인가? 그리고 이후에 우리는 또 어떤 음모론을 겪게 될까? 맨날 사건 터지면 진상규명 이야기가 나오는 이런 세상에 911이라고 터지지 말란 법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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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2 18:50 2006/09/12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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