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추석, 기차를 생각하다.

어릴 때, 고향에 있는 철도는 아이들의 놀이터였다. 소주병이나 음료수 병 뚜껑을 레일 위에 올려놓았다가 열차가 지나간 후 납작해진 쇳조각을 줏어 들고 딱지치기 비스무리한 놀이도 했다. 가끔 철길 건너 산에 나무를 하러 가면 튀어나온 바위턱에 앉아 칡뿌리를 씹으면서 지나가는 화물차의 칸수를 세기도 했다. 한 겨울 심심찮게 영하 20도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 추위 속에서도 아침마다 역사 옆에 서있는 백엽상을 들여다보는 것이 일과일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승객을 실은 열차가 지나가면 그걸로 시간을 어림짐작 했는데, 들녘에 나가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열차가 시계노릇을 했던 거다.

 

철로에서는 사고도 곧잘 일어났다. 건널목에서 멈춰버린 경운기와 열차가 충돌하는 사건도 있었다. 나무짐을 지고 철로를 건너다 열차에 부딪친 사람의 이야기도 들려왔다. 승객칸 출입구에 매달려 있다가 달리는 열차에서 떨어진 이야기도 있었다. 술 취한 취객이 철도 레일을 베개삼고 자다가 두부와 목 아래 신체가 2등분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터널을 걸어서 지나가다 열차에 치인 사람 이야기는 심심찮게 들려왔다. 각종 사건 사고가 횡행하다보니 밤 중에 철로위를 소복입고 달려가는 여인네가 있었다는 둥 터널 안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둥 하는 초심리현상에 관한 보고도 있었다.

 

그 철길을 따라 사람들은 서울로 올라갔고, 간혹 소식이 들려오는 듯 하다가 기어이 잊혀져버기도 했다. 명절이면 서울 올라간 자식들을 기다리느라 노인네들이 목이 빠져라 역전거리 쪽으로 고개를 내밀기도 했다. 이번 열차로 오려나하는 마음에 멀리서 기적소리만 들려도 혹시나 하면서 사랑채 문밖을 내다보는 노인들이 있었다. 자식들은 희망을 안고 서울로 떠났고, 어른들은 행여 자식이 오려나 하는 희망으로 밖을 내다 본다. 자식들을 싣고 간 열차는 때만 되면 그 자리를 오가는데, 자식들을 기다리는 노인들은 낯 모를 사람들만 잔뜩 실은 그 열차들을 맞이하고 떠나보낸다.

 

그렇게 추억으로만 남아있으면 좋았을 철도이건만, 세상물정을 알아버린 지금에 와서 그 철도는 또다른 아픔들로 가득하다. KTX 승무원 노동자들의 눈물은 아직도 아프다.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었다는 과장된 광고를 등에 업고 바람을 가르며 KTX는 내달리고 있지만, 삭발한 어느 노동자의 심신은 고달프다. 당사 기자회견실 그 을씨년한 구석에 초췌한 모습으로 누워있던 한 노동자의 모습은 고개를 저절로 돌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또, 영등포역사 안에서 잠을 자던 노숙자 두 명은 졸지에 압사를 당했다. 싸늘해지는 날씨에 갈 곳조차 없었던 그들은 방화셔터 아래서 지친 몸을 뉘였다가 서글픈 이승을 등져버렸다. 기계가 오작동을 한 것인지, 관리부실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고의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에 대해 왈가왈부 설왕설래 하고 있단다. 주민등록조차 말소된 망자들은 연고자도 찾지 못하고 있다. 아픔을 같이 했던 노숙자들만이 때묻은 몸을 그대로 끌고 와 망자들을 추모한다.

 

세상이 어찌 돌아가건 기차는 그렇게 또 정해진 궤도 위를 달릴 거다. 고향을 찾아가는 귀성객의 몸을 싣고, 그들이 일년 준비한 정을 함께 싣고 기차는 또 그렇게 달려 갈 거다. KTX 승무원 노동자들의 눈물도 버린 채, 방화셔터 아래서 벌어진 노숙자들의 참변도 뒤로 한 채 기차는 또 그렇게 달려갈 거다. 이 모든 일들이 잊혀지기를 바라는 어떤 이들의 머리 속에서도 기차는 그냥 달려갈 거다.

 

덧 : 증기기관 또는 디젤로 움직이던 기차가 사라지고 전기로 움직이는 전차가 운행됨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기차(汽車)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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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03 16:21 2006/10/0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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