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박정희!

최근 박근혜의 행보를 보면서 느낀 것. 정말 사업 수완 좋은 사람이다... 수첩공주(항상 수첩을 보면서 이야기한다고 해서)니 발끈혜(손석희 아나에게 성질낸 후)니 100단어 대표(대표시절 언론에 나와서 하는 말이 100단어를 조합한 수준을 넘지 못한다고)니 비아냥 거림을 당할지라도, 설령 그 말들이 모두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박근혜는 마케팅을 안다.

 

광고든 선전이든 프로파간다든, 일단 씨알이 먹히는 내용과 외형을 갖춰야 본전을 뽑는다. 마음에 쏙 들던지, 하다못해 관심이라도 끌던지, 향수라도 불러일으키던지 뭔가 반응이 있어야 그 광고가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는 거다. 박근혜는 바로 이런 측면에서 남들이 가지지 못한 상품을 가지고 있고, 그 상품을 파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근래 박근혜가 여기 저기 돌아다니면서 이런 말 저런 말을 하고 있는데, 한 가지 눈에 띄는 특색이 있다. 박근혜는 절대로 자기가 뭘 하겠다는 둥, 한나라당이 뭘 해주겠다는 둥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아주 원칙적인 이야기가 가능할 때만 자신의 의지나 한나라당의 방향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아버지인 박정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가 농민들과 만나서 막걸리 마시던 이야기, 모내기 하던 이야기, 경부고속도로 놓던 이야기, 독일가서 파독광부와 간호사들을 만나 울던 이야기, 밤에 혼자 야식먹던 이야기 등등...

 

그러면서 경제성장에 끼쳤던 아버지의 역할을 계속 부언한다. 새마을 운동, 경제개발계획, 수출 100억불 달성...

 

이게 묘한 반응을 일으킨다. 박정희에 대한 향수는 곧 박근혜의 현재로 투영된다. 그리고 박근혜의 얼굴 위에는 박정희의 얼굴이 오버랩되고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이 아닌 박정희 그 자체의 현현이 된다.

 

이인제가 박정희랑 똑같이 2대8 가르마를 하고 나타나 지 키까지 박정희랑 똑같다는 흰소리를 늘어놓고 박정희와 똑같은 복장을 하고 벼베기를 하는 쑈까지 보여줬을 때, 보수고 진보고 간에 그를 비웃었다. 그리고 그 선전전은 완전히 실패했다.

 

그런데 박근혜의 이러한 선전전술은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괜히 엄한 데 가서 벼베고 막걸리 마시고 이런 짓 하지 않는다. 박근혜는 그저 마치 동네 아줌마가 죽은 아버지를 추억하듯 그런 식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진보측에서는 그녀의 얼굴에 오버랩되는 박정희를 보며 오바이트를 하지만 보수측에서는 과연 그땐 그랬지 하면서 그녀의 얼굴을 마치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듯 쳐다본다.

 

박근혜가 성공적인 선전전술을 펴고 있다는 것 이외에도 이렇게 그녀의 광고가 먹혀들고 있는 것은 우리 사회의 저변에 박정희를 그리워 하는 약간은 기형적인 향수가 널리 퍼져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박근혜는 그 향수를 추억하는데 약간의 쏘스를 첨가했을 뿐이다. 기억이라는 쏘스.

 

반동의 물결은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된다. 이번엔 "월간 박정희"라는 월간지가 발매되었다. 노뽕맞은 황건적들이 노무현을 신으로 모셨던 2002년 대선 전과 같이, 박통교 신도들은 드디어 교세확장을 위한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개혁으로 치장된 경전을 손에 들고 황색돌풍을 일으켰던 노무현 추종자들과는 달리, 박통교 신자들은 경제부흥이라는 박통의 기적을 외치며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그 교세확장이 만만치 않다. 박통의 베드로를 자처하는 박근혜가 있고, 그 박근혜가 박통의 기적을 세상 곳곳에 전파하고 있고, 박통교의 교리를 수호하기 위해 순교를 각오한 무리들이 도처에서 움직이고 있다. 그 대표주자인 조갑제, "월간 박정희" 창간을 기리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박 전 대통령은 "△무서운 권력의지와 시심(詩心)을 견비한 사람 △청탁을 함께 들이마시되 자신의 혼을 죽을 때까지 더럽히지 않았던 사람 △눈물과 부끄럼이 많았던 사람 △조직운영의 귀재 △가장 어려운 것을 가장 쉽게 설명할 줄 안 사람 △돈을 모르면서 민족사상 최대의 국부를 만들어낸 사람 △술과 여자를 좋아했으되 술과 여자에 빠지지 않았던 사람"

 

박통교 최대의 후원자인 조갑제는 박통을 신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술과 여자를 좋아했으되 술과 여자에 빠지지 않았던 사람"이라는 저 대목을 보고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채홍사까지 부리다가 결국 요정 깊숙한 곳에서 여인들 가운데 앉아 총살을 당했구나...

 

이런 현상을 바라보며 두려워진다. 솔직히... 권위주의를 그리워 하는 이 굴절된 감수성. 이게 얼마나 확산될 것인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지금과 크게 달라질 것은 없다. 그러나 박정희같은 독재자에 대한 향수가 널리 만연하는 세상은 위험하다. 굴종을 아름답게 여기는 세상. 그런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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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30 02:09 2006/09/30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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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인님께서 말씀하신 박통교를 저는 박정희 만세라고 부릅니다만 ^^; 여튼 그런 사람들 보면 환장할 노릇이에요. 특히 젊은 놈들(?!)이 보수화 되서, 조선일보 사설 외우듯이 박정희 찬영하는거 보면 때려 버리고 싶을 지경 ㅠ.ㅠ

  2. 박근혜가 될 가능성이 거의 99%라고 예전에 이야기했더니, 저의 어머니 왈 [확실히 신은 죽었다]는 ... ...

  3. 에밀리오/ 교육의 문제가 크긴 한데, 이걸 어찌 바꾸어 나갈지는 암담합니다.

    손윤/ 호곡... 그렇게 높게 보시나요? 음... 이거 계속 이 땅에서 살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