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한 것은 없다

'일심회'라는, 후지다 못해 컨츄리풍까지 풀풀 풍기는 좀 모자라보이는 이름의 '간첩단' 사건이 돌연 언론지상에서 휙 사라졌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민주노동당 방북과 관련하여 연일 '주사파' 사냥은 계속되고 있다. 재밌는 것은 지금 '주사파'라고 지목되고 있는 개인이나 단체 어느 누구도 자기 스스로 "나는 주사파요"하고 커밍아웃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앞으로도 없을 것이고. 국가보안법이 철폐된다고 해도 그렇게 커밍아웃 할 '주사파'는 없다. 왜냐하면 지들 스스로 주체적으로 살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기 때문에 자기 자신이 특정 교리에 파묻혀 맹목적 광신의 삶을 살고 있는 '주사파'로 분류된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스스로를 그냥 '친북파'라고 주장한다.

 

이렇듯 실체가 있는듯 없는듯 아리송한 대상을 두고 연일 주사파가 어쩌니 저쩌니 하는 논란이 이어진다. 개중에는 사상전향을 하다못해 과거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가면서 이제 와서야 "나는 주사파였다"는 과거완료형 문법을 동원해 뒤늦은 커밍아웃을 하는 자들도 있다. 그런데 그들 역시 과거에 '주사파'라는 깃발 아래 뭉친 적은 없다. 그냥 성향상 주사파였다고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주사파'는 그래서 무서운 거다. 실체를 알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분명 그 실체가 느껴지는... 덜덜덜...

 

주사파의 본질이 하루 속히 드러날 필요는 분명히 있다. 2000년 전 그 모진 탄압의 세월을 뚫고 크리스트교가 로마의 국교로 인정받는 날이 왔듯이, 혹시 아나? 한 2000년 후에 '주체교'가 전 세계에 전파되어 솔방울로 수류탄을 만드시고 손가락질 하나로 우물자리를 봐주셨다는 어떤 분이 신의 반열에 오를지. '주사파'들에게 개종을 요구하느니보다는 차라리 빠른 시일 안에 그들의 종교를 인정해 주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이 아닐까 고민하는 요즘이었다. 그러나 근래 뒤늦은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들의 신념체계가 완전히 변했음을 간증하고 다니는 '라이트교' 신도들의 출현을 보면서 '주체교' 신도모임 '주사파'의 미래가 살짝 살짝 엿보이는 듯도 해서 묘한 기분이 든다.

 

대표적인 예가 과거 반미청년회 핵심멤버로 활동하다가 이제와서 '프리존뉴스'라는 업체의 부사장까지 하고 있는 강길모. '주체교'의 열성 신도역할을 하다가 이제 '라이트교'의 전도사로 전업한 이 사람은 스스로 "내가 직접 주사파 교육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선일보와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주체사상'의 전파자로서 수많은 사람들을 '주사파'로 조직했음에도 불구하고 전향해서 1990년대 초에는 공보처 전문위원까지 했단다. 그리고 그걸 지금 자랑스레 떠들어대고 있다.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확 변할 수 있을까? 궁금해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왜냐하면 이 인물만 보더라도 "극과 극은 통한다"는 고금의 격언을 확인할 수 있으니까. 주체사상, 그리고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주체교' 신자모임 '주사파'가 욕을 퍼먹는 이유는 바로 그 극단성에 있다. "반전반핵"이라는 구호를 보편적 가치로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반미투쟁의 과정에서 미국을 비판할 때만 유효한 구호로 생각하는 그들의 사고체계는 "닥치고 종북!"이라는 극단적 종파성에서 비롯된다.

 

이 편향적 사고체계를 비판하면 그들은 입을 댓발이나 내밀면서, 핵은 미국이 더 많이 가졌는데 왜 미국 욕은 하지 않고 북한을 욕하냐며 신경질을 낸다. 이정도로 망가진 얘들의 논리회로는 보편적 지향으로서의 반전반핵구호가 미국이라는 제국적 질서편제에 대해 정면으로 내뱉는 비판이라는 사실을 자꾸 까먹는다. 그러니까 계속 미국 욕해달라고 아우성을 치고 있다. 쉽게 말하자면 반전반핵이라는 구호 자체가 미국 욕하는 거다. 이걸 이해하지 못한다. 했던 말 또하고 했던 말 또하게 만드는 이 오묘한 비법 역시 '주사파'들의 장기다.

 

마찬가지로 소위 무슨무슨 '라이트'라고 하는 떨거지들의 사고편향 역시 극단을 달린다. 미국식 질서체제로 귀결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신. 그거 하나면 족하다. 모든 것은 자유주의(그것도 정치적 자유주의가 아닌 경제적 자유주의)로 귀결된다. 그 이외에 다른 말은 소용 없다. 복지고 나발이고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그러다보니 얘들하고도 논쟁이 되질 않는다. 일반적인 호모사피엔스의 논리회로가 복잡다단한 중층구조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에 이들 '라이트'라고 하는 자들의 두뇌구조는 거의 붕어 수준이다. "저기 먹을 것이 있다, 먹자" 이걸로 쫑.

 

위대한 영도자의 말씀 하나면 모든 것이 해결되던 어느 종교집단 전도사의 두뇌구조는 고 말씀을 하이예크나 공병호의 말씀으로 살짝 바꿔치기 해도 그대로 연산을 계속한다. 당연히 연산의 결과는 그전과 정 반대로 쏟아져 나오지만 이들은 스스로 내놓는 출력물의 오류를 인식하지 못한다. 그 오류를 인식하기 시작한다면 바로 그게 '진화'다. 어류에서 영장류로 수억년에 걸쳐 이루어지던 진화의 역사를 한 순간에 이룩하는 거다. 스님들 수준에서 돈오라고 하는 경지가 바로 그거다. 그런데, 이 '종교적' 인간들은 엉뚱하게도 입력되는 말씀이 달라지는 그 순간을 돈오라고 착각한다. 그게 얘들의 센스다.

 

조선일보에 대고 "내가 원래 주사파 조직했어요, 내가 주사파 원조에요"하면서 남한판 황장엽이 되고자 노력하는 일부 집단들이 결국은 민주노동당 방북단 귀국장소에까지 쫓아가 난리 법석을 떨었다. 노회찬이 프레시안에 대고 나름대로 의미있는 방북이었음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았지만, 실제 6자회담 재개의 공은 민주노동당에 돌아온 것도 아니고 중국으로 돌아갔고 김영남이 만나고 왔다고 해봐야 별반 뾰죽한 뭐라도 들고 온 거 쥐뿔도 없다. 그나마 이번 조사당 방문할 때는 버스 한 대 안 가지고 갔다는 것을 위안삼아야할 정도다. 그렇기에 만일 공항에 피켓팅 하러 나갔던 '라이트코리아'니 뭐니 하는 '라이트교' 신자들이 북한 갔다 올려면 제대로 좀 갔다 와라 하는 구호를 했다면 쪽팔려서 얼굴도 들고 다니지 못할 뻔 했다. 그러나 얘들의 붕어대가리 수준 구호질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니...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건가... 줴길...

 

결국 얘들이 사상전향을 했다고 하더라도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셈이다. 입력물과 출력물이 다르다고 하지만 인민에게 도움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예전에는 주체조국을 지키기 위해 인민들의 희생쯤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인민을 봉건체제 내의 노예로 전락시키는데 일조. 지금은 신자유주의 최고를 주장하면서 자본의 팽창을 위한 길에 인민을 또다시 노예로 전락시키는데 일조. 입장과 말만 달라졌을 뿐 하는 짓은 여전히 똑같은 거다. 여담이지만 금강산 관광 주선하는 업체들 중 상당수가 NL 운동하던 사람들이하고 있다는 거. 이들이 국방위원장님 말씀 받들어 615정신 계승하는데 앞장서는 현상이 이상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야 금강산 관광 계속하면서 지들 돈벌이 하는 거니까.

 

변하지 않은 것들이 변했다고 제 본색에 겨워 허우적 대는 몰골을 봐야하는 것도 이젠 슬슬 지겹기 시작한다. 얘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달랑 이거 뿐이다. 놀고 자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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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07 01:17 2006/11/07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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