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운 자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바로 아무 것도 지킬 것이 없는 사람이다. 다시 말하면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손에 잡을 거 하나도 없이 벼랑끝에 서 있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 건드리면 일난다. 심약한 사람이라면 그냥 제 목숨 하나 버리는 것으로 이승의 인연을 끝내겠지만 완전히 악에 받친 사람이라면 결코 혼자 죽지는 않는다.

 

이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함께 걸어가자고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죽게 내버려 둘 것인지는 이 사람의 맞은 편에 서 있는 사람의 결정사항이다. 손을 내밀지 못한다면 최소한 이 사람이 극단적 방법을 택하지 않도록 하는 정도의 배려는 해줘야 한다. 그런데 간혹 보면 아예 빨리 뛰어내리라고 요구하면서 그 서러운 처지를 비웃는 이들도 있다.

 

지킬 것이 남아나지 않게 생긴 사람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하소연을 하려고 하면 입을 막아버리고, 울분에 못이겨 우르르 몰려 나가기라도 하면 방패와 곤봉이 쏟아진다. 그들에게 붙여진 딱지는 "폭도"다. 그나마 "폭도"라는 용어는 귀에 익기라도 하다. 이젠 매우 정선된 언어로 벼랑끝에 서 있는 사람들의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도 희롱한다. 새롭게 붙여지는 레테르는 예를 들어 이런 거다.

 

"사회적 불안을 통해 이익을 챙기는" 거대한 사회계층

"좌경세력"

"지구촌 경쟁에 나선 우리의 골문에 자살골을 넣는 방해꾼"

"사회적 불안에 기생하는 사람들"

 

이런 화려한 수사가 구사된 문장을 보려면 한국경제신문에 실린 "성장이 키운 방해자들"이라는 칼럼을 보시면 된다. 칼럼의 필자는 공포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칼럼의 필자는 며칠전 있었던 한미 FTA반대 집회시위과정의 충돌을 보면서 "카를 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을 앞세워 유럽 전역에서 동시에 봉기한 1848년의 '노동자혁명'을 연상"한다. 그리곤 그 "노동자 혁명" 비스무리한 짓을 한 자들의 면면을 고찰한다.

 

그가 파악한 혁명분자들의 면면은 "농어민, 노동자와 함께 영화계, 민변, 교수와 교육계, 보건의료, 문화예술, 지식재산권 등 온갖 분야 이익집단을 총망라한 조직"이다. 필자는 이들이 "지난날의 경제성장 덕분에 먹고 지킬 것이 생긴 집단"이라고 규정한다. 슘페터의 말을 빌려온 이 필자는 이 혁명분자들이 사실은 자본주의 사회가 만들어낸 파괴적 지식집단임을 각성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상식이 통하고, 치안이 튼튼하고, 발전하는 사회에서는 그들의 활동무대가 좁아지므로 가능한 한 사회구조를 흔드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란다. 그러면서 이들이 잘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꼬집는다. 바로 이들의 좌경화 운동 덕분에 전 세계가 "인류가 역사기록을 시작한 이래 가장 높은 성장률"을 보인 지난 5년간 "한국의 잠재성장률만은 빠르게 저하했다"는 것이다.

 

이 필자는 지금 자신이 파악한 "농어민, 노동자와 함께 영화계, 민변, 교수와 교육계, 보건의료, 문화예술, 지식재산권 등 온갖 분야 이익집단을 총망라한 조직"이 왜 집회시위에 나섰으며, 그들이 주장한 것이 무엇인지 분간을 못하고 있다. 필자는 이들이 단지 "지구촌 자본주의가 불균형과 양극화의 원흉이라며 경쟁을 배격하고 우리끼리 시장을 지키며 살 것을 주장"했다고 생각한다.

 

경제신문에 칼럼씩이나 쓰는 사람이 이런 단순무식하고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대단히 슬픈 일이다. 이런 쓰레기 같은 칼럼이 실리는 신문을 보면서 한국의 경제인들, 머리가 썩어간다. 그러니 경쟁력이 살아날 수가 없는 거다. 지 죄를 지가 모르고 있는 상황이다. 필히 치도곤을 한 백대쯤 안겨놓고 이야기를 시작해야할 판이다.

 

FTA로 인해 나락으로 떨어져야할 위기에 놓인 노동자와 농민들, FTA라는 총칼에 밀려 지금 벼랑 끝에 서게 되었다. 어차피 이들에게는 FTA가 체결되어 미국의 농산물과 공산품과 서비스가 들어오는 순간 그나마 손에 쥐고 있던 알량한 모든 것을 빼앗긴 채 낙화암 아래 투신했던 삼천궁녀짝이 나고 만다. 아닌 말로 이들은 갈 데까지 간 사람들인 거다.

 

노동자, 농민을 합쳐 1300만 정도 되나? 4800만 남한 인구 중 이들의 비율이 몇 %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1300만이 아니라 1300명이라도 많다. 누구 하나라도 인간으로 살 수 없도록 하면서 한 줌도 안 되는 극소수의 주머니를 채우려 한다면 그것은 용납할 수 없다. 법률서비스, 의료서비스, 교육서비스를 비롯한 모든 서비스 업종의 사람들 역시 노동자, 농민과 다를 바 없는 지경에 처했다. 이들을 다 합치면 대~한민국 몇%가 될라나?

 

칼럼을 쓴 필자는 이렇게 한미 FTA로 인해 나자빠져야할 사람들의 절박함 따위는 전혀 신경쓰지 않는다. 오직 이들이 자본의 주머니에 돈을 집어넣을 수 있는 기회에 자꾸 딴지를 거는 것이 미울 뿐이다. 게다가 그들은 폭력까지 동원했다는 거 아닌가! 그러니 이 자본가의 하수인의 눈에 이들은 '공산당선언'을 앞세워 '노동자혁명'을 일으키려는 '좌경세력'으로 보이는 거다.

 

안타까운 것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필자가 사실은 전혀 두려움에 떨지 않고 있다는 거다. 말도 되지 않는 아전인수를 버젓이 신문지에 써 갈기는 이 필자는 은근슬쩍 "우리 앞에 어떤 야만의 길이 기다리는지 모른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시민들이 스스로 지키"라고 선동한다. 어떤 시민들을 말하는 건가? 집시법이 어떻게 생겨먹은지도 모르면서 조중동문 찌라시와 연합뉘우스 광대노릇을 보고 "폭력집회"에 반감을 가지는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어떻게든 손바닥 비비고 앉아 있으면 자본가가 먹어치우는 떡쪼가리에서 팥고물이라도 떨어지지 않겠는가 하고 비루하게 굽신거리는 필자 자신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건가?

 

이 필자가 이정도로 "시민" 운운하면서 선동질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어수선한 현상들을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아직은 선동질할 대상으로 선량한(?) "시민"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자신감이 충천하다. 이 덜떨어진 칼럼리스트를 진짜 공포에 떨게 만들만큼 험악한 투쟁은 아직 없었다는 이야기다. 진짜 두려움에 떨 정도까지 되었으면, 이 현란한 혓바닥, 아니 손가락을 가진 이 필자는 벌써 비행기에 몸을 싣고 유에스에이를 향해 날아가면서 망명정부 대변인 자리를 꿈꾸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 필자는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가 선동질하려 했던 "시민"들이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가를. 지금이야 조중동문 & 연합뉘우스 등을 보며 집회시위대를 욕하고 있는 그들이지만, 정작 어느 순간 자신들의 손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고 자기 발 뒷굼치가 이미 벼랑 끝 모서리를 반쯤 빠져나가 있는 상태임을 알게 되었을 때 가장 먼저 돌을 들어 필자의 머리를 향해 던질 사람들임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아니, 그 위험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그 "시민"들의 판단력을 흐트리려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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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28 03:33 2006/11/28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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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끔 그런 생각했어요. 그만큼 얘네도 절박하기 때문에 이 난리 치면서 흙탕물 뿌리고 있는거 아닌가? 하고 말이죠. 쳇. 진실을 덮는다면 더 많이 알리는 수 밖에요 ㅠ

  2. 에밀리오/ 그닥 절박한 느낌은 들지 않더군요. 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