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격규정

'대통합도로열린우리유사민주신당'의 대선경선이 피크에 올라가고 있다. 유령이 출몰하지 않나, 뭔 "떼기"가 난리를 치지 않나, 대리접수에 '신' 관권선거에 각종 혼란양상을 보이는 동시에, "친노후보단일화"라는 3김정치 이후 최대의 단일화가 이루어지는 한편, 경선에서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된 손학규가 생뚱맞게 칭얼대는 등 이건 뭐 거의 한편의 환타스틱어드벤쳐개코메디드라마를 보고 있는 듯 하다.

 

암튼 이 와중에 유력한 경선 후보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이해찬, "친노후보단일화" 덕분에 한명숙과 유시민의 경선포기를 업고 정동영, 손학규와 맞다이를 뜨고 있는 이해찬의 이너뷰가 서프라이즈에 실렸다. 이너뷰를 읽는 내내 소위 개혁세력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들의 한계를 결정적으로 내보이는 한 마디는 바로 이번 대선에 대한 이해찬의 다음과 같은 성격규정이다.

 

"이번 선거는 냉전부패세력과 민주개혁세력간의 싸움이다."

 

당연히 '냉전부패세력'은 한나라당을 의미하고 '민주개혁세력'은 대통합도로열린우리유사민주신당을 의미한다. 이 공식, 1997년 DJ 집권 과정에서는 유효했던 성격규정인지는 모르겠으되, 2007년 오늘에 와서는 그다지 선명한 성격규정으로 봐줄 수가 없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듯이, 한나라당과 대통합도로열린우리유사민주신당의 성격차이는 더 이상 발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두 세력의 성격이 거의 차이가 없다는 것은 이번 대선을 "냉전부패세력과 민주개혁세력간의 싸움"이라고 규정한 이해찬의 이너뷰 그 안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이해찬은 당면한 사회적 과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대안을 제시한다.

 

"우리가 2만 불 국민소득이 평균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평균소득 정도를 넘어서는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줘야 사람들이 취업을 하는 것이다. 급여가 낮으면 잘 안 갈려고 한다. 그런 자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지하게 되고, 최소한 평균 국민소득 이상이 되는 일자리들을 서비스 사업이라든가, 고부가 가치가 있는 분야라든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보육사업, 요양사업, 문화사업 이런 여러 가지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내는 노력을 하고, 그것을 만들기 위해서 정부의 예산을 개혁해야 한다."

 

정부의 예산 개혁이 목표하는 바, 그것은 복지수급의 확대가 아니라 "일자리 창출"을 통한 사업 확대이다. 전형적인 시장경제의 논리다. 이해찬의 발언을 관련분야 공무원 증원으로 파악하는 덜떨어진 독해력을 발휘할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시장중심적 사고방식은 '민주개혁세력'의 주인공 이해찬 뿐만이 아니라 '냉전부패세력'의 주자 삽질 이명박 역시 마찬가지다.

 

삽질 이명박이 한반도 대운하만 5년동안 파고들고 나머지는 내팽개칠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삽질하는 틈틈이 이명박 역시 "서비스 사업이라든가, 고부가 가치가 있는 분야라든가, 저출산 고령화에 따른 보육사업, 요양사업, 문화사업 이런 여러 가지 분야"에 신경 쓴다. 왜 안 쓰겠나? 저 사업들이 차후 기업차원에서 보더라도 이윤창출이 가능한 분야인데 기업가 출신 이명박이 손 놓고 앉아 있을까?

 

이해찬이 2007년 대선을 "냉전부패세력과 민주개혁세력간의 싸움"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이해찬, 또는 이해찬을 위시한 참여정부의 적자들은 "민주화"라는 구호 이외에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대안사회의 상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함께 이야기되는 "개혁"은 이미 참여정부 5년을 통해 그 실체를 확인했다. 지칠줄 모르는 시장일변도의 사유화정책, 이것이 바로 저들이 이야기하는 "개혁"의 실상인 거다.

 

2007년 대선의 새로운 성격규정은 "시장신봉세력 vs 공공성우선세력" 혹은 "신자유주의세력 vs 반신자유주의세력"의 한 판 승부여야 한다. 물론 정치세력으로서 이러한 대결구도를 적확하게 설정하고 정면돌파할 수 있는 세력은 아직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

 

문국현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노동당조차 이 명제를 전면에 걸치고 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민주노동당은 뜬금없는 코리아연방공화국이라는 기치가 올라가면서 100만 민중대회 한다고 생 난리를 치고 있다. 도대체 뭐하자는 수작인지 잘 모르겠다만 어쨌든 민주노동당은 대선에서 이러한 주장을 내지 않는 한 대안세력으로서 제 위치를 잡기는 힘들 듯 하다.

 

"민주화"라는 명제가 가치가 없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아직까지도 이 사회는 인민의 이해가 직접 반영되는 절차도 없고 그러한 과정도 없다는 측면에서 민주화의 요청은 충분히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끝도 없는 시장만능주의 아래서 민주화는 현재의 요식행위를 벗어날 수가 없다.

 

이 미쳐버린 시장만능주의 아래서 민중은 이렇게 하나 저렇게 하나 노르만의 호수(Nor' Loch)에 던져진 마녀사냥의 희생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녀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선 물에 빠져 죽을 수밖에 없고, 물에서 살아 나오는 순간 마녀라고 확증되어 화형에 처해지는, 선택지를 가질 수 없는 중세의 여인처럼 우리는 시장 밖에서는 굶어 죽고 시장 안에서는 도태되어버리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7/09/27 11:18 2007/09/27 11:18
Trackback Address :: http://blog.jinbo.net/hi/trackback/863
  1. 대통합도로열린우리유사민주신당에 관해서는 이미 무관심이 대세- 그나저나 노르만의 호수에 던져지고 싶지는 않은데 뭐... 지금까지는 방법이 없어보이네요-ㅅ-

  2. 이해찬이 복지는 그만 두더라도 자기 공약대로 평균 국민소득 이상이 되는 일자리 만드는 거나 제대로 했으면 좋겠네요.
    노동시장 유연화니 하며 비정규직 양산 부채질해서 그나마 평균 국민소득 이상이 되는 일자리들을 모두 평균 국민소득 이하로 만들어버린 열린우리당의 전과를 보면 그 실천 의지가 매우 의심됩니다.

  3. NeoPool/ 이문열이 "선택"을 썼을 때, 소설의 제목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 스스로는 몰랐던 거 같더라구요. 솥에서 삶아져 죽을 것이냐 사지육신을 절단당해 죽을 것이냐의 선택은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 피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선택이 아니라 어찌해도 죽는다는 결론을 달리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거. 이문열이 소설 제목 정하듯 이 땅의 인민들도 그런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듯 해요. 그걸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죠...

    ㅠㅠ/ 이해찬의 일자리 운운은 말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평균국민소득 이상의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국민소득을 전반적으로 상향시키겠다는 말이지요. 그걸 참 희한하게 표현한 거죠. 소득과 일자리에 대한 개념 자체가 부지하다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친노라는 이유만으로 달려드는 노사모들을 보면 종교의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새롭게 느끼게 됩니다.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