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균교수에게 질문
진보정당의 운동이 새로운 기획과 혁신으로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취지에 대해서는 절대 공감한다. 그런데 그 시작이 겨우 민주노동당 깨고 다 나와라는 선동이라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임과 동시에 상당히 불쾌한 일이다. 김세균 교수의 격문을 읽고 느낀 감정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판에 대해 부정할 생각은 없다. 일부 동의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지엽적인 것이다. 전체적인 대의는 물론 세부적인 각론에 있어서도 김세균 교수의 비판은 충분히 수용할 수 있다. 거기 더해 사회주의 계급정당 건설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십분 공감한다. 하지만 공감의 수위를 넘어서서 자발적 참여의 욕구가 일어나지는 않는다. 김세균 교수의 발언은 문장구성의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뭘 하겠다는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것은 다 제하고 물어볼 것은 이런 것들이다. 우선, 지난 시기 진보정당의 운동과정에서 김세균 교수는 어떤 일을 하셨나? 지금 당 내에서 침몰하는 뱃전을 붙들고 그래도 새는 구멍 땜빵해서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자고 애쓰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김세균 교수가 지적한 바를 모르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그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그 노력이 실질적인 성과물을 만들지 못했고 여지없이 패배해왔고 그로 인해 오늘날의 사태가 도래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 사람들이 그러한 노력을 펼치고 있을 때 김세균 교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나?
물론 당에 많은 조언을 주었던 바를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든 민교협차원에서든 말이다. 그러나 그 노력은 구름 위에 앉아 지상을 내려다보며 누구나 인정할만한 듣기좋은 소리를 하는 차원에서 머물러 있었다. 김세균 교수는 단 한번이라도 이 시궁창으로 하강하여 손에 똥물을 묻혀가며 달려본 적이 있었나?
이건 비단 김세균 교수에게만 묻는 질문은 아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을 향해 너희들 뭐하고 있느냐며 질책한 사람들 많이 있다. 행인에게조차 너 아직도 거기 있냐, 나와서 딴 거 해라라고 주문하던 사람들 많이 있다. 그 분들께 묻고 싶은 거다. 그렇다면 당이 이 지경이 되기 전에 당신들이 들어와 그 날카로운 칼날을 휘둘렀으면 어땠을까? 자주파 때문에 당이 망했다고? 물론 맞다. 그거 부인하지 않는다. 그걸 못 막아낸 책임에 대해 심각한 자괴감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나 밖에서 자주파와 결별하라고 하기 쉬운 말만 늘어놓았던 여러분들은 과연 얼마나 당 안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나? 그토록 당에 대해 잘 알고 당을 사랑하던(?) 분들이 왜 당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그렇게 훌륭한 말씀들만 하고 있었나?
물론 김세균 교수같은 분들이 꼭 당에 들어와서 일하여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보아왔던 이분들의 행위는 행인이 보기에 다함께와 별반 다를바 없는 그것이었다. 언제나 총론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 그것도 진보를 이야기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인정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이야기한다. 투쟁하자, 신자유주의 저지하자, 자본주의 극복하자. 그러나 이분들이 각론에 대해 이야기하는것은 거의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각론을 이야기할 때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자만큼이나 자기 신념에 맞지 않는 주장을 한 적도 많다.
예컨대 행인이 그토록 물고 늘어지는 로스쿨같은 경우, 민교협 어땠나? 2004년 연말에 로스쿨이 대학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씀들을 민교협 주최 토론회에서 하고 있을 때 김세균 교수는 사회를 보지 않았던가? 도대체 민교협에서 대한민국 대학 강사들을 위해 어떤 투쟁을 벌여왔나? 자기 학교에다가 강사들을 위해 뭘 요구했었나?
이분들이 이렇게 편하게 말씀하시는 것은 각론이 없기 때문이다. 김세균 교수의 저 격문에서조차 그렇다. 각론을 이야기하는 순간 자신들의 우아하고 고상했던 발언들과는 달리 뭔가 접점을 찾아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비합 전위정당을 하자고 주장하는 분들이라면 사실 각론 필요없다. 닥치고 전복! 이거면 총론에서 모든 게 해결되고 각론의 해결을 위해 소소하게 이야기할 상대가 필요없어진다. 왜냐? 전복을 하는 과정에서 이미 상대해야할 적은 타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세균 교수, 지금 비합 전위정당 하자고 주장하고 계신가? 천만에 말씀이. 이분 글 어디를 읽어봐도 비합 전위정당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럼 김세균 교수 주도로 만들어지는 정당에서 나오는 국회의원들이 한나라당과 맞대면 하지 않을 것인가? 거기서 나올 수 있는 각론의 한계는 어디까질까? 죽어도 한나라당과는 합의 불가?
사회주의고 사민주의고 간에 정작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다. 클린턴의 표현을 빌리자면, "바보야! 문제는 능력이야!"가 행인의 결론 되겠다. 김세균 교수가 이야기하는 격문에 따라 정당이 만들어지고 그 안에서 실제 활동을 벌일 수 있는 사람들이 지금 민주노동당의 문제인 관료형 인테리 정당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김세균 교수의 격문을 읽어본 바, 행인의 판단으로는 민주노동당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이다.
적어도 김세균 교수의 문제의식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건 아니다.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새로운 '진보정당'의 우선 작업이 민주노동당을 때림으로써 선명성을 부각하는 것이라고? 정치적으로는 당연한 수순일 수 있으나 이건 신당의 계획을 위해 종북주의만 물고 늘어진 당 내 일부 그룹의 오류와 다를 바가 없다.
내게 각론을 보여달라. 그 각론이 지금까지 민주노동당에서 만들어지고 제출되었던 각론(그게 당 차원에서 발표되었건 아니면 정 반대로 정치적인 이유때문에 사장되었건 간에)들보다 더욱 적합한 것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까짓거 행인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들고 김세균 교수가 이야기하는 새로운 진보정당으로 갈 용의가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이렇게 구름위에서 세상을 관조하는 형식으로 듣기 좋은 총론만 이야기하신다면 행인,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는 한이 있어도 김세균 교수가 이야기하는 그 당엔 가지 않는다. 아, 그리고 우선 로스쿨 찬성하셨던 입장에서 지금은 무슨 생각하고 계신지부터 밝혀주셨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행인님의 [김세균교수에게 질문] 에 관련된 글. 어디 김세균교수 뿐이겠는가 민주노동당은 창당 이후 2002년, 2004년을 거치면서 수 많은 호사가들의 관심대상이었다. 저 당이 얼마나 갈까, 좌-우동거정당, 사민주의 강령 등등하며 많이들 입방아에 오렸었다. 채만수, 조희연, 최장집 등 이른바 '거성'들에서부터 언론사 정치부 기자, 대학원 논문에까지 등장할 정도였으니 대단했다. 그러나 그것은 '지적 마루타'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