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집단소설창작단

* 다섯병님의 [끼워맞추기의 귀재, 헌법재판소] 와 아주 밀접하게 관련된 글.

사실 "관습헌법"을 헌법재판을 위한 기준으로 설정할 때부터 이냥반들 신선계를 넘나들면서 범상한 인간들이 가지지 못한 투시력과 상상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봤다. 대한민국에서 헌법공부하는 분들, 앞으로 연구 많이 하게 생겼다. 이번 지문날인 합헌결정문만 봐도 도대체 법률의 해석이 어떻게 상상으로 가능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해야할 지경이다. 그럴 수도 있다, 그럴 것이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정과 추리를 어떻게 실정법의 법조문과 연결시킬 수 있는지, 이거 왠만한 내공으로는 이해조차 할 수 없을지 모르겠다.

 

헌법재판소의 논리는 이렇게 출발한다.

 

1) 우리나라는 분단국이다. 국가안보가 더 없이 중요하다.

주민등록법은 국가안보를 생각하고 만든 법이다. 지문날인제도는 국가안보를 위해 필요하다.

따라서 지문날인제도는 합헌이다.

 

2)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은 기관장이 개인정보를 맘대로 처리하도록 보장하고 있는 법이다.

경찰청장은 기관장이고 지문정보는 개인정보다.

따라서 지문정보를 경찰청이 임의사용하는 것은 합헌이다.

 

1)의 논리에 대해서 우리는 이것을 소설이라고 한다. 전혀 논리적으로 연관성이 없지만 뭐 어쩌랴, 지들 머리속에서는 이렇게 될지도 모른다는데야... 이 같잖은 논리적 귀결을 뒤집어보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즉, 지문날인제도를 도입한 덕분에 간첩을 잡을 수 있고, 지문날인제도 덕분에 날아오는 미사일과 장사포탄을 피할 수 있다~~!! 지금 장난하냐?

 

전 세계 어느 정신나간 스파이가 적국에다가 자기 지문정보 입력해놓고 다니나? 지문감식해서 북한 간첩잡았다는 근거 있으면 한 번 내놔봐라.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을 통해 간첩 몇 명이나 잡았나? 간첩잡을라고 도입한 제도인데 그 제도 덕분에 잡은 간첩은 하나도 없다... 그것도 지난 근 40년 동안 말이다. 전 국민은 17세만 되면 꼬박꼬박 열손가락 지문 갖다 바쳤는데, 이 정신나간 포돌이들은 그래 방구석에 처박혀 전 국민 지문정보 데이터베이스 가지고 테트리스 하고 있었냐?

 

경찰청 보안국 요원들이 하는 이야기가 "지금도 간첩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다"~!(시민의 신문 5월23일자. 1면) 무섭다.... 살이 떨린다. 아니 이 21세기에도 곳곳에 간첩이? 그래서 전 국민이 공포에 질린 나머지 자기 지문 다 갖다 바쳤다. 근데 왜 못잡아?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의 주장을 백퍼센트 공유할지라도 이건 의문이다. 그럼 대한민국 보안분실 근무하는 보안과 형사들, 지금 전부 직무유기하는 것 아닌가? 증거가 없나? 왜 없나, 증거가? 대한민국 경찰청 과학수사과 지문계 지문 DB에 등록되어있지 않은 지문을 가지고 있는 그 자체만으로 간첩이 될 수 있잖은가? 멀쩡한 애들 끌고가서 간첩도 잘 만들던데, 진짜 간첩들에게 그런 정도 증거도 안 되나? 그럴 걸 지문 왜 찍어가고 쥐랄인데??

 

헌재 다수의견을 표시하신 재판관 여러분들의 머리속이 지금 이렇게 되어 있다. 아, 간첩 내려올까봐 무섭다.... 재판관 여러분,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셨으면 아마 지금쯤 정신착란 증세에 우울증에 시달리다가 자기 생명에 스스로 위해를 가했을지도 모른다. 언제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아니 이놈의 나라는 지문날인도 안 한단 말여? 전 국민 손가락 지문 아니라 발가락 지문도 채취해도 모자랄 판에 지문날인은 커녕 별달리 간첩잡을 궁리도 안해? 재판관 여러분, 이스라엘은 왜 지문날인 안한데여?? 거긴 무슨 용가리 통뼈래여???

 

아랍놈들이 언제 또 비행기몰고와서 빌딩에다 박치기를 할지 모른다는 위기감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미국. 어째 그런데 그놈의 나라에서는 전 국민 지문날인제도 도입 안한대냐? 부시가 맨날 맨날 깡패국가 양아치들이 쳐들어오고 미사일 날려서 미국이 불안해요~~ 노래를 부르고 있는데 왜 그넘의 나라는 전 국민 지문날인제도 입에도 뻥긋하는 것을 본 적이 없냐? 미국이니까?

 

2) 번 논리에 대해서는 정말 입이 딱 벌어진다. 지금 다수의견 낸 헌재 재판관 할배들. 법의 제정취지와 목적조차도 뒤집어버린다. 물론 주민등록법에 대해서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국가안보를 염두에 두고 만든 법이란다. 이거 아주 중요하다. 주민등록법이 주민의 편의를 위해 만든 법이 아니라 국민감시를 위해 만든 법이라는 사실을 헌재라는 최고기관이 인정했다. 게다가 지금 헌재 재판관들,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이 사실은 공공기관이 개인정보를 지들 맘대로 이용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는 사실을 실토했다. 그렇다. 지금까지 전 국민들은 법의 이름이 풍기는 미향에 속아 그 진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다수의견의 논리대로라면 위법하게 수집된 정보라고 할지라도 일단 공공기관이 보유하고 있으면 지들 맘대로 전산처리하고 임의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개인정보보호를 목적으로 제정한 법률의 취지는 여기서 완전히 실종된다. 원 정보수집과정이 부당하고 법률의 근거도 없고 게다가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인데도 그걸 국가기관이 마구 갖다 써도 문제가 없다? 도대체 이게 무슨 논리냔 말이다...

 

게다가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에는 "제4조 (개인정보의 수집) 공공기관의 장은 사상·신조등 개인의 기본적 인권을 현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를 수집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정보주체의 동의가 있거나 다른 법률에 수집대상 개인정보가 명시되어 있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지문날인이라는 것은 개인의 생체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서 개인의 신원확인을 생체적 방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확성에서 뛰어나나 반대로 바로 그 이유로 인해 가장 위험한 결과를 개인에게 전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지문에 증거능력을 100% 인정할 경우 해당 지문의 소유자는 자신이 그 사건과 무관함을 스스로 증명하지 않는 한 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 해 발생했던 대전지역 선거사범수사 중에 지문을 근거로 이루어진 표적수사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따라서 지문정보는 "기본적 인권을 현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개인정보"에 해당한다. 이 정보를 수집하려면 "정보주체의 동의"가 있거나 법률에 명시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전 국민 열손가락 지문날인제도가 개별 국민의 동의를 통해 이루어졌나? 우리 지문 찍을 때 "동의하십니까?"라는 질문 한 번 받아본 사람 있나? 없지?? 법률의 근거? 그놈의 법률의 근거 1997년에 처음으로 주민등록증에 수록할 사항으로 지문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주민등록법에 삽입되었다. 어째 반만년 역사 중에 불과 10년도 되지 않은 법률규정에 대해 재판관들은 이렇게 강력하게 법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할까나? 경국대전까지 동원하여 관습헌법 그렇게 좋아하는 재판관들이 혹시 경국대전에서 지문이라는 단어라도 발견했나?

 

주민등록법이고 시행령이고 간에 어디에도 열손가락 지문 찍어야한다는 규정이 없다. 별지서식은 말 그대로 행정행위를 위해 행정기관이 사용하는 서식의 양식일 뿐이다. 그게 어떻게 법률적 근거가 되나? 요새 법 해석은 그렇게 하나??? 반대의견을 낸 3인의 재판관이 "설령 법에 열손가락 지문찍으라는 말이 있다고 해도 주민등록법의 입법취지 상 열손가락지문을 모두 수집해야할 필요성이 없다"는 요지의 의견을 낸 것처럼 이건 법률유보문제 이전에 헌법 상 과잉금지원칙의 위배이다.

 

이처럼 공공기관의개인정보보호에관한법률 자체가 이따위 전 국민 열손가락지문날인제도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다수의견 낸 재판관 여러분은 이놈의 법이 그런 거 하라고 만들어 놓았다고 횡설수설 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노망끼가 있는 건가...

 

세금포탈하는데는 용감한 우리 헌법재판관께서 세금포탈로 모아놓은 돈 언넘이 훔쳐가면 바로 잡을 수 있을까 싶어 지문날인제도 합헌이라고 하셨는지 모르겠다. 그런 거라면 걱정 붙들어 매놓으시기 바란다. 대한민국 경찰이 어떤 사람들인지 모르는가? 노동자들의 집회에서는 날선 방패를 수평으로 날려 머리통을 찢어놓는 사람들이지만 고명하신 헌법재판관 나리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면 만사를 제쳐놓고 그 도둑 하나 잡으려고 전국을 헤집어 놓는 사람들이다. 지문? 그까짓 거 없어도 대한민국 경찰들 재판관 나리 잃어버린 돈 잘 찾아 준다. 없는 범인 만들어서라도 찾아줄 거다. 간첩도 만들어내는 판국에 그깟 절도범 하나 못만들겠는가?

 

그나저나 앞으로 큰일났다. 학교에서 이제 법을 어떻게 강의해야 하나? 헌법재판소 결정문이 추상과 가정에 근거한 주관적 판단으로 점철되어버리는 이 상황에서 도대체 법이 어쩌구 저쩌구를 어떻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단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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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5/28 12:38 2005/05/2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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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5/05/30 04:32

    * 행인님의 [헌재... 집단소설창작단] 에 관련된 민주노동당 정책논평 민주노동당 정책논평으로 작성한 내용. 상세하게 비판을 하다보니 디럽게 길게 되었음. 스크롤 압박이 두려우신 분들

  1. 금요일 저녁, 기사만 읽은 상태일때에는 막 선언도 조직하고 성명서도 쓰고 그래야지, 했는데.. 헌재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읽고는 힘이 쭉 빠져버렸어요. (저야말로 공황상태ㅠ_ㅠ) 아... 이딴 글에 대해 반박성명을 꼭 써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정말 요딴 이유로 지문이나 수집하는 나라에서 꼭 살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했습니다. 도무지, 논리적인 성명이 안 나와요.ㅠ_ㅠ

  2. 이런 헌재가 있는 나라에 사는 것이 창피해요.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