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룰

하늘소님의 ["4분의 1"로 줄어들 표의 가치] 에 관련된 글.

노무현 신도들의 집합소 서프라이즈는 연일 충성서약과 통성기도가 넘쳐 흐른다. 그나마 초기에 보여졌던 날카로운 비판의식은 그런 의식을 보여주던 필자들이 떠난 지금 거의 보이질 않고, 김동렬류의 궁시렁거림과 서영석 류의 들이대기 정도의 글, 그리고 기타 잡다한 신도들의 북받치는 감정에 겨운 기도문만이 남아 있다.

 

남의 동네에서 지들끼리 황건적 놀이를 하던 부흥회를 하던 그걸 뭐라고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런 바닥차원의 감수성만이 남게 되어버린 그 동네를 보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어떤 어리석은 인간들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당 내 기관지라는 '진보정치' 이번 주 호 대문에 당원 다수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지지하고 있으며, 당원들의 다수가 진보진영 단일후보를 지지하고 있다는 소식이 실렸다. 조사기관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기관이고(항간에는 동부연합과 관련이 있다고 하나 확인이 되지 않는 것이고) 그걸 찌라시로 만들어 뿌린 것은 진보정치다.

 

진보정치... 정성희가 기관지위원회 위원장이 되고 나서 완전히 망가져버린 그 찌라시. 그래서 절독까지 하였건만, 중앙당에 앉아 있으니 눈에 뵈는 것을 안 볼 수도 없는 형편이다. 기관지위원장이 바뀌었건만, 하는 짓을 보면 이건 기자정신이라고는 손톱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양아치들의 만담찌라시...

 

어쨌든 그 진보정치 기사를 보며 궁금했던 것은 도대체 오픈프라이머리와 진보진영 단일후보론이 얼마나 당원들 안에서 논의되고 소통되었는지이다. 대중참여형 경선제도를 가지고 있는 미국과 한국의 차이, 대통령 선거인단을 통해 대선을 치루는 미국의 선거제도와 한국의 직선과의 차이, 당원만이 투표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당헌의 규정, 이런 것에 대해서 제대로 한 번 당원들을 대상으로 이야기를 해 본 적이 있나?

 

서프라이즈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인기투표의 종말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서프라이즈가 저모양으로 망가지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데서 출발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저들이 철학과 비전, 정책과 전망을 가지고 대통령을 만든 것이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특이한 캐릭터에 매몰된 바람에 오늘날의 결과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2002년 초순까지만 해도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리라고 예측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인제는 가장 강력한 대권후보가운데 하나였고 DJ의 마음이 누구에게 꽂혔는지도 파악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판세를 깨고 말 그대로 일종의 '드라마'를 만들어낸 결정적 계기는 바로 민주당의 "국민경선제"였다. 이 국민경선제를 기점으로 노무현을 대통령령으로 만들자고 나선 사람들이 전국에 황색돌풍을 일으키며 '바보' 노무현을 민주당 대표주자로 일으켜 세웠던 것이다.

 

새삼스럽게 그들의 선거운동방식에 대해 재론할 필요는 없다. 문성근, 명계남의 뛰어난 눈물샘 자극운동, 대중의 빈한한 지적 빈곤감을 노무현으로 대체시킨 유시민 류의 잘 포장된 인텔리적 충동질, 정몽준과의 단일화와 막판 양분이라는 극적 요소... 이거야 다 지난 일이니까 그렇다 치고.

 

그러나 노무현이 당선된 이후 지금까지 벌어진 정치권 내의 구조변화에 대해서는 들여다 봐야 된다. 노무현의 행보를 둘러싼 당내 갈등 속에서 결국 민주당은 사분오열되어 한 때 민주노동당보다도 의석이 적은 원내 4당의 치욕을 겪어야 했다. 그 민주당에게 쪽박채우고 나온 사람들이 '개혁'한다면서 만든 열우당은 여당의원이 원내 과반수를 넘기는 초유의 여대야소 구조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천적 출신배경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채 적전분열, 자중지란만 거듭하다가 4대 개혁입법이고 뭐고 다 날려먹고 이제 와서는 당 깨고 나가자고 난리를 치고 있다.

 

이런 현상의 원류를 죽죽 따라 올라가다 보면 바로 '국민 경선제'라는 민주당 대권후보선출방식까지 다다르게 된다. 당시 황색 돌풍의 핵은 당 내의 '진성당원'들이 아니라 당 외의 '노사모'와 개혁당 당원들이었다. 그리고 당원이 아닌 외부인들까지 결합할 수 있는 경선제도를 채택한 결과 나타난 결과는 인기투표였다. 노무현이 꼬마민주당시절을 겪고, 당선되지도 않을 부산에서 도전을 하고, 전두환이 앉았던 자리에 명패를 집어 던지고 했던 과거의 행적들은 졸지에 민주투사의 행동으로, 지조와 절개를 갖춘 정치인의 행동으로 포장되었다.

 

인기투표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작 노무현의 추종자들이 점검했어야할 부분들은 상실되었다. 예컨대,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면 누구를 데리고 내각을 꾸릴 것인가? 노무현이 수렴하고 연속적으로 수행해야할 정치과제는 무엇인가? 노무현이 새로 조직하고 진행시켜야할 정치과제는 무엇인가? 장기적인 국정의 이념은 무엇인가? 등등.

 

그러나 이러한 점검사항은 등한시 되었고, 12월 19일 대선이 치루어지는 그날까지 말 그대로 한편의 영화를 만드는 식의 선거전이 계속되었다. 그리곤 결국 노무현은 당선되었고...

 

민주당은 그럴 수 있었다고 치자. 어차피 보수기성정당으로서 가지고 있는 한계, 그 중에서도 진성당원이 직접 정당정치에 참여하는 모습을 기대할 수 없었던 정당, 게다가 한나라당 이회창이라는 거물과의 접전을 앞에 두고 있었던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인기투표가 되었건 뭐가 되었건 간에 대중들의 관심을 한 번 더 받아 대선운동을 두 번 하는 효과를 거둘 수만 있다면 어떤 형식이라도 받아야할 입장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한 번의 선택의 결과로 오늘날 나라 모양이 요모양 요꼴이 되었다. 지 방향이 어딘지도 모르는 인기투표 짱은 자기 자신을 "좌파신자유주의"라고 하는 희안한 정체성으로 선언하는 착란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그 정체성을 국정에 실현하는 통에 극빈층과 생계곤란서민의 수가 급증하게 되었고, 도처에서 양극화의 폐단에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인기투표는 인기투표일 뿐이다. 거기에는 한 인물에 대한 호불호가 남을 뿐, 정당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견해와 이념이 관통되는 무엇을 찾기 어렵다. 당의 후보가 되면 누구나 당의 이해와 전략을 수용하고 당의 이념에 충실하게 될까? 그게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 중 일부가 몸으로 보여준 바가 있다. 당이 결정한 사항을 거부하고 자기 의원실에 제 사람 박기에 몰두했던 몇 의원들. 물론 이 의원들, 지금까지도 지들의 잘못에 대해선 일언반구 말이 없다.

 

하물며 대통령선거라고? 이번 진보정치 설문조사에서 특이한 사항이 하나 있는데, 설문 사항 중 "당원 아닌 사람 중에서 후보로 선호하는 사람"을 조사한 항목이 있다. 이에 대한 응답을 보면 1위가 박원순, 2위가 손학규, 3위가 이명박이다. 물론 이들을 지명한 사람들의 비율이 무시할 수 있는 정도라고는 하나, 국민경선제를 잘 못 채택했을 경우 어떤 결과가 발생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민주노동당은 단지 정권창출이 목표인 정당이 아니다. 정권창출이라는 것은 우리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일 뿐이다. 그런데, 수단의 완성을 위해 목표를 망각하는 일을 벌인다면 이건 코메디가 된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오늘날 열우당의 사분오열을 보면 알 수 있다. 자기정체성조차 확인하지 못하는 자들이 단지 잘 팔릴 것 같다는 상품의 매력에만 빠져 모여들었다가 그 상품이 이제 수명을 다하자 어디로 가야할지 망연해지는 열우당의 이 현실을 보면서 민주노동당은 뭔가 느끼는 것이 없단 말인가?

 

 

덧 : 재밌는 것은 당 내 철저한 반미주의자(라기 보다는 친북주의자)들이 국민경선제를 더욱 선호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을 그토록 저주하는 자들이 미국에서 왜 국민경선제를 하는지조차 검토해보지 않고 단지 대선에서 몇% 더 얻자는 심정으로 국민경선제를 주장하는 모습을 보면 기가 찬다. 얘네들은 도대체 어깨 위에 달고 있는 것이 장식품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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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7 12:09 2007/01/27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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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Tracked from
    • At 2007/03/06 04:49

    행인님의 [게임의 룰] 에 관련된 글. 새삼스럽게 개방형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에 대한 비판을 늘어놓지는 않으려 했으나... 다시 한 번 안타까운 것은 도대체 이 개방형경선제라는 것을

  1. 당내 경선이 인기를 끌지 못하고 우리들만의 잔치로 끝나는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당내 경선이 우리 사회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의미있는 정치행위로 만드는 것을 고민해야 할텐데 말이죠. 당원직선 지지, 쳇 그리고 저는 그런 설문따위 받아본적도 없어요.ㅡ.ㅡ;;

    근데 이건 알아놓으면 좋을것 같아 그러는데, 그 몇 의원들 누구인지 슬쩍 가르쳐주시면 안될까요?

  2. 박노인/ ㅎ 모 의원, ㅇ 모 의원... 이렇습니다. ㅎㅎ

    700명에게 설문조사했답니다. 700명... 그런데 진보정치 헤드라인은 당원 절반 이상이 오픈프라이머리를 지지하는 것처럼 나왔어요. 내 참... 이넘의 찌라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