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 나온 그사람

집떠나와 공장생활을 하는 신세, 무지 서럽다. 그때까지도 뭔가 수틀리면 바로 마빡에 스패너나 파이프랜치가 날아와 두피 아래 피가 뭉치게 하거나 재수없으면 바로 고추장 시뻘겋게 쏟아지게 만들던 때다. 행인이야 집이 있는 서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인천이라 그나마 서러움이 덜 했지만 멀리 부산이나 목포 등지에서 올라온 동기들은 뻑하면 향수병을 호소하곤 했다.

 

괴롭히는 사람이 그나마 몇 되지 않았기에 버티는데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면 힘들 때마다 응원해주고 도와주었던 많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그 형님도 그런 분이었다. 당에서 같이 일하고 있는 홍○표라는 동지와 이름이 거의 같은 선배였다. 8년 선배였는데, 부산사람이었고 무척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후배들을 끔찍히 사랑해서 다들 친형 이상으로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이 형님, 연애를 하도 떠들썩하게 해서 온 동네에 소문이 파다했다. 그 때는 공장에서 지금처럼 윈도체제가 아니라 도스체제의 PC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한글지원프로그램이 완성형 한글 지원 소프트웨어였고, 쓰던 컴퓨터는 NEC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이 컴퓨터로 문서를 만들고 출력을 하려면 "찌지지지직 찌지직..."하는 소리가 요란한 도트 프린터를 이용해야 했다.

 

프린터 용지는 B4지 사이즈에 녹색 줄이 가로로 죽죽 쳐져 있는 것이었고, 양 옆에 구멍이 줄간격 맞춰 뚫려 있는 것이었다. 이 프린터 용지가 이 형님의 편지지였다.

 

하루는 형수를 만나러 가는데 같이 가자고 한다. 형님하고 나가면 언제든지 형수랑 만나게 되었고, 화통한 형수님 역시 성격이 통하는 관계로 같이 술자리도 자주 했다. 물론 형수는 그닥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쨌든 형수를 만나러 간다면서 왠 출력용지 박스를 하나 들어달라길래 그러마 했다.

 

그런데, 그 박스 안에 가득 들어있는 것은 위의 출력용지에 형이 손수 쓰거나 컴퓨터로 출력한 편지였다. 하여튼 틈만 나면 그렇게 출력용지에다 볼펜으로, 매직으로, 붓으로, 내지는 출력해서 연애편지를 써댔다. 정성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중에 형수가 자기 방을 도배하면서 벽지 대신 그 연애편지를 발랐는데, 그러고도 남았단다.

 

암튼 그날 그렇게 편지운반을 해주고, 형과 형수에게 술대접 거나하게 받았다. 술자리 기분 좋으면 그냥 눙치고 앉아버리는 행인의 성격으로 인해 술자리는 계속 이어졌고, 형과 형수의 불꽃같은 연애담에 시기심이 폭발한 행인, 온갖 이간질신공과 선배 뒷다마 신공을 펼쳤으나 무용지물, 애꿎은 술만 들이키고 말았다. 그러다가 형과 형수는 지들끼리 도망가고, 졸지에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된 행인은 차비도 없어서 동인천 시내에서부터 공장까지 1시간 반을 꼬박 걸어 들어가고 말았다.

 

두 사람의 결혼식은 말 그대로 떠들썩하게 치뤄졌다. 공장 안에 있는 운동장에서 식을 치루기로 했으나 당일 비가 오는 바람에 공장 식당으로 장소가 옮겨졌다. 워낙 따르는 후배들이 많았던지라 신랑신부 행진을 할 때 이 철딱서니 없는 후배들이 엄청난 양의 폭죽을 터뜨렸고, 그 폭죽에서 튄 불꽃이 형수가 입은 드레스에 옮겨붙어 화들짝 놀랐는가 하면 연기가 자욱한 실내에서 화재감지기가 작동하는 바람에 스프링쿨러에서 물이 쏟아져 내렸다.

 

결혼식 이후에 신접살림 하는 곳엘 가끔 쳐들어갔는데, 화통한 형수 덕에 잘 먹고 잘 퍼자고 그랬다. 성격이 화끈한 한편 워낙 또 다정다감한 면이 있어서 술퍼먹은 다음날 출근을 할 참이면 꼭 꿀물에 해장국을 내주셨더랬다. "도련님, 일어 나욧~!" 하면서...

 

직장 그만 두고 벌써 15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어찌 어찌 하다가 연락 끊긴게 무려 10년이 훨씬 넘어버렸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도 이 형님의 근황을 알게 되었다.

 

설날 차례 지내고 아침을 먹으면서 간만에 TV를 보고 있는데, 세상에 이런 일인가 뭔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잠꼬대로 애국가 4절까지 부르는 남자'의 사연이 방송되었다. 그런데, 방송 주인공의 낯이 너무 익다. 이름도 꼭 같고. 긴가민가 하는데, 연애시절 썼다는 편지뭉치를 보여주는데 바로 그 형님이었다. 오호... 이렇게 또 소식을 듣게 되는구나...

 

그 형님, 잠꼬대가 유별나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애국가 4절까지 부를 정도는 아니었는데, 형수가 같이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니 이건 좀 심했다. 애들이 벌써 어른이 다 되었더라... 변함없이 씩씩하게 살고 있는 형과 형수를 TV로 보니 그것도 기분이 참 묘하다. 방송국에 연락하면 연락처를 알 수 있을라나... 한번 꼭 만나서 같이 살아온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형수도 꼭 보고 싶고...

 

내내 행복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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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0 16:09 2007/02/20 1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