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를 영접하며

* 민중언론 참세상[[기자의눈] 이건희 학위수여식에 들썩이는 삼성공화국] 을 들여다보다 문득 든 생각...

 

삼성 SDI 노동자들이 핸드폰 위치추적을 당한 것이 밝혀진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그동안 법에 호소도 하고 집회도 하고 벼라별 짓을 다했건만, 어찌된 영문인지 이 사건은 오리무중을 해메고 있다. 하긴 유령이 한 짓을 산 사람이 확인하려니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만은...

 

항간에는 이 유령을 사주한 곳이 삼성 SDI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원들은 물론이려니와 고객들까지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생각하는 삼성에서 그런 짓을 할리 있겠는가 만은 이번 고대사태를 보니 뭐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명색이 학자라는 사람들의 명예와 자존심은 귀신도 울고갈 지경이다. 그런데 한 순간에 저렇게 학자라는 사람들을 무릎꿇리는 힘을 발휘하는 삼성재벌이라면 까짓 귀신을 부리는 정도야 식은 죽 먹기 아니겠는가?

 

새로운 건물을 짓는데 재벌이 돈을 희사하고 그 덕분을 봤단다. 삼성이 물경 400억 가까운 돈을 제공해서 화강암으로 치장한 세련된 건물 하나가 캠퍼스 안에 섰다. 그래서 그 고귀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그 건물을 "삼성관"이라고 이름하였다. 거기까지~! 딱 거기까지만 했으면 문제가 이렇게까지 커지진 않았을 거다.

 

그런데 뭔 신명이 났는지 이건희에게 철학박사학위씩이나 수여한다고 난리 굿을 하는 통에 이런 사단이 벌어졌다. 우선 이 사건이 주는 교훈. 돈만 있으면 학위쯤이야 거저먹기로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귀신도 부리는 신통력을 확인한 바에야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이야기다. 밖에서야 노동자를 탄압하던 세금을 떼어먹던 채권으로 정치인들 밑을 닦아 주던 뭔 짓을 하던 간에, 돈만 많이 주면 황제대접을 받을 수 있다. 이거 뭐 놀랄일이라고...

 

사실 행인을 참담하게 했던 일은 교수씩이나 된 학자연 하는 사람들이 저지른 일들이다. 돈 앞에 장사 없다는 이 동서고금의 진리를 몸으로 느껴보실라고 그 긴 세월 석사니 박사니 과정 거치면서 돈과 시간과 정력을 쏟아부어 그 자리까지 올라가셨나? 적어도 대학교에서 전임교수가 되어 보직까지 맡을 처지라면 그동안 연구한 자료가 얼마며 머리속에 든 지식이 또 얼마인가? 그리하여 자기 분야에서 한 일가를 만들어 놓을 정도가 되신 분들이 이분들일 터인데, 학자의 양식과 자존심이라는 것이 이렇게 돈 몇 백억 앞에 무너져도 되는 것인가?

 

꼬장꼬장한 딸깍발이를 원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자기 양심과 자부심이 있는 학자였다면 이건희에게 철학박사학위를 준다는 거 자체만으로도 비판을 했어야 한다. "삼성관"이라는 이름 붙여주고, 건물 안에 돌판 하나 찍어서 이건희가 돈 준 걸로 지었다는 이야기 정도 써놓는 것만해도 감지덕지할 줄 알아야 한다고 튕길 배짱 정도 없었나? 애들이 젊은 치기에 그런 사고를 칠 수도 있고 사태가 이렇게 된 건 유감이지만서도 이번 기회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고 여유롭게 이야기할 순 없었나?

 

이들이 이런 행위를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 분야에서 한 일가를 이루었어야할 이들이 실상은 별로 일가라고 할 것까지도 없고 내세울만한 학문적 자부심이 없기 때문에 별 할 이야기가 없는 거다. 제 풀에 쪽팔린 거 뿐이다. 정말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은 이따위 웃기는 쑈는 하지도 않는다.

 

다른 문제는 다른 분들이 다 떠들어서 별로 할 이야기가 없다만, 참 안타까운 것이 이 부분이다. 이건희에게 알랑 거려서 몇 백억 땡긴 것으로 업적이랍시고 여기는 교수들이 앉아 있는 한 대한민국 교육이라는 거 이거 그냥 여기서 끝이다. 뭐 해 놓은 것이 있어야 큰 소리도 칠 수 있는 거 아닌가...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2005/05/04 14:07 2005/05/04 1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