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건의 법안 철회

최근 발생한 에피소드.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도 언젠가는 알게 되는 것이 국회의 법률논의. 먼저 아는 사람이라고 중뿔나게 뭐 이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몰랐던 사람이라도 어차피 법 만들어지게 되면 그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으니까.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이 3건이나 발의된 것이 작년 연말부터 올 2월까지였다. 아마 이 진보블로그에서 불질하고 계시는 꽤 많은 블로거들도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법률일 것이다. 민주노동당 노회찬의원, 열린우리당 이은영의원, 같은 당 정성호의원이 각각 개인정보보호기본법을 발의했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노회찬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이 불로그의 몇몇 블로거들까지 끼어 만들어낸 사회인권단체 안이었고, 이은영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에서 1년가량 연구를 하고 청와대와 당정협의를 거쳐 발의한 것으로 거의 정부안이라고 보면 된다. 정성호의원은 완전히 독자적(?)으로 법안을 만들었다.

 

 

 

 

 

이렇게 3파전 양상을 띠면서 각축을 벌이던 개인정보보호기본법 제정 논의에 돌연 이상기류가 발생했다. 지난 4월 13일,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는 언론법학회 주최로 개인정보보호기본법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이 토론회, 시작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더니 결국 묘하기만 한 이 사건의 시발점이 되었다.

 

원래 이 토론회는 언론법학회가 주최를 하고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가 후원을 하는 행사였다. 장소는 프레스센터였고, 낮 2시부터 시작될 예정이었으며, 혁신위 개인정보보호법 TF의 리더격이었던 분이 발제를 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참석자들의 면면이 지나치게 편파적이었다. 발제도 혁신위 개인정보보호법 TF의 리더, 토론자는 이은영의원, 또 토론자에 혁신위 개인정보보호법 TF 실무자, 세 명의 언론법학회 관계자... 우리편이라고는 행인과 이모변호사 이렇게 둘 뿐이었다.

 

언론관계자는 일본의 경우에도 개인정보보호법 제정과정에서 엄청난 반대세력이었다. 개인정보보호법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것이었다. 일본 언론계 인사들은 개인정보보호법을 일컬어 "스캔들 방지법"이라고까지 했었다. 당연히 언론관련 학자들이 개인정보보호법에 긍정적인 태도를 가지기 어려운 거다. 첨부터 6 : 2의 불리한 싸움이 예상되었다.

 

그런데 당일날 갔더니 정부혁신위 관계자 둘 사이에 발제와 토론이 바뀌어있었다. 그 며칠 전에 행인에게는 달랑 3일을 남겨두고 발제를 의뢰했다. 아마도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는 사실을 주최측도 인식했던 모양이다. 게다가 토론자 중 한 명도 바뀌었고, 장소도 바뀌었고, 시간도 바뀌었고, 하다못해 주최도 언론법학회와 정부혁신위가 공동 주최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후원은 K-TV가 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K-TV는 당일 콧배기도 보이지 않았다. 시작부터 완전 엉망진창이었던 거다.

 

아무튼 그렇게 토론회는 시작되었고, 분위기는 거의 정부혁신위의 법안, 즉 이은영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설명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두번째 발제를 맡은 행인이 깽판을 치기 전까지는... 행인의 발제가 끝나자마자 이은영의원이 지정토론을 통해 국민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서라도 하루 속히 논쟁이 마무리 되고 법이 제정되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준비한 것이니 잘 봐달라는 정도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곤 바로 자리를 비웠다.

 

그렇게 토론회가 끝나고 난 뒤 희한한 소문이 들렸다. 이은영의원이 국회로 돌아가는 길에 자신이 발의한 법률에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는 것이다. 이게 도대체 뭔 소리일까 궁금했는데 궁금증에 대한 대답은 바로 이튿날 풀렸다. 이은영의원이 돌연 법안을 철회한 것이다.

 

그런 식으로 법안을 철회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법안 자체가 국정과제를 수행했던 혁신위가 만든 것이며, 청와대에 의해 부처간 조율을 거쳤고, 당정협의를 거쳐 당론으로 확정된 법안이었기 때문에 법안이 철회되기 위해서는 사전에 어떤 형식으로든 뭔가 이야기가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는 전혀 나온 바가 없다.

 

철회하기 사흘전에 국가인권위 전원회의에서는 예상을 깨고 개인정보보호기구를 국가인권위원회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냈다. 이 의견은 이은영의원의 법안을 상당히 곤란하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이은영 의원의 안이 바로 개인정보보호기구를 국가인권위원회가 담당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런 이유가 법안을 그렇게 졸지에 철회하도록 만든 주요 원인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행정자치부와 정보통신부의 밥그릇싸움을 조율해주기 위해 만든 법안이었기 때문에 국가인권위원회가 그런 정도의 의견을 낸다고 해서 당장 흔들릴 사안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아무튼 그렇게 해서 벼라별 억측을 남긴채 이은영 의원의 법안은 철회되었다. 정황을 살펴보면 일단 이은영의원 자신이 그 법안의 문제점을 인식했다고 볼 수 있다. 애초 법안 자체가 정부부처의 밥그릇싸움 무마용으로 만들어진데다가 법률의 완결성도 국가의 예산과 인력을 1년 넘게 투자하여 만든 법 치고는 상당히 떨어지는 법이었다. 그걸 이은영의원에게 떠넘기다시피 맡긴 거다. 이은영의원이야 당정협의 거쳐 당론으로 채택된 것을 그저 밀고갈 임무밖에야 없는 것이었고...

 

그러나 이은영의원, 원래 이은영 교수, 민법학에 있어서 나름대로 한 일가를 이룬 학자다. 법학을 한 학자 입장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이 법의 문제점을 확인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문제가 있다고 판다한 순간 자신의 이름으로 발의한 법률을 철회해버린 것이다. 사실 이건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상당한 용기가 있는 행동이라고 판단한다. 보통 용기로는 단칼에 양분을 하듯이 이런 성격을 가진 법안을 철회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정성호의원. 정성호의원은 이은영의원이 법안을 철회한 그 이튿날 자신의 법안을 철회했다. 애초 정성호의원은 그런 법안을 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저 어떻게든 실적이나 올리려고 하는 심사로 하자가 많은 일본법률을 그대로 베꼈던 자체부터 첫 단추를 잘 못 꿴 것이었다. 쪽팔린 줄을 알았으면 진작에 철회를 했어야 했는데, 이 변호사출신의 의원나리는 철회하는 것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결과가 됨을 걱정했는지 입때까지 버티고 있었던 거다.

 

그러다가 갑자기 다 된 밥이라고 생각했던 이은영의원의 법안이 철회되는 것을 보고 맘이 바뀌었던듯 하다. 별다른 이유의 설명도 없이 법안을 철회해버린 것이다. 이은영의원은 상황이 많이 변해서(인권위의 의견발표 등을 포함하여) 다시 재검토를 해야할 필요성이 있어 철회한다고 이유라도 밝혔다. 그런데 정성호의원은 그런 이유도 없다. 하긴 뭔 말이 필요하겠나? 말해봐야 더 쪽이나 팔리지...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볼 때 같은 법을 하루상관으로 두 의원이 똑같이 철회했지만 이러한 행위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다르게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이은영의원에겐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쉽지 않은 결정, 의원으로서는 상당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결정을 과감하게 한 것에 대한 칭찬이다.

 

반면에 정성호의원에게는 비웃음을 보낼 밖에 도리가 없겠다. 그렇게 뭉개고 앉아있어봐야 자신에게 별로 득도 되지 않을 일을 왜 시작했을까? 성과주의에 빠진 의원의 말로는 상당히 거시기 하다. 세비받기가 부끄럽지 않을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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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4/19 09:12 2005/04/19 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