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울의 성이 멈췄을 때

* 이 글은 뎡야핑님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 에 관련된 글입니다.

 

미야자끼 하야오야 말이 필요 없는 에니메이션 작가니까, 개인에 대한 인물평은 그냥 패스.

앞서 나왔던 그 불후의 명작들... 각각 독특한 개성과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지 못했던 세상을 보여줬던 창의성과, 그러면서도 줄기차게 여성과 반전과 환경에 대한 일관된 관심을 보여주었던 작품들. 역시 뭐 설명 불요하므로 패스.

 

그런데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하야오의 작품처럼 보이면서도 하야오의 작품처럼 느껴지질 않는다. 90세의 할머니가 주인공이라서??? 여지까지 어린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바라보았던 하야오의 관점이 이제 자신의 개인적 미래에 대한 관점으로 이동한 것일까? "노인은 ~~해서 좋아"라는 소피의 자족적인 판단. 그런 것 때문에 이질감을 느꼈던 것일까??




그런 건 아닌 듯 하다. 어차피 90세의 할머니로 변했더라도 소피는 원래 10대. 저주 덕분으로 노인의 세계를 경험(?)하고는 있지만 소녀는 소녀인 거다. 그리고 그 소녀, 변신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기 보다는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앞날을 개척해나간다. 하울의 성을 찾아내고, 자칭 청소부가 되어 고용계약을 지 맘대로 맺어버리고, 저주를 건 마녀를 보살피고, 천덕꾸러기로 버림받았던 허수아비를 일으켜 세워준다. 전형적인 하야오의 아이가 가진 모습이다.

 

마이클(일어로는 마이꾸루) 역시 하야오가 그려왔던 아이의 모습과 다름 없다. 천진하면서도 감정에 쉽게 동화되고, 따뜻한 어머니의 품을 그리워하는 소년. 코난이 나나에게 보호본능을 느끼면서 동시에 어떤 잃어버린 감정, 즉 모성애를 느끼듯이 수십년이 지난 후에 나타난 마이꾸루 또한 소피에게 어떤 모성애를 감지한다.

 

회의만을 안겨다주는 전쟁이 발생하고 있고, 허수아비의 저주에서 풀려난 이웃나라 왕자로 인해 쓸데 없는 전쟁은 끝난다. 너무나 정확해진 메시지. 사랑하라, 전쟁은 끝날 것이다... 뭐 그것도 전작들과 유사하다.

 

그런데 왜 자꾸 전작들과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그건 매우 치밀하게 짜여진 그물처럼 이야기들이 촘촘하게 배열되어있었던 과거의 작품들과는 달리 이 작품은 중간 중간 별다른 설명이나 배경 없이 에피소드들이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소피의 저주를 풀기 위한 결정적인 열쇠를 가졌을 것이라고 관객들을 지레짐작하게 했던 아레치의 마녀가 뭐 별다른 배경적 상황 없이 마법을 다 뺏기고 폭삭 늙어버린 뚱땡이 할머니가 되어버린다. 나중에 왕실마법사 설리만이 그 이유를 설명하지만 그 이유란 것이 그저 악마와 거래했다는 거 뿐이다.

 

그런 것은 하울도 마찬가지다. 설리만은 하울이 자신의 제자였다고 하는데, 그럴 것 같은 개연성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둘은 라이벌관계처럼 그려진다. 처음에는 아레치의 마녀와 하울이 라이벌인줄 알았는데 실은 그게 아닌 거다.

 

불꽃으로 붙잡혀 있는 악마 가루슈파는 어떻게 하다가 하울과 그런 관계가 되었는지 나중에야 확인된다. 그런데 하울이 가루슈파를 쳐다보고 있었고, 그러다 가루슈파를 먹었고, 가루슈파가 하울의 심장을 사용하게 되어서 움직이는 성에 묶이게 된 것은 이해가 되는데 하울이 왜 그런 일을 했는지는 그닥 설명할 건덕지가 없다. 뭘까???

 

하야오의 그동안 작품을 죄다 본 사람들로서는 실망이 이만저만 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닥 뛰어난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거시기 하다. 하야오가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것을 다 한 번 해본 작품이 아닌가 한다. 건 그렇고...

 

하울의 대사 중 이런 말이 있었다.

"아름답지 못한 것은 가치가 없어..."

음... 순간 밥맛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괘씸한 스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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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02 02:03 2005/01/02 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