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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말헥산 중독, ‘앉은뱅이병’ 진상규명 촉구
[프로메테우스 2005-01-21 14:33]
△ 민주노총과 평등노조 이주지부 소속 조합원들이 21일 오전 명당성당 들머리에서 태국여성노동자들의 노말헥산중독 문제는 정부의 이주노동자정책에서 기인한다며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프로메테우스 양희석“아프면 꾀병, 쓰러져야만 쉴 수 있었다”[프로메테우스 강서희 기자] 이주노동자 인권연대, 평등노조 이주지부, 참여연대 등 13개 노동ㆍ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이주노동자 노말헥산 중독 진상규명과 노동기본권 쟁취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공대위)는 21일 오전 명동성당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공대위는 이 사건 개요와 실태를 발표하고 “이주노동자에게 실질적 산배보상 권리를 완전히 보상하고 노동부는 이 사건에 대한 정확한 진상 조사를 실시할 것”을 주장했다. 또 노말헥산을 포함한 유해위험물질 취급 사업장에 대한 안전 보건 실태를 파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노말헥산 중독으로 인한 태국 여성 노동자들의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에 걸린 사건일 알려진 것은 지난 12일. 산재의료관리원 안산중앙병원은 “하반신 마비증세를 보여 입원한 태국 여성 노동자 5명에 대한 근전도 및 신경조직을 검사한 결과, 이들의 증상이 ‘노말헥산(n-Hexane)에 의한 다발성 신경장애'로 판정됐다”고 밝혔던 것이다.
아프면 꾀병, 쓰러져야만 쉴 수 있는 것이 이주노동자 안산이주노동자센터 박찬응 소장은 “아프면 ‘꾀병’이라면서 하루 14시간씩 근무를 시키는 것이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이라며 “태국 여성노동자들은 일하고 있던 공장은 휴일없이 하루에 14시간씩 일하며 기본급이 45만5천원을 받았다”고 설명했다.(2003년 당시 최저임금은 시급 2510원으로 하루 14시간 30일 일을 하면 105만4천2백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들이 병에 걸리자, 공장주는 이들 중 일부를 방에 감금하고 이 사실을 은폐했다는 것이다. 태국으로 돌아간 여성노동자 3명의 경우에도 공항에 내버려 두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태국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공항으로 마중 나온 가족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국에서 충분히 치료받다 나왔다’고 거짓말까지 했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태국 여성 노동자 노말헥산 중독사고는 한국의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노동부는 노동자의 건강을 보호해야 한다는 자신의 직무를 유기했다”고 주장했다. 단 의원은 “피해자에 대한 개별 보상이나 업주에 대한 형사처벌 만으로는 산재사고의 재발을 방지할 수 없다”며 “미등록이주노동자에 대한 산재 예방제도의 전면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주노동자 산재,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 아노와르 지부장은 “이주노동자들이 불법 체류가 되면 임금을 받지 못하면서도, 시키는 대로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주노동자들도 노동권을 보장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노와르 지부장은 “화학약품을 제대로 쓰지 않아 손이 갈라지기도 한다. 같이 일하던 사람 중 한명은 손바닥이 갈라졌는데도 사장이 아무 책임이 없다고 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며 “심지어 아파도 사장은 일 안하면 해고한다고 협박한다”고 말했다.
평등노조 이주지부는 산재와 관련해 노동부와 여러번 면담을 했으나 노력하겠다는 답변만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노동부는 최근 문제가 된 D회사에 대해 직업별 역학조사를 실시하고, 노말헥산 취급사업장 367개소를 대상으로 17일부터 3주간 검찰합동 특별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역학조사가 노말헥산에 대한 것이어서 다른 화학물질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
“만약 우리나라 사람이 당했으면…” 노말헥산 중독으로 인한 태국 여성 노동자들의 ‘다발성 신경장애’(일명 앉은뱅이병)에 걸린 뉴스를 본 한 시민은 “우리나라 사람이 미국이나 일본에서 그런 처우를 받고 일하다가 똑같은 일이 발생하면,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사람들이라서 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만약 우리나라 노동자가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일하다가 재해를 받아도 신문 방송에서 난리가 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태국 여성 노동자 8명은 분명 ‘코리아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3D업종에서 일하면서 임금체불, 산재, 그리고 형사상 피해까지 입으며 언제까지 치료해야할지 모르는 앉은뱅이병에 걸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하기 전 정부는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했어야만 했다.
노멜헥산(n-Hexane)은 어떤 물질?
노말헥산은 냄새와 색깔은 없는 독성을 가진 유기용제다. 세척제나 다른 공업용 접착제의 소재로 사용된다. 노말헥산을 보호장비없이 사용해 신체가 직접 노출될 경우, 호흡기를 통해 신경조직으로 독성이 침투, 신경장애를 일으키게 된다.
하반신 마비가 온 태국 여성 노동자들은 LCD, DVD 부품 제조업체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밀폐된 검사실에서 하루 평균 10시간~14시간동안 마스크나 장갑, 안경 등 보호장비 없이 7개월~3년 동안 출하 직전 제품을 유기용제로 세척해왔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으로는 시화공단에서 중국동포 3명이 비슷한 증세를 보인 적이 있으나 집단적으로 노말헥산에 중독된 국내 사례는 없다. 노동건강연대 정책국장 가천의대 임진 교수는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어 이들이 완치가 가능한지 판단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후진적인 중독이 생긴 것 자체가 충격”이라며 “노말헥산 뿐만 아니라 무색무취의 다양한 유기용제가 많은 상황에서 모든 유기용제 사용업체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강서희 기자 (heeging@promethe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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