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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경숙 열사 제25주기 추도식을 맞이하여
비가오는 여름날이면 어김없이 몸소리치는 두려움에 떨며 밤을 맞이합니다. 그러다가 옆에 누워있는 남편을 보고서야 비로서 과거가 아니라 현재임을 확인하고 평정심을 찾는 것을 반복한 지도 벌써 25년째입니다. 오늘은 YH 지부장으로서 조합원들과 함께 신민당사에 진입하여 사흘밤을 뜬눈으로, 고향집 부모님과 어린동생들을 생각하며 버티었던 마지막 날입니다. 그 날 기어이 박정희 정권은 폭력으로 어린 노동자들을 짓밟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기본권마저도 무참하게 빼앗아 갔습니다. 심지어 우리는 빨갱이로 덧칠이 되는 것을 보면서 권력자의 야만성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산업화의 역군이라고 유신내내 칭송하던 그들이 순식간에 입을 닥고 빨갱이로 몰아가는 파렴치함에 치를 떨고 밤을 새워야 했습니다. 그 와중에 운명을 달리한 경숙이만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분노가 동시에 온몸을 짓누릅니다.
연일 벌어지고 있는 두 보수의 국가정체성 논란을 보면서 참으로 어이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적어도 박근혜 대표가 퍼스트레이디로서 역할을 할 때, 노무현 대통령이 판사와 변호사를 하면서 지낼때 숨막히는 공장에서 공순이로서 살아왔던 사람으로서 그 이상의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노동자들의 피와 땀, 고혈로 만들어진 경제성장을 마치 박정희 개인이 만든 것처럼 왜곡하고, 현실을 외면하고 미래만을 언급하는 역사관으로 국가정체성을 논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그동안 권력자가 만들어 놓은 ‘국가 정체성’이라는 잣대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당했나요. 그동안 국가 정체성을 제대로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름없는 사람들이 희생되었는지 아시나요. 그 수많은 국민들이 바로 국가 정체성이며, 국가 정체성은 그들이 원하던 민주주의가 아니었던가요. 그 국민들이 권력의 정체성 전쟁이라는 광장에 타의로 끌려나와 커다란 고통을 받고 살았다는 것을 다 알지 않은가요.
박근혜 대표님이 얘기하는 국가정체성은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반공주의로 돌아가자는 얘기인가요. 아니면 다시 산업역군이라고 칭송하던 성장제일주의로 되돌아 가자는 얘기인가요. 국가 권력이 개인이 생존여탈권을 마음대로 행사하던 그 ‘좋던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얘기인가요.
박근혜 대표님!
10일 오전 님이 김영삼 전 대통령을 상도동 자택에서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지난 79년 신민당사에서 우리 그렇게 처절하게 싸울 때, 님의 부친이 당시 김영삼 신민당사 총재를 만났더라면, 경숙이의 억울한 죽음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님은 극구 부인하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친일진상 규명 등을 둘러싸고 발언하는 님의 국가정체성에는 여전희 박정희의 그늘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습니다. 님이 퍼스트레이디로 있을 때, 사람잡고 경제잡는 성장이데올기에 우리는 수없이 속아왔습니다. 지금이라고 크게 달라진 것은 없습니다. 다만 과거에는 권력이 앞장섰다면, 지금은 폭력적인 시장주의가 우리를 옭아매고 있을 뿐, 다른 것은 없습니다.
님이 국가정체성을 말하기 전에 경제의 고도성장과 정치의 권위주의가 수레바퀴처럼 굴러갈 때 벌어진 수많은 일들에 대해 철저한 자기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특히 저는 경제성장이 곧 박정희라는 등식에 절대 동의할 수 없습니다. 경제는 누가 그 자리에 있더라도 노동자의 희생속에 성장했을 거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이른 바, 고도성장의 그늘이 얼마나 거짓으로 가득찼는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제대로 국민에게 알려지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님에게 감히 당부드립니다. 아버지의 독재를 시대적 요청으로 인식하는 거나, 경제성장을 박정희 작품이라고 보는 것부터 교정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님이 이렇게 국가 정체성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언급은 삼가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권위주의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유산에 대한 욕심을 제발 버리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얘기하는 국가정체성 또 무엇을 말하는 건가요. ‘유신이냐, 미래냐’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헌법을 위반하면서 이라크에 파병을 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것인가요. 박정희 정권 때도 그렇게 베트남에 파병을 했는데, 과연 ‘유신이냐, 미래냐’라고 할 수 있는건가요. 부끄럽지 않은가요. 개혁에 대한 실천은 않고 벌써부터 기득권에 안주하면서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건가요. 과거로 회귀하려는 갖가지 정책이 열린 우리당에서 쏟아지는데 과연 미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건가요.
노무현 대통령님!
님께서 2003년 2월 제16대 대통령 취임사에서 한 말이 기억납니다. 님은 “개혁은 성장의 동력이고, 통합은 도약의 디딤돌입니다.” “정정당당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로 나아갑시다. 정직하고 성실한 대다수 국민이 보람을 느끼게 해드려야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현실은 나아진 게 전혀 없습니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인 박일수씨를 비롯해 비정규직 차별과 희망을 잃어가는 노동자들의 자살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현실을 외면하고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얘기인가요. 미래만을 얘기할 수 있는건가요. 님이 선택을 강요하는 ‘유신이냐,미래냐’는 현재의 노동자, 서민의 삶이 묻어나지 않습니다. 그것은 굳이 역사학자의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현재의 우리 국민들의 삶을 고민한다면 민생을 챙기는 일부터 서둘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재벌개혁을 비롯해 각종 개혁은 선거용이었다면, 지금이라도 보수의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장밋빛 희망만을 양산할 뿐, 현실이 되지 못하는 미사어구에 불과한 말잔치에 더 이상 속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개혁과 진보는 실천을 할 때 비로서 개혁과 진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을 넘어서지 못하는 박근혜 대표나, 박정희 전 대통령을 이용하는 노무현 대통령은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권력을 두고 벌이는 게임만이 존재하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서민들의 민생은 온데 간데 없습니다. 우리 노동자 서민에게 고통과 비극을 가져다준 아픈 현대사에 대한 통절한 반성이 있다면, 국가정체성 논쟁보다는 당장 민생의 바다에서 짠 바닷물을 마시며, 고통을 나눠야 할 것입니다. 노동자 서민에게 좌절과 실패를 안겨주었던 분단도 어찌보면 두 보수처럼 ‘국가 정체성’을 빙자한 권력싸움이 만들어낸 과거의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요.
내일 마석 모란공원에서 경숙이를 만난다는 설레임 때문일까요. 솔직히 잠이 안옵니다. 그동안 같은 공순이로서 언니로서 경숙이를 만나왔는데, 내일은 국회의원이라는 옷을 하나 더 걸치고 가야하기 때문인지, 더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가서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걱정이 앞섭니다. 우리들은 하나같이 모두 시골의 가난한 농부의 자식들이었습니다. 일찍이 고향과 부모곁을 떠나 냉혹한 사회에 뛰어 들어 산업의 역군들로서 열심히 일해왔습니다. 번 돈은 그대로 고향집으로 보냈습니다. 부모님의 자식농사에 보태고, 다시는 우리처럼 못배워 고생하지 말라는 거였지, 경제성장의 단맛을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두 분께서는 이 점을 깊이 깨달아주셨으면 합니다.
2004. 8. 10(화) 밤에 최순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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