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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쿼터에 대한 단상.

  • 등록일
    2006/02/10 03:02
  • 수정일
    2006/02/10 03:02

예전에 김규항씨가 스크린쿼터 싸움에 대해 한 글귀중에

"한국 영화인들이 농성장에서 함께 흘린 눈물은 모두 같은가. 영화 자본가의 눈물과 영화 노동자의 눈물은 싸움이 끝난 다음에도 연대하는가. 싸움의 성과로 얻어지는 산업적 이익은 함께 흘린 눈물처럼 공정하게 분배되는가. 한국영화인들은 같은 민족인 동시에 같은 계급인가."

 

이 계급적인 문제의식은 2006년 지금까지도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그건. 8일 광화문 집회에서 최진욱 위원장이

"진작에 농민, 노동자 투쟁에 연대했어야 하는데 송구스럽다. 이제부터라도 적극 연대하겠다"

라는 말에 실소하게 하는 되는 이유와 동일하다.

물론 당연한 말이다.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에 반대한다면, 농민집회에도 '안성기, 장동건,박중훈,전도연' 이런 양반들이 마땅히 멋진 나들이를 했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계급이 여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내가 스크린쿼터를 반대하는 얄팍한 이유는 있다.

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을 해준 기사가 있다.

한국만화, 어떻게 무너졌는가?

 

우리가 맨날 '북한을 악의 진지'쯤으로 치부하는 007 영화만 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가?

미국놈 무찌르는 '동막골'을 볼 권리가 우리에게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란 단순히 주류영화를 소비하는데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것이다.

자신의 욕망과 저항의지를 영화를 통해서도 표현하고 소통될 수 있어야 한다. 허구헌날 인터넷에 찌질대기만 할 수는 없지 않냔 말이다.

 

그냥저냥 눈동냥만 하는 내가 봐도, 우리 주변에는 역량있는 독립영화인들과 영상활동가들이 많다. 그들이 최저생계비 근저의 수입으로도 살아갈 수 있는건, 영상이 가져다주는 작지않은 즐거움과 소통의 경험탓일 것이다. 많은걸 바라는건 아니다. 단지 그들이 지금보다 좀더 낳은 환경에 있었으면 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나의 소소한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길 바랄뿐이다.

물론 이런 즐거움이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지난한 투쟁과 무수한 열정이 소모되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경험으로 보아 스크린쿼터의 폐지는 이런 싹이 송두리체 뿌리뽑힐 거라는건 자명하다.

그런면에서, 지금 광화문에서 열변 토하는 주류 영화판의 배우/감독/평론가들이 무슨 소릴 하든가와 관계없이, 스크린쿼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의미할 수 도 있다.

 

그래서 2006년 지금 김규항의 말에 또 다시 동의한다.

 

"그래서, 스크린쿼터 축소를 찬성하는가?"

물론 아니다.
내 식구가 얄밉다고 남에게 넘길 수야..

 

ps. 이거참 딜레마다. 사실 김규항 작년부터 무척 기분 나쁜 이름이긴 한데, 그냥 문구가 눈에 쏙 들어와서.. 혹여 김규항이라는 단어에 방점을 찍고 있는 분들이 계실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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