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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었다.

  • 등록일
    2006/02/21 22:38
  • 수정일
    2006/02/21 22:38

진보넷 서버가 오늘 새벽부터 말썽이더니.. 결국 저녁무렵에 사단이 나고 말았다.

새벽에 서버가 안된거야, 뭐 백주대낮에도 서버 맛가기로 유명하기때문에 그까이꺼~~

그리고 스트리밍 서버 한대 오늘까지 세팅해야 하는데 잘 모르는거 하다보니, 여기 저기 전화 돌리고 IDC에서 밤새 고생한 후배 활동가 갈구면서, 기타 등등 이전화 저전화 받아챙기며..

심지어 오늘 민주노총 대의원대회 때문에서 서버 dual로 돌리기 위한 작업까지 겹쳐.

오후 2시까지 단 1초도 한가지 일만 한 적이 없을 정도로 정신 없던 아침 나절이었다..

 

이런걸 진정한 멀티테스킹이라 하는거다. 평소에 드라마 보기와 코딩을 동시에 수행하는 맹렬한 수련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진보넷 활동가들이 평소에 아침에 잘 안 나오기는 하지만, 오늘은 정말 한 사람도 사무실에 없어서 사실은 속으로 분을 삮이느라, 전투력이 10만까지 급상승한 덕분에 아침을 넘길수 있었다. 그런데 이 인간들이 출근하니까 상황이 종료되고 전화가 안오는 것이다.

어~~ 이건 뭐지??? 어처구니 화를 낼 명분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던 차에, 결국 진보넷 인증/메일 서버가 맛탱이가 갔다.

IDC에 전화했더니, 하드에 에러가 있다는 것이다.

허걱~~~~

하드를 날려본 경험이 있는 입장에서 하늘이 캄캄해지고 안절부절하기 시작했다.

이 즈음에서 머리뚜껑이 하늘 끝까지 열려, 열심히 IDC로 택시타고 날아갔다.

그러나 싱겁게도 하드 체크한번 하고 컴퓨터 껐다 켰더니 그냥 잘 되더군.... 이런 어처구니..

그래도 휴우~~ 다행. 뭐 인생이 다 그렇지.

라고 생각하며 이제 좀 느긋하게 책이나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지하철 역으로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다 지하철이 서 있는게 보여, 마꾸 뛰어내려갔는데 갑자기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내가 지하철 계단을 내려가 지하철 문앞으로 뛰어간 바로 그 앞, 아니 밑에, 사람이 보이는게 아닌가????

 

이게 뭐지???

지하철 운전사는 얼굴이 하해져 뛰어 나오고, 얼빵한 공익요원은 어쩔줄 몰라 계단 위 아래로 오르락내리락만 몇 번을 하고. 뛰어내린 장면을 본 사람들은 다들 도망가고, 옆에서 비명소리만 들은 사람들이 조금씩 몰려들었다.

 

사람이 죽은것이다.

얼핏 본 모양새로는 노숙자임이 분명했다.



그런 와중에 사람들 틈에 서있던 난,

딱히 무섭거나, 불쌍하거나 그러진 않았다.

대신 이상한 생각이 나를 휘감았다.

 

학교 졸업하고 이 나이 먹도록 우격다짐으로 살아왔다. 사실 생각해보면 오늘 같은 날이 특별하진 않은 것이다. 아침에 마구 울리는 전화벨 소리에 혹시 서버가 맛이 가진 않았나? 가슴이 두근거리며 잠이 덜깬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며 일어나, 매일매일 발생하는 여러 상황들을 정말 우격다짐으로, 주먹구구로 매꾸며 사람도 못만나며 살아왔는데.

 

집 한칸 없이 사무실에 얹혀 살아야 하고,

너때문에 아빠랑 싸우기도 지겹다며 징징거리는 천사같은 우리 엄마와

그나마 빛이 200이 좀 안된다는 안도감.

그리고 지독히도 끔찍한 책임감.

8년여 살아온 삶의 성적표가 이토록 초라할 수 가 없는것이다.

 

지금만 견디면 전망이 보일거라는 희망도 없이 이런 삶을 지탱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언젠가 진보넷에서도 나이 많다고 밀려 쫒겨나면, 나도 저 노숙자처럼 도시동굴속을 헤메이다 어느날 몸을 던지지 않을까.. 삶의 끝자락에 서있는 것 같은 슬픔이 갑자기 엄습해왔다.

 

갑자기 목이 메이더군...

그리곤 지난 일요일 정말 오랜만에 만난 친구/후배들과 마신 포도주가 입가에서 달콤한 그리움으로 맴돌았다.

그래서 계단을 올라오면서 몇몇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그런데 사무실에 오는 것 밖에 할게 없었다.

 

지하철을 나와 버스를 탈까 하다, 기분도 너무 울적하여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자 마자, '아저씨~ 방금 저기서 사람이 죽었어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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