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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 사이버 공간의 법이론(로렌스 레식)

  • 등록일
    2007/05/21 01:51
  • 수정일
    2007/05/21 01:51

로렌스 레식(Lawrence Lessig) 교수의 [코드-사이버 공간의 법이론](원제: Code and Other Lasw of cyberspace)을 읽고 있다.
예전에 재미없어 몇장 읽다 치운 책인데, 다시 보는데 너무 재밌다.

제목만 놓고 보면 법률이야기로 점철되어 무척 진부할것 같지만, 30분만 인내심을 가지면 미국의 성실한 자유주의 헌법학자의 사이버스페이스에 대한 탁월한 사유능력을 느낄 수 있다. - 100% 동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1. 코드는 자유가 아니라 규칙이다.
최근 온라인 공간에 대한 저작권 및 프라이버시 규제 법률안에 있어, 가장 많은 오해는 기존의 생산관계에 포함되지 않는 특수한 영역인 온라인 공간을 기존의 법률체계로만 해석하고 규제하려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레식의 글을 읽다보면 이것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인지 쉽게 알 수 있다.
코드 - 이를 프로그램이라는 것으로 축소시켜 이해해도 무방하다. 앞으로는 그런 의미로 사용한다 - 는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코드는 온라인상의 규칙이다. 포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는 포털의 서비스 약관, 즉 서비스내용과 규제정책에 따라 움직인다.
즉 코드(프로그램)의 모델은 이용자의 행동패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처음 다음카페가 등장했을때, 그리고 사이월드가 등장했을때, 그리고 네이버블로그가 등장했을 때를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문제는 이런 코드에 정부의 간접규제가 들어올 때이다. 정부가 기업을 대상으로 보조금을 통한 지원정책이나 벌금등의 규제정책을 통해 충분히 코드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이런 방식을 통해 정부의 시책이 시장이라는 대리인을 거쳐 이용자들의 행동패턴을 규제할 수 있게 된다.

 

코드는 서비스가 아니라 규칙이라는 간단한 사고 전환은, 최근 일련의 법제도 정비의 이면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최근 논란이 된 통비법 개정 논란중 핵심은 이동전화와 인터넷 접속기록(IP)에 대한 보관의무를 강제하는데 있다.

통비법 개정안은 일반 이용자가 아니라 사적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비스를 기업을 통해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서, 시민단체등의 민간영역에까지 실질적인 규제의 효과까지 거두게 될 것이다. 이는 사실상 전국민의 감시체계를 구축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의 감시체계를 벗어나는 곳은 돈많은 단체들일 것이다. 민주노총,민주노동당,참여연대등.. 이미 상당부분 체제내에서의 자율성을 보장받은 단체들 뿐이다. 대신 체제를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단체 및 개인은 완벽한 감시시스템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2. 익명성은 고발자에 대한 신분보장의 의미가 아닌 현실 계급관계의 전복을 의미한다.
사이버스페이스에 있어 낭만적인 시대였던 90년대 초/중반, 인터넷이 주목받았던 이유는 당시 인터넷 코드에 적용된 익명성 때문이다.

현실에서는 닭장차만 봐도 가슴이 벌렁거리고, 투표 - 총선/대선 뿐 아니라 위원장 선거등의 자치적인 선거까지- 때나 자신의 제한적 정치의사를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대중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정치/사회적 주제에 대하여 계급이나 성별, 그리고 신체의 차별없이 공평한 의사표현의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 익명성은 20세기 초반 '언론의 자유' 논쟁속에서 '내부고발자의 신분을 보장'이라는 소극적 의미에서,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계급적 지식 권력관계를 해체하는 적극적인 의미로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

하지만 글 작성자가 누군지 다 안다면,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간단하지 않다.

 

3. 익명성의 실질적 해체.
최근 인터넷에 있어서 익명성의 해체는, 실명제와 통비법등의 법제개편등의 정부의 노력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게시판 내부에서 이미 상당히 진행되었다.
3.1 민노당 게시판의 사례
얼마전 월간 [전진]에서 '민주노동당 게시판의 죽음'이란 글을 접했다.

이글은 현재 민주노동당 게시판이 준실명제로 운영되는 것에 대한 문제를 지적한 글이었다.

게시판 운영시스템이 게시판 소통문화에 끼치는 영향에 대한 다분히 원칙적인 글이었다. 앞에서 이야기 한대로 운영진(집행단위)의 원칙에 의해 코드가 재구성되는 것은 당연한 문제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이렇게 원칙이 정해진 조직내부의 맥락일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현 집행단위의 문제만이 아니라, 크게는 정치적 조건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당원이 아니라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고 혹시 결례가 될지도 모르겠지만, 혹 이런건 아닐까하는 가설을 세워보고자 한다.
첫째는, 당 내부의 정치투쟁의 축이 한쪽으로 정리된 것이다. 게시판의 토론과 소통이 현실일정이나 입장, 그리고 임원선거등에 현실적 구속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황.
둘째는, 이런 정치적 상황은 비록 예의없는 글들이 있을지언정 활발한 소통을 보장받고자 하는 욕망보다는 외부를 의식하는 대중의 요구가 적극적으로 제기된다. 예를 들어, 이런 글이 대외적으로 창피하다는 등...
이는 게시판운영프로그램(코드)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어떤 이용자가 글을 작성하면, 이전 게시물과의 연동속에서 이 사람은 어떤 정파, 어떤 계보 또는 어떤 정치적 입장에 있는 사람인지 선험적으로 규정되고, 글 자체 보다는 현실 정치적 역학관계 속에서 포괄적으로 독해된다.

이렇게 되면 정파의 권력구조와 무관하게 상호동등한 의사표현을 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익명성은 의미가 없어지게 된고, 홍보성 글과 일방적인 비방 글만 남게되는 것이 아닌가?


3.2 대부분의 노조게시판
대부분의 노조 자유게시판은 상호소통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투쟁의 공간이다.
노조 자유게시판에 글을 작성하는 사람은 조합원이나 비조합원 그리고 사측등 해당 노조와 이해관계속에 있는 이용자들이다. 물론, 전혀 상관 없는 이용자들의 비방성 글이 있기는 하지만, 파업 시기를 제외하고는 극소수에 불과하므로 일단 제외하기로 하자.
즉 오프라인에서는 상호 입장에 차이는 있지만, 다 예의바르게 행동하는 안면있는 사람들인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정파적이고 계산된 발언들은 때론 상호 비방으로 심지어 허위사실을 퍼트리곤 한다.
물론 게시판이란 원래 그런것이다. 문제는 이런 문제들이 앞의 경우와 달리 조합원 내부의 합의로 자정되거나 관리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게시판은 조합원만의 성지가 아니라 조합원,비조합원 그리고 사측. 즉 노노갈등과 노사갈등이 상호 교차하는 공간이라는 점때문이다. 따라서 자유게시판은 현실에서 조합원들 사이의 상호규율이나 규범이 적용되지 않는 갈등의 공간이고 대부분 자정되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삼자 모두 현재의 문제를 외부로부터 해결하고자 시도하는데, 보통 명예훼손등의 명목으로 경찰수사등의 제4자를 끌어들이게 된다. - 사실 제4자가 개입할 수도 있다는 위협만으로도 충분하다 - 이를 위해서는 자발적인 위치추적 시스템을 프로그램을 필요로 한다. 사실상 준실명제로 운영되게 된다.

 

위 두가지는 상호합의에 의해 합리적이고 활발하게 운영될 수 있으나 현실적 그렇게 운영될 수 없는 경우와, 심지어 상호합의조차 가능하지 않는 공간에 대한 예이다. 이는 마치 되돌릴 수 없는, 자연스런 진화의 과정처럼 여겨진다.

 

4. 사회통제 시스템은 국가감시 욕망과 대중의 자발적인 긍정이 상호교차하면서 완성된다.
통비법의 경우, 통신확인사실기록에 대한 정부의 일방적 요구는, 극단적으로는 유괴와 같은 범죄예방이라는 명목으로 즉자적으로 동의되기도 한다. 앞의 두가지 예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문제에 직면 했을때, 우리는 이것이 미국드라마 24시와 같은 스팩타클을 상상하거나, 범죄와 사고예방과 같은 공포정치에 매몰되어서는 안된다. 반대로 주체로서의 개인뿐만 아니라, 개인이 속한 자율적이고 자주적인 공동체의 자유가 감시되고 통제될 수 도 있는 심각한 문제에 대해 고려해야만 한다.
물론 개인이 한 사회에서 어떻게 그리고 어디까지 프라이버시와 자유를 보장받아야 하는가는 역시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규범 테두리내에 있어야 한다. 즉 온라인만을 위한 특수한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특수하게 보이는 이유는 실생활에서의 개인의 자유의 침해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약이 즉자적이고 상호대면속에서 이루어지는 반면, 온라인 상에서의 규제와 감시는 우리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무의식적인 마우스 클릭 한번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치/사상의 자유가 보장되고, 개인의 명예훼손등의 부작용을 넘어서, 계급과 성별 그리고 신체적 차이에 구애받지 않고 상호동등하게 소통할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이 어떻게 자율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지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해야하고,

더불어 법률의 규제는 물론 소수파로서의 정치적 제약, 그리고 코드(프로그램)을 통해 구현되는 구조적 제약들에 모두 저항해야 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코드]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 글이 어느덧 히말라야 산맥으로 가고 있다.

쯥. 이쯤에서 접자. 하지만 [코드]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가 많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이런 문제를 사유함에 있어 철학이나 신념의 문제 이외에, 실제로 코드(프로그램)을 통해 어떻게 감시가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틀을 제시해주고 있다.
유의미한 분석틀이긴 하지만, 한국적인 현실에서는 보다 많은 문제들을 고려해야만 할 것 같기는 하다. 레식은 이런 사이버스페이스라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에 따른 프라이버시 및 저작권문제등에 대한 헌법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한국적 현실에서, 헌법적 논의가 가능한 구조인지는 의문이다. 물론 헌법적 논쟁등의 담론공간에서의 싸움은 필요하므로 레식의 분석틀은 많은 공부가 되기는 한다. 따라서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다.

 

그 이외에도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전자인증 및 쿠키에 대한 이야기나 저작권 관련된 이야기도 무척 재미있는데 이 이야기는 혹시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은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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