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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스크린쿼터, 그리고 궁시렁

한동안 일도 좀 바쁜편이고, 딱히 끄적일만한 것도 없고 그렇다고 다른 분들이 올리신 것들을 반드시 챙겨 읽어야 겠다는 생각도 안들고, 원래 '온라인' 이란 물건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정적인 의구심 - "아무리 날고 긴다고 해도, 결국은 오프라인 세계에 종속적인것 아닌가. 제 아무리 멋진 온라인 공동체가 있다 하더라도 누가 서버 스위치만 내리면 끝장인데 온라인에 무슨 힘이 있겠냐" 는 종류의 의구심 - 도 더 강해지고 그러다보니 한 몇일 블로그니 뭐니 거리를 두고 살았더랬습니다. 뭐 그래봤자 밥벌이가 그쪽 일이기도 하고, 스트레스 푼다는 명목으로 게임 사이트도 기웃거리기는 했지만요. ^^;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외형이 어떻게 보이든간에 온라인 상의 담론이 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온라인이 노무현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고들 말하지만, 사실은 우리 사회가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할만큼의 수준으로 형성되어 있다는게 맞겠죠. 그런 관점은 노무현과 거의 정치적인 차이가 없는 김대중씨가 대통령이 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니까요. 물론 어떤 계기가 될수는 있었겠지만, 방아쇠만 가지고 총이 발사될수는 없는 이치고 온라인 말고도 방아쇠의 역활을 수행할 대체제는 충분한거죠. 껄끄럽게 들릴지는 몰라도, 이른바 '논객' 이나 '학자' 들이 세상을 바꾸는 결정적인 키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봅니다.

 

재미없는 이야기는 그만두고, 하여튼 다른 분들도 그러셨겠지만 짧은 연휴동안 고향에 다녀왔습니다. 짐승이 워낙 삐딱해서 그런지 몰라도 '민족의 명절' 인 설날에 '한민족 아닌 사람' 들이 너무 많더군요. 임금체불 혹은 실업때문에 돈이 없어서 고향에도 못 가는 사람들, 사측의 배째라 작전 때문에 파업중인 점거농성장에서 연휴기간에 혹 있을지도 모를 침탈을 걱정하며 차례를 지내는 노동자들, 여기저기서 몰려오는 사람들 때문에 노동전담 떠맡으며 따스한 아랫목이 아니라 부엌에서 명절을 보내는, 그러면서도 정작 자신의 부모형제는 보러가지 못하는 여성들. 이런 분들은 명절이 축제로 다가오지 못하니 같은 민족이 아닙니다. 이제 곧 월드컵 기간이 되겠지만, '대~한민국' 은 같이 외칠지 몰라도 결국 '대한민국 국민' 은 따로 있겠죠.

 

하여간 집에서 대충 이런 저런 이야기 듣기도 하고, 올해안에 치뤄야할 동생 결혼식에 준비할 부분도 이야기하고, 일도 좀 도와드리고 ( 그래봐야 설거지랑 청소수준 --; ), 밤에는 온라인 게임에 열중하고 하면서 뒹굴었습니다. 부모님 이혼하신 이후에 좋아진점이 있는데, 짐승이 추구하던 명절의 본래 의미 - 연휴답게 푹 쉬고 잘 놀자 - 가 실현되어 간다는 것이죠. 번거롭게 여기저기 불려다니며 밥상에 허리 조아리고 좋아하지도 않는 친척들하고 억지대화 하느라 시간낭비 할 일이 없으니 좋더군요. 안그래도 짧은 연휴, 그런 관념적 의례에 낭비할순 없는거죠, 귀찮게시리. 그럴바에야 만화책 책장 넘기는쪽이 훨씬 더 생산적입니다.

 

설 저녁에는 오랫만에 고향에 계신 아는 분들이랑 술이나 한잔 할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락을 늦게 드린 탓인지 연휴가 짧은 탓인지 연락드린 분들의 절반이 못 나오시겠다고 하더군요. 어쩔수 없이 모인 사람들끼리 간단하게 저녁 겸 백세주 한잔 하고, '영화나 보러 가자' 해서 극장쪽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만 시간이 맞는게 없더군요. 그놈의 '투사부일체' 말고는 ... 뭐 영화에 대한 평은 생략 하겠습니다. 그냥 GTO 를 주축으로 여기저기서 짜집기는 잘 했더군요. 노골적으로 넘버3 에 대한 패러디도 있었고, 하여간 참 누덕누덕 잘 기워놨습디다^^

 

그러고보니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한 이야기가 한참이군요. 뭐 저는 기본적으로 '한국영화' 에 대한 개념도 혼란스럽습니다. '실미도' 나 '태극기 휘날리며' 같은 거야 노골적으로 대한민국을 강조하지만 그 영화가 과연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해주고 있는지, 외국에서 만들어진 영화라해도 '빵과 장미' 에서 그려지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의 삶이 오히려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 아닌가 말입니다. 한국땅에서 한국인들이 한국자본으로 찍는다해도 헐리웃 영화가 될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존재하지요.

 

그렇다면 스크린쿼터는 축소 내지는 폐지 되어야 할까나? 글쎄요, 대한민국의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찍어내는 것과 스크린쿼터 축소, 폐지 사이에 무슨 연결고리가 있습니까? 오히려 '헐리웃 영화와의 경쟁' 을 더더욱 강조한 나머지 '태극기 휘날리며', '투사부일체' 같은 '대형' 오락 영화들만 찍어내려고 들 것 같은데 말입니다. 경쟁시키면 더욱 좋은 시나리오와 좋은 감독, 배우들이 배출된다고 말하는 당신, 헐리웃 영화판을 보시면 좋겠습니다. 참고로 전 '인디펜더스 데이' 이후로는 절대로 그놈의 '블록버스터' 를 보지 않아요. 심지어 매트릭스도, 반지의 제왕도, 킹콩도 말입니다.

뭐 좋은 태도가 아니라는건 알고 있지만, 개도 안 쳐다볼 필름쓰레기에 크게 데이고 나니 도저히 지갑을 꺼내들수가 없더군요. 어쩌다가 나쁜 영화가 섞여 나오는게 아니라, 어쩌다가 봐줄만한 작품들이 간간히 보이는 그 블록버스터 시장이 당신이 말하는 '경쟁의 장점' 이라면 할 말이 없어요. 그러고보니 스크린쿼터 문제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의 일환이군요. 멸망하는 길을 제시하면서 거짓 희망으로 포장하는 그 사기술은 여전하구요.

 

하여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긴 했는데, 아직 제 컨디션은 아니군요. 눈도 자꾸 감기고, 일도 손에 안 잡힙니다.

아참, 근혜 공주님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빨갱이' 열우당이 한발 물러 났군요. 정말이지, 민주노동당은 당신들에게 배워야 합니다. 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계급의 이익에 충실히 복무하는것, 그것이 '여론' 에 신경쓰고 눈치보는것 보다 훨씬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올수 있다는걸 알아야 해요. 어차피 여론을 주도할수 있는 힘은 저쪽 계급들의 소유니까요. 아무리 '부드럽게' 나가봐야, 그들로부터 지지받을순 없을거에요. 중도적인 입장을 취하면 더 많은 표 나 지지율을 획득할수 있다는 환상은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과거 민주당이, 현재 열우당이 그렇지 않다는것을 보여주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죠. 어차피 중도적 입장이란것 자체가 존재할수 없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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