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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노동영화제 - 자본에 경고한다 - 다녀왔습니다 _(__)_

* 가져온 이미지 및 동영상은 모두 '노동자 뉴스 제작단' 이 주최하는 '제9회 국제노동영화제' ( http://www.lnp89.org/9th/index.php ) 홈페이지에서 가져온 것임을 밝힙니다.


짐승이 지난주를 맞이하여 세웠던 가장 중요한 계획은 부산에 다녀오는 것! 부산시내를 어슬렁 거리며 부시반대, APEC 반대 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었다. 버뜨,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전주부터 압박이 심해진 회사 업무량. 18 일 집회는 금요일이라 뭔가 핑계를 대고 빠져야 하는데 그게 될듯 될듯 하다가도 안 되게되는 그런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당. 흐미... 회사를 옮기던가 아님 일인 시위라도 하던가 ... ㅠㅠ;


부산에 내려가는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 반, 아쉬운 마음 반 으로 지내던차에 애인님께서 '그러고 있지 말고 노동영화제 같이 가자' 고 꼬셔주는게 아닌가! 맞다, 노동영화제가 있었다. 특히 작년 같은경우 '볼리바리안 혁명' 이나 '점거하라 저항하라 투쟁하라' 같은 수작들을 본 덕분에 온라인에 끄적일 거리는 물론이고 오프라인 포럼에서도 한 동안 더듬더듬 떠벌일 밑천이 되어준 그 노동영화제, 빠질수 없는 행사중에 하나였다. 왜 내가 이걸 잊고 있었을까 ㅎㅎ; 그렇지만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이런저런 사정들이 겹치면서 결국 마지막날인 일요일 저녁 나절부터 참여할수 있었다.

 


 

도착하자 마자 시작하는 바람에 급하게 들어가서 봐야 했던 '그들 역시 투쟁한다' 라는 작품은 아르헨티나의 영상집단인 '노동자의 눈' 이 2005 년 새롭게 제작한 작품이다. '노동자의 눈' 은 우리나라의 '노동자 뉴스 제작단' 과 비슷한 활동을 하는 영상운동 단체인데, 아르헨티나 민중들의 투쟁이 활발하게 분출하고 있을때 투쟁에 적극적으로 결합하면서도 한편으로 투쟁의 모습들을 영상에 옮기는 작업을 진행해왔다. 특히 실업 노동자 운동인 '피케테로스' 에 적극적으로 함께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다.


영화는 아르헨티나 지하철 공사가 민영화 된 이후 대량의 정리해고 ( 영화속 노동자의 말에 의하면 본시 4700 명에 달하던 노동자들은 민영화 이후 불과 1500 여명 규모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 및 남아있는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는 압력,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증가된 노동시간 및 저 임금 등에 맞선 지하철 노동자들의 투쟁의 기록이다. 그들은 지하철을 멈춰세우고 역 을 점거한채 파업농성을 진행하고, 자본은 공권력을 동원하고 여론을 조작하여 이들을 공격하려 하지만 'IMF의 모범생' 이라던 아르헨티나 경제가 바로 그 신자유주의 정책때문에 파탄에 빠져든 후 대통령을 권좌에서 내 쫓고 생산현장을 장악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아르헨티나 노동자 민중들은 오히려 이들을 지지하고 지하철 노동자들은 값진 승리를 거둔다.


영화는 자본과 맞서는 지하철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동시에 또 한가지 중요한 축으로 노동조합 관료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지하철 노동자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노동조합의 집행부들은 이들의 문제를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고, 결국 현장의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투쟁을 조직하게 된다. 파업이후에도 노조관료들은 자본과의 협상에만 주력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그들은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투표조차 진행하려 하지 않는다. 결국 협상안을 설명하러 간 일단의 노동조합 지도부들이 현장노동자들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여 쫓겨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장면을 보면서 자연스레 작년 여름의 궤도연대 파업이 생각났다. 당시 서울 지하철 노동조합은 오랫동안 '노사상생' 을 앞세우는 '서울모델' 이란 기만적인 모습으로 노동자들의 불만과 저항을 무마하는 역활을 해 왔던 배일도 위원장 ( 현 한나라당 국회의원 ) 체제를 뒤짚고 보다 좌파적인 지도부를 구성하고 있었으나 파업농성이 한참 잘 진행되고 있던중 여론과 공권력의 탄압을 두려워한 노동조합 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업무복귀 선언때문에 투쟁은 패배로 끝나고 말았던 기억이 있다. 이런 사례들은 보다 투쟁적, 좌파적인 지도부 가 아니라 현장조합원에 의한 통제력을 갖추는것이 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례가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가 끝나고 잠깐의 휴식시간을 가진 뒤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의 관람이 있었다. 미국 역사상 최대의 기업범죄로 기록된 미국내 7 대 기업에 속하던 엔론사의 2001 년 파산과 그 파산을 둘러싼 숨겨진 이야기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는 이 작품은 올해 선댄스 영화제 심사위원상 후보작에 올랐으며 미국에서는 극장 개봉까지 했다고 하는데, 개봉관 내부를 관객들의 한숨소리로 가득 매웠다고 한다. 엔론사의 파산은 2 만명의 명의 직원들을 실업자로 만들어 버렸다.


엔론사는 실제로 수익이 거의 없을때에도 이를 숨기고 '가상이익' 을 부풀려 선전함으로서 기업의 가치, 곧 자사의 주식가를 올리는 방법으로 허상만을 거대하게 살찌워 나갔다. 엔론사의 직원들은 대부분의 연봉을 자사의 주식으로 받아야 했고 그 주식은 파산과 함께 순식간에 휴지조각만도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엔론의 최고 경영진은 각자 적게는 몇천만 달러, 많게는 몇억달러에 달하는 주식을 사전에 매각하여 10억 달러 이상의 돈을 챙겨 사라질수 있었다. 그들은 투자자와 노동자들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순간까지 어떠한 경고도 발하지 않고 허상만을 부풀려 나갔다. 영화속에서 나오는 이야기처럼, 선장과 항해사들은 이미 구명보트에 옮겨타고는 선원과 선객들에게 "아무런 문제없다, 절대 침몰하지 않는다" 고 주장하는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모든것을 상품화 하고자 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사례였다. 심지어 그들은 인터넷 대역폭이나 날씨마져도 상품화 하려고 했다 ( 물론 그러한 시도들은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 캘리포니아 전력공급이 민영화 된 이후 그들은 전기의 값을 올리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발전소를 멈추곤 했으며 이 때문에 지역민들은 엄청난 불편과 높은 전기요금을 감수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엔론의 트레이더들은 “캘리포니아가 태평양으로 꺼져 버리면 전기값이 더 뛰어 오를텐대...” 라고 말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 전력난의 사례는 영국 철도와 마찬가지로 민영화의 대표적인 폐해로 기록되고 있다.


'엔론 : 세상에서 제일 잘난 놈들' 은 자본주의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좋은 영화다. 하지만 다소 긴 러닝시간과 엔론사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중심적으로 다루어 지지 못하고 전직 간부들 및 '전문가' 들의 인터뷰만 반복하고 있는 모습은 영화를 다소 지루하고 늘어지게 만들어 버렸다. 솔직히 중반을 넘어가면서 짐승은 잠시동안 졸기까지 했다. (-,-;) 동시에 비슷한 시기에 파산을 맞은 대우자동차가 생각나지 않을수 없었다. 막대한 부정축재를 저지른 김우중 회장은 당시 김대중 대통령의 비호를 받으며 해외로 도망찰수 있었고 경찰은 형식적인 수배만 남발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은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바로 그 경찰의 진압봉에 머리가 깨져 피투성이가 된 몰골로 공장으로 돌아가기 위해 싸워야 했다.


영화가 끝난뒤 역시 잠깐의 휴식시간이 있었고 이제 마지막 폐막작만을 남겨둔 상태였다. 상영관 밖에서 잠시 담배를 피우던 도중 극장안의 커피숖에서 야외 휴계실에 붙여준듯한 포스터를 발견했는데, 내용이 가관이었다. 보건복지부 명의의 그 포스터는 '여성, 담배를 버리고 날개를 얻다' 였다. 담배를 버린다고 날개를 얻는다는 말도 안되는 억지소리 ( 담배 안핀다고 우리의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보건복지부면 복지부답게 복지에 대해서 신경좀 쓰지 그래? 허구헌날 담배만 가지고 지랄하면 우리의 삶이 나아지냐? ) 도 문제였지만 그 앞에 '여성' 은 무슨 이유로 붙는단 말인가? 여자가 담배피는게 그렇게 꼴보기 싫은가, 덕분에 애인님에게 담배불 붙여주던 나는 그녀의 날개를 꺽어버린 셈이 되었다. 에라 ㅆㅂㄹㅁ -,-+

 


폐막작은 '유언 - 박일수 열사가 남긴 56일간의 이야기' 이었다. 작년 2 월, 울산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 업무를 맡고 있던 인터기업 소속의 박일수 씨가 ‘하청노동자도 인간이다’ 라고 시작되는 유언장을 남기고 분신자결 했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인간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명제를 실현시키기 위해 한 젊은 노동자는 분신을 택할수 밖에 없었고, 올해 초에는 울산 건설 플랜트 노동조합의 노동자들이, 얼마전에는 하이스코 노동자들이 힘든 투쟁을 전개해야만 했고 지금도 숱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싸워야 할수 밖에 없다.


영화는 현대중공업 사측과 노동자 사이의 대립을 다루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투쟁에 연대하지 않고 오히려 사측의 입장을 대변한 정규직 노동조합의 행태에 대해서도 강경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다. 아예 노골적으로 '우리는 어용이니까' 라고 말하며 연대를 거부하고, 그 죽음을 앞에두고 '냉정한 평가' 운운하며 열사라는 칭호조차 붙이기 거부하고, 경찰, 사측과 함께 박일수 열사의 딸을 납치해 회유하려 하는가 하면 영안실을 침탈해 그곳을 지키고 있던 비정규직 노동조합의 활동가를 폭행하고 현수막과 텐트마져 철거해 버리는 현대중공업 직영노동조합의 지도부와 열사투쟁을 전체 비정규직투쟁으로 확대하지 않고 협상으로만 풀려했던 대책위원회 등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는것이다.


옳바르게도 민주노총 금속연맹에서는 작년 9 월 현대중공업 직영노동조합에 대해서 제명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현대중공업 직영노조 지도부는 '제명 결정은 계획된 음모' 라며 '선처를 구걸하지 않겠다' 라는 태도를 취하였다. 사실상 그들로서는 어용노조로서의 정체성에 부합하지 않으려 하는 노동자들을 고립시키기 위해서라도 제명조치를 오히려 반겼을지도 모를일이다. 기존 언론들이 '전투적 노동운동 거부한 현중 노조 제명' 이라며 그들을 지지해준것도 같은 이유 아니겠는가. 대기업 노동자는 '노동귀족' 이라며 몰아붙이기 바쁜 그들 언론이 말이다.


박일수 열사를 둘러싼 투쟁은 56 일 동안 펼쳐졌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는 너무나도 많고 크다. 이미 지난 2003 년 한진중공업 김주익 열사의 추모제에서 민주노총 김진숙 지도위원이 '저들이 강한것이 아니라 우리가 단결하지 못해서' 패배하는 것이라고 외쳤던 말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주노동자, 여성노동자의 문제에 적극적으로 연대하고 함께하지 못한다면 결국 정규직 노동자들의 미래도 암담할수 밖에 없다.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조합 활동가는 집회에서 '하청노조의 힘이 이것밖에 안 되서' 부족한 합의안에 동의할수 밖에 없다고 했지만, 그것이 어찌 사내하청 노동조합의 역량 문제란 말인가.


내가 본 작품들의 숫자가 몇편 되지 않아서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아무튼 올해 노동영화제에서의 최대 화두는 노동조합 관료들의 타협적이고 보수적인 모습에 맞서기가 아닌가 한다. 제9회 노동영화제의 모토는 '자본에 경고한다' 였지만, 자본만을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하고 있는것은 아니였다. 관료화 되어가는 운동의 지도부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투쟁, 아래로부터의 통제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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