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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같은 선거 이야기

1. 당 게시판에 심심찮게 올라오는것이 '선거 참패' 론 이다. 글쎄, 열린우리당이야 이번 선거에서 '참패' 했음은 주지의 사실이고, 민주노동당은 어떨까? 2002 년 지방선거와 비교하면 일부 약진한것도 분명히 사실이고, 선거 목표로 잡았던 당 지지율 15% 달성 - 300 명(?) 당선 에 못 미치는 것도 분명히 사실이다. 그렇다면 패배라는 평가도 승리라는 평가도 사실을 온전히 설명하는 단어가 될수 없는것 아닐까?


물론 기대에 못 미쳐서 안타깝고, 더 잘할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던것이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노무현 정권에 대한 기층민중의 실망과 분노를 잘 이용해서 반사이익을 얻은 한나라당 으로의 표 몰림 현상과 또 한편으로 열린우리당 정권에 실망한 사람들이 주로 한나라당의 대항마 개념으로 민주당을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선거막판 '민주당 바람' 이 미미하나마 불었던것을 감안한다면, 민주노동당은 좋지 않은 조건속에서 나름대로 선전했다고 말할수 있다. 선거결과에 실망할수는 있지만, 패배 라는 단어는 부적절하다.


2. 어쨌거나 이번 선거를 '패배' 라고 규정하는 입장에서 여러가지 이른바 '당 쇄신 대안' 들이 게시판에 난무하고 있다. 선거 결과를 계기로  어떤 방향으로 당이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당원 각자가 스스로의 생각을 가지고 토론이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다. 문제는 이 '대안' 들이 진정 민주노동당을 민주노동당 답게 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수 있는 것들인가 하는 것일텐데, 오히려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발언들이 몇 가지 있는거 같아 조금 끄적여 보기로 했다. 


우선적으로, '선거패배' 론 을 전제로 '운동권 정당 탈피' 라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선거 시즌을 전후해서 끊임없이 나오는 이야기중에 하나이긴 한데, 이번에는 여기에 다소 살이 붙었다.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하면 데모하는 정당으로 안다' 는 것이다. 만약 정말로 사람들이 민주노동당 하면 데모하는 정당 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이건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자랑스러워 해야 할 일이다. '데모 하는 정당' 이라는 말은 곧 '투쟁하는 정당' 이라는 뜻이고, 그정도의 후한 평가를 받으려면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에서 한결같이 함께하며 싸우지 않는 이상 얻어낼수 없는 인식일 것이다.  사실 민주노동당이 '데모하는 정당' 즉 '투쟁하는 당' 으로 인식될만큼 대중투쟁에 열성적으로 함께 했는가 하고 자문해보면 그다지 자신있게 대답할 수 만은 없을것이다. 절박한 처지에 내몰려 싸울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 단적인 예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 민주노동당이 투쟁하는 당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 했는지는 솔직히 다소 의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경기도 남양주시의 사례를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주공아파트가 밀집된 지역 인근에 쓰레기매립장을 지으려는 정부에 맞서 주민들이 반대행동에 나섰고 정부는 이를 용역깡패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민주노동당은 이에 맞서 주민들과 함께 대응했고, 투쟁이 선거 시즌까지 쭉 이어지면서 보수적인 지역 후보 11 명과 접전끝에 기초의원을 당선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투쟁하는 정당' 은 민주노동당에게 핸디캡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발전시켜야 할 '이미지' 로 만들어 내야할 무엇이다. 현재 자신의 삶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에게 우선적으로 지지받을수 있다면, 민주노동당은 더욱 착실히 성장의 폭을 넓혀 갈수 있다.


'운동권 정당 탈피' 와 같은 맥락으로, 민주노총과의 결별 내지 '당내 지분 축소' 를  주장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민주노동당의 노동계급정당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이른바 '대중정당' 이 되어야  선거에서 승리할수 있다는 것이 이 주장의 골자인데, ( 심지어 당명에서 '노동' 이라는 글자를 제외하자는 이야기도 있다 ) 사회변혁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두지 않거나 심지어 배제한채로 의미있는 사회적 변화를 끌어낼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야 말로 계란으로 바위치는 격이 될 뿐이다. 선거에서도 마찬가지로, '노동계급 정당이 아니라 대중정당' 임을 내세우는 순간 열린우리당 몰락의 수순을 그대로 밟아나갈 따름에 지나지 않을것이다.


지난 당직선거때 박노자 교수는 '한국은 전체 인구 중에서 임금노동자가 65~70% 정도 된다. 이 각계각층의 임금노동자를 중심으로 해서 당을 꾸려 간다 해도 이미 시민 대다수의 이해 관계를 표방한다고 볼 수 있는데 굳이 그 성격을 훼손시킨다는 것은 극히 올바르지 못한 판단이다' 라고 말한바 있다. 정말이지, 민주노동당은 노동자들의 이익에만 충실히 임한다면 충분히 집권하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중정당', '국민정당' 등의 몰계급적인 방향을 대안으로 제시하는것은 당의 존립이유 자체에 대한 부정임은 말할것도 없고 '선거승리' 조차 바라볼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람들은 울산에서의 선거패배를 내세우며 '더 이상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당이 성공할수 없음' 을 역설할지도 모르겠으나, 울산에서 단체장 후보들이 탈락한 부분은 분명 뼈아픈 것이지만 한편으로 광역의원 후보 3 명 및 기초의원 다수의 당선, 또다른 노동자 밀집지역인 거제도 및 광주 광산구 등에서 광역, 기초 의원들이 다수 당선 되었음은 오히려 계급중심의 투표가 더욱 유효해 졌다는 점을 입증하고 있다.


3. 다른 한편으로 이번 지방선거가 한나라당의 '싹쓸이' 로 끝남에 따라, 이른바 '반 한나라', '진보개혁세력 연대' 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올수도 있다. 이미 선거직전에 진보진영 일부가 이와 같은 주장을 펼쳐서 논란이 붙은바 있지만 열린우리당 정권과의 공조, 연합, 타협 등등에 민주노동당이 주력한다면 보잘것 없는 성과만을 얻을 뿐이라는 점이 이번 지방선거 결과를 통해 잘 드러나고 있다. 향후에도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은 여전히 대다수 사람들의 삶을 옥죄는 정책들을 한나라당과 함께 진행할 것이며, 이는 다음 선거 역시 열린우리당 정권에 대한 심판론이 선거의 주요 이슈로 등장할 것으로 이어질것이 분명해 보인다.


따라서 민주노동당은 보다 확고하게 노무현 정권과 우익들에 대해 날카로운 각을 세우고 그 왼쪽에서 반대하는 포지션을 취할 필요가 절대적이다. 그렇게 할 때만이 당은 더욱 광범위한 지지를 얻어 성장할수 있다. 만약 그러지 못하고 열린우리당 과의 정책공조나 '반 한나라 전선' 따위에 동참한다면 그야 말로 열린우리당과의 동반 몰락만이 민주노동당에게 남겨진 길이 될 것이다.


4. 기존 언론들은 끊임없이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의 '동반 몰락' 을 이야기 하며 기층민중들을 기만하고 있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민주노동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름대로 선전했으며 승리나 패배 어느 한가지로 규정할수 없는 결과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사실 - 목표치보다 밑도는 당선자수 및 지지율 - 만을 부각시키며 선거패배에 따른 당 지도부 책임론을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선거결과가 나올때마다 일희일비 하며 지도부나 갈아치우는 것은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민주당 같은 보수정당들의 전매특허요, 선거주의 정당들이나 할 짓이다. 


민주노동당이 지금 착수해야할 일은 '지도부 물갈이' 가 아니라 당면한 투쟁들에 최대한으로 함께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6월 임시국회 에서 다뤄질 비정규직 개악안 대응, 한미FTA 협상 대응,  하이닉스 매그나칩스 장기 농성 및 코오롱의 크레인 농성, KTX 여승무원의 단식 농성등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장기파업사업장 지원,  평택미군기지확장이전 대응 등에 주력하겠다는 문성현 대표의 말은 옳다. 단 그 말들이 말로만 끝나지 않고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당원들이 당 지도부에 강력한 압력을 행사할 필요가 있을것이다.


선거평가는 냉정하고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 정당이어야 하고 투쟁하는 정당이어야 하지, 선거결과에 일희일비 하는 정당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야지만 진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로 바꾸어 낼 수 있는 현실적인 힘이 생길것이다. 민주노동당을 지지해준 12% 가 바라는 것이 바로 그런 세상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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