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바 영역으로 건너뛰기

철조망 치고 살아야 하나 - 사일런트 힐

* 영화 전개내용에 대한 고자질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내용을 아는 영화는 도저히 볼 수 없는 분은 본 포스팅을 아니 보시는게 좋습니다. ^^;

 

사일런트 힐 = '조용한 언덕' - 반대말은 '폭풍의 언덕' 이겠죠? ( 거짓말! -0-

 


수많은 영화잡지에서 되풀이된 질문, 과연 사람들이 호러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서움을 느껴보려고 간다고 대답할거 같고, 개중 영악한 사람들은 인간사회의 금기와 그것을 건드리는 호러물의 법칙에 대해서 주워섬기려 할 것이다. 같은 질문이 나에게 돌아온다면 쫌 애매하게 머뭇거릴지 몰라도 "재밌어서" 그리고 "아이디어들이 좋아서" 보러 간다고 대답할거 같다. 최근에는 영화를 찍는지 안 찍는지도 모르겠지만, '좀비오' 라는 작품으로 유명한 브라이언 유즈나 감독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기발하고 독특한 크리쳐 들 을 생각해내는 아이디어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기발한 아이디어에 대한 만족감은 우연히 접했던 '사일런트 힐' 이라는 게임에서도 비슷한 정도로 충족될수 있었다. 게임은 영화와는 또 다른 방법으로 게이머를 몰두시키기 때문에 솔직히 게임 내내 뭐가 튀어나올까 싶어 무섭기도 했지만, 무섭다는 감정보다 앞섰던것은 그 게임만의 독특한 크리쳐 (괴물) 들 이 주는 만족감 비슷한 느낌이었다.


이미 '바이오 해저드' (레지던트 이블) 을 비롯해서 숱한 호러게임의 명작들이 스크린 속에만 들어가면 망가지는것을 봐 온지라 ('하우스 오브 데드' 의 경우는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사일런트 힐' 이 영화로 만들어 진다는 소식을 들었을때 반가움보다 솔직히 걱정이 앞섰던것이 사실이다. 다행히도, 비쥬얼에 관한 한 '사일런트 힐' 은 충분히 합격점을 줄 만 했다.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 중에서 이만한 작품은 없었으리라. 안개에 덮힌 분위기와 음산한 마을, 크리쳐들에 대한 묘사는 찬사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비쥬얼에 관한 한' 이라고 써버러니 뭔가 스토리 같은것은 별로인것처럼 보인다. 사실, 스토리나 주제에서 그렇게 뛰어난 영화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주된 주체들이 모두 여성이고, 남성들은 (주인공인 로즈의 남편처럼) 무기력하고 겉돌기만 반복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기는 하지만 잃어버린 딸을 찾기위해 무시무시한 크리쳐 사이를 그야말로 목숨 내놓고 좌충우돌 헤집고 다니는 주인공이나, 유괴범에 의해 버려진 소녀와 함께 3 일을 버텨낸 적이 있다는 여 경찰의 모습은 식상할 정도로 전형적인, 자식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모성애에 대한 신화를 더 강조하고 있다.


어린아이와 관련된 거의 모든 공포영화에서 그랬듯이, '사일런트 힐' 역시 자식을 지키지 못한  '어머니' 에 대한 원망이 빠짐없이 등장함으로서 결과적으로 양육에 대한 모든 문제를 가정과 개인에게 떠 넘기는 국가체제에 손을 들어주는 정치적으로 분류하자면 '보수적 호러영화' 의 범주에 속하고 만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내러티브에 대해서는 원작 게임에서 많은 부분을 차용해온 만큼 나름대로 무난한 진행을 보여준다. 하지만 아쉬운 면도 있는데, 예전에 광신자들에게서 알레사를 구해낸적이 있던 경찰관의 경우는 무언가 스쳐지나간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전체적인 구조로 볼 때 그 경관이 이야기에 끼어들수 있는 틈은 별로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한 배역으로 보기에도 뭔가 찜찜한 모습으로 남아버렸다. 

 

복수. 이 장면을 말하고 싶었던건 아닌디, 이미지가 없어서리 -_-;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끝나고 함께 갔던 마님에게 고백한 그대로, 나는 이 영화에 10 점 만점에 8 점을 주고 싶다. 이유는 매우 간단한데, 한마디로 '알레사가 복수를 할 수 있었기 때문' 이다. 이제껏 영화에서 소설에서 그리고 게임에서, '복수한다고 해서 너의 상처가 아물지는 않아' 라는 등등의 허울좋은 사탕발림에 넘어가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기나긴 시간동안 자신이 받은 고통을 또다시 혼자 삭히며 소멸해간 그 수많은 피해자들을 떠올려보자.


우리 알레사는 그와 같은 멍청한 선배들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 그녀의 복수는 그 수법이 잔인했던 만큼이나 구경하는 짐승이 짜릿한 전율을 느낄만큼 너무나도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주었다. 위에서 말한것 처럼 영화는 큰틀에서의 보수적인 정치성을 갖고 있지만, 한편으로  신 과 종교의 이름을 빌어 순결이데올로기를 내세우고 이에 복종하지 않는, 즉 통제할수 없는 대상은 끔찍한 방법으로 죽이려 했던 자들이 다른 곳도 아닌 '신성한' 교회에서 자신들이 짓밟은 대상에 의해 학살당한다는 설정은 너무 매력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 노무현, 황우석 광신도들도 같이 좀 쓸어가버렸으면 좋으련만 -,- ) 만약 다른 호러영화나 소설이나 게임에서처럼 주인공 아줌마가 알레사의 복수를 제지하고 이른바 '정화' 시켰다면 10 점 만점에 3,4 점 도 주기 아까웠을것이 틀림없다. 

 

너희들 다 가~ -,.-


영화는 '복수는 나의 것' 을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경계를 이야기 하고 있기도 하다. 크리쳐에게 쫓기는 로즈와 그런 로즈를 찾는 남편은 물리적으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세계로 나뉘어져 있으며 이 경계는 어찌해볼 도리가 없는 무엇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알레사가 복수를 가하는 수단이 하필이면 철조망 이란 것은 충분히 의미 심장하다. 철조망 이야 말로 간단하면서도 함부로 넘어갈수 없도록 세계를 나누는 장애물이 아니던가. 어쩌면 감독이 경계 혹은 단절 같은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솔직히 나 하고 광신도들 ( 어떤 종류의 광신이건 간에 ) 사이에는 철조망이 몇겹정도 쳐져있는것이 더 평화로운 풍경일거 같다. 논쟁으로 돌아설수 있는 대상이 아님을, 로즈언니 하고 알레사 언니가 잘 보여주지 않았는가 말이다.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