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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개악안 저지하라 / 노동운동 위기와 대안 / 투쟁이 중심이어야 한다

다함께 48 호

비정규직 개악안 저지하라 / 노동운동 위기와 대안 / 투쟁이 중심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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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개악안 저지하라 - 전지윤

노무현의 악랄한 궤변이 해를 넘겨 계속되고 있다. “고용의 유연성을 풀어 주지 않으면 …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다.]”(2004년 12월 27일 <경향신문> 인터뷰)
“비정규직 문제는 … 정규직, 특히 대기업 노동조합의 양보와 협력이 절실합니다.”(신년 기자회견)
노무현은 나아가 “이 문제의 궁극적 해법은 개개인의 직업 능력을 개발하는 데 있[다]”며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무능력자인 양 모욕했다.

 


이런 해괴한 논리를 바탕으로 노무현 직속 규제개혁위원회는 정리해고 요건 완화를 의결했고, 노무현은 “비정규직 보호 법안이 조속히 통과돼서 정규직과의 불합리한 격차를 해소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하고 비정규직 확대 법안의 통과를 재촉했다.
‘기간제로 3년이 지나도 정규직과 동등한 처우를 하라는 게 아니’며 ‘계약 기간 이전에 퇴사하면 손해배상’(노동부 차관 정병석)까지 해야 하는 법이 곧 죽어도 ‘보호’법이란다.

 

지난해 하반기에 ‘국가보안법 폐지 사기극’을 벌이며 민중운동 진영을 자기 편으로 묶어 둔 뒤 파병 연장안, 공무원 악법 등을 통과시킨 노무현은 이번에도 같은 술책을 부릴 듯하다.
2월 임시국회 때 다시 ‘국가보안법 폐지 사기극’을 펼치며 민중운동 진영을 혼란과 분열에 빠뜨리고, 그 틈에 비정규직 확대 법안을 통과시키려 할 것이다.

 

우리는 두 번 속지 말아야 한다. 이미 “우리당 견인을 통한 개혁법안 처리는 환상임이 분명”해졌고 “노무현 정권의 개혁은 정치적·도덕적으로 파산”했다(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
비정규직 확대를 막기 위해서도, 진정한 민주개혁을 위해서도 노무현에 맞서야 한다. 
최근 민주노총 중앙위가 비정규 법안에 맞서 ‘2월 총파업’을 결의한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중앙위는 동시에 노사정대표자회의 참여도 의결했다. 이런 ‘두 길 보기’는 우려스럽다.

 

한편, 열우당에서는 “포지티브 리스트(몇몇 업종을 지목해 파견제를 허용하는 방식)의 폭을 현실화하고 넓혀 내용은 네거티브 리스트(몇몇 업종만 제외하고 파견제를 전면 허용하는 방식)와 똑같은 효과를 내야 한다”(열우당 의원 김형주)는 기만책이 떠오르고 있다.
혹시라도 일부의 우려처럼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위에 들어가 이런 기만책을 받아들이고 전임자 임금 지급 등을 얻어 내는 타협을 하는 일은 절대 있어선 안 된다.

 

얼마 전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 무섭다”고 한 김춘봉 씨의 “죽음은 정규직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과정과 그 결과를 너무나 참혹하게 보여 주고 있다.”(<노동과 세계>)
이런 미래를 멈추기 위해서도, ‘그들만의 노동운동’이라는 역겨운 비난을 박살내기 위해서도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이번 투쟁에 모든 것을 걸고 앞장서야 한다.

 

 

노동운동 위기와 대안 - 전지윤

노동운동이 위기라는 주장이 차고 넘친다. 민주노총이 단위노조 대표자 6백여 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64퍼센트가 ‘민주노총이 위기’라고 답했다. 

 

문제는 위기의 원인과 대안이다. <조선일보>는 “한국 노동운동의 조로(早老) 현상은, 소수의 특권적 노동자들이 극한적 파업 수단을 무기로 생산성을 뛰어넘는 고임금과 고용보장 요구를 계속해 … 빚어진 특수 현상”이라고 말한다(2004년 12월 16일치 사설). 따라서 노동운동이 이제 파업과 투쟁을 접고 양보와 타협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파업과 투쟁을 회피하고 양보와 타협에 길들어 온 게 위기의 원인이다. IMF 이후 주요 대기업 노조 지도자들은 전투적 파업에 나서기보다 양보와 타협을 거듭해 왔다.
예컨대, 현대차 노조는 1998년 파업 때 식당 여성 노동자들의 해고를 받아들이며 파업을 끝냈고, 2000년부터 사내하청 형태의 비정규직 확대에 투쟁으로 맞서지 않았다. 심지어 2001년 효성·태광 파업 때는 연대 파업 전선에서 이탈해 버렸다.
이런 양보와 타협은 일부 현장노동자들의 냉소와 사기저하를 낳았고, 비정규직 확대를 가져와 노동자들을 분열시켰다. ‘죽음의 공장’이 된 현대중공업은 이런 양보와 타협의 극단적 결과이다.
지배자들은 위기의 원인을 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셈이다.

 

한편,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원보 이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노동운동이 노동조합원의 이기적 관점에서 벗어나 … 대폭적인 양보를 포함한 연대임금 정책과 사회개혁 요구를 임단투의 중요한 전략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매일노동뉴스>)
그러나 ‘조합원들의 실리만 일부 지켜내는 양보와 타협’이라는 문제에서 ‘조합원들의 실리도 양보하는 타협’을 대안으로 이끌어 내서는 안 된다. 대안은 ‘전체 노동자의 이익과 사회변혁을 위한 파업과 투쟁’이 돼야 한다.

 

민주노총은 노동운동의 위기에 맞서 ‘사회공공성 쟁취와 비정규직 정규직화, 한반도 평화와 통일’ 등 4대 과제를 내걸고 ‘2006년 5월 준비된 전조합원 총파업’을 계획하고 있다.
투쟁을 미리 계획하는 건 좋지만, 독일 여성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가 지적했듯이 파업을 “호주머니 속에 접어 넣어 두었다가 마음먹으면 꺼내 쓸 수 있는 일종의 주머니칼처럼 생각”한다면 제대로 될 수 없다.

 

2006년 ‘세상을 바꾸는 파업’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강력한 파업과 투쟁 속에서 노동자들의 조직과 의식을 높여 나가야 한다.

 

 

투쟁이 중심이어야 한다 - 전지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로 들어와 사회적 합의에 동참해야 한다는 압력이 커지고 있다. 노동부 장관 김대환과 노사정위 위원장 김금수는 “민주노총은 조건 없이 노사정위에 복귀하라”며, 민주노총이 불참하면 ‘사회적 대타협을 포기하겠다’고  을러댔다.

 


1월 6일에는 좌와 우를 모두 포괄하는 1백65명의 ‘사회원로’들이 ‘기업의 고용창출 노력’과 ‘노조의 임금 인상 자제’ 등의 내용으로 협약을 맺어야 한다는 “2005 희망제안”을 발표했다. 
1월 14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는 ‘사회적 교섭’을 제안하고 노사정대표자회의를 재개한다고 의결해 대의원대회에 상정했다.

 

민주노총 김태현 정책기획실장은 노사정위가 “[우리의] 요구를 사회 쟁점화하는 단위”라며 “[노사정위 참여] 때문에 민주노총이 지지부진하고 투쟁에 졌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 ‘자율과 연대’ 그룹의 최병천 씨는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89퍼센트의 노동자들의 요구를 대변하는 통로”로서 노사정위 참여를 주장한다.
그러나 노사정위의 성격과 지난 경험을 돌이켜볼 때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한국에서 노사정위는 경제위기 때 노·사·정이 ‘고통을 분담해 경제를 살리자’는 이데올로기적 역할을 해 왔다. 지배자들은 민주노총 지도부의 발을 노사정위에 묶어 두고 현장 노동자들을 공격했다.  
1998년 1기 노사정위에 참여한 결과는 ‘우리 요구의 사회 쟁점화’가 아니라 정리해고와 근로자파견제의 통과였다. 2기 노사정위도 은행·기업 퇴출과 구조조정의 도구였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나 노·정 협상에서 잘못 합의한 근로자파견제나 노동시간 단축은 89퍼센트의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손해만 끼쳤다.
노사정위 참여가 투쟁을 가로막지 않을 거라지만 협상에 중심을 두고 연연하면 투쟁에 소홀해지기 마련이다. 바로 지난해 하반기에 민주노총 지도부가 노사정대표자회의에 참여하면서 투쟁이 제대로 조직되지 못했고, 노무현은 LG정유·궤도파업 직권중재로 뒤통수를 쳤다.
이런 경험들 때문에 노사정위에 계속 참여해 온 한국노총의 조합원 여론조사에서도 64퍼센트가 ‘노사정위가 노동자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개혁 부도’를 선언한 ‘뉴(New) 노무현’이 합리적 중재자 역할을 할 리도 없다. 더구나 지금 노사정위에서 민주노총을 기다리고 있는 건 비정규직 확대 방안과 ‘해고는 쉽게, 파업은 어렵게’ 하는 노사관계 로드맵 등이다.
물론 자본주의에서 노동조합은 불가피하게 협상을 병행해야 한다.
하지만 협상은 투쟁이 뒷받침될 때만 효과가 있다. 따라서 협상에 중심을 둬서는 안 된다. 게다가 지금 같은 불황기에 협상에 의존하는 건 재앙이 될 것이다.

 

만약 ‘사회적 교섭’ 참여를 결정하더라도, 그것에 중심을 두거나 그것 때문에 투쟁을 제한해서는 안 된다. 또 노사정위의 본질이 공개되면 언제든지 나와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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