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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포인트 - 죄책감과 공포가 부른 광기

 

정말로 오랫만에 극장에서 영화를 본것 같다. 그런데 따져보면 지난 휴가때 대구에서 시실리 2km 를 본지 겨우 보름남짓한 기간이니까, 올해 극장에 들린 절대 편수는 적을지 몰라도 그리 오랫만인것은 아니다. 난 왜 보름만에 간 극장이 그리 낫설었을까? 그건 어쩌면 '혼자' 극장 나들이 한것이 반년도 더 전의 일이어서가 아니었을까. 만약 정말로 그렇다면 이건 진짜 미스테리다. 난 혼자들어간 극장의 상영작이 아니면 '영화봤다' 는 기분을 못 느끼는 불감증에라도 걸렸단 말인가.

 

거기다 이번엔 혼자 들어간 극장이 어색함마져 주었다. 다들 끼리끼리 앉아있는 좌석들을 보노라니 어쩐지 왕따된 느낌이다. 이건 정말 생소한 감정이다. 여지껏 괘 많이 독수공방식 영화감상을 즐겼건만 단 한번도 이런적은 없었는데, 도대체 왜 그랬을까? 내게는 알 포인트의 미스테리를 푸는것보다 이 미스테리를 푸는것이 더 중요하게 느껴진다.

 

알 포인트란 로미오 포인트를 줄인 말이다. ( R 이 로미오 할때 R 이란다 ) 로미오 하면 생각나는거 없는가? 그렇다, 로미오와 줄리엣. 바로 그거다. '로미오가 몰래 줄리엣을 만나러 간다' 는 문학구절에서 파생된 군대 작전 용어로, 비밀리에 수행되는 구출작전이 벌어지는 지역을 로미오 포인트, 즉 알 포인트 라고 한단다. 참고로, 영화속에는 이런 설명 안나온다. 영화 광고가 실린 신문에 실린 친절한 설명이다.

 

베트남 어느지역인가에 신기한 땅이 있단다. 뭐 이것도 제작사측의 설명이라 그리 믿을것은 못되지만, 그 지역으로 작전하러 들어간 부대는 실종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처음에 프랑스 식민지군이 한날 한시에 그곳에서 몰살당했고, 그 이후로 그 지역에 들어가는 병력은 죽거나 실종 되어버린다고 한다. 영화속에는 '손에 피 묻힌자, 돌아가지 못한다' 는 비석마져 보인다. 상당히 흥미진진 하면서도 무서운 설정이 아닐수 없다.

 

알 포인트를 보려고 마음먹은것은 휴가를 맞아 대구로 내려가는 버스안에서 본 씨네21 에 실린 공수창 감독의 인터뷰를 본 이후다. 공수창 감독은 인터뷰에서 알 포인트를 공포영화가 아니라 반전 영화로 봐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런 컨셉으로 찍고 싶었다고 말했다. '찍었다' 가 아니라 '찍고 싶었다' 라는 표현은 '그러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것은 감독의 역량이 모자라서 그러지 못한것과, 흥행을 중시하는 제작사의 입김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을수 있기에 나는 두가지 경우중에 어느쪽인지 궁금해져 버린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러지 못했던' 이유는 둘 다다. 맑스는 국가간의 전쟁이란 항상 해당국가의 하층 노동계급들끼리 적으로 만들어 죽고 죽이며 적대감을 심어주는 결과를 낳는다고 지적했었다. 알포인트는 거기까지는 나름대로 잘 묘사하고 있다. 고향에 있는 홀어머니에게 사드릴 송아지를 위해 작전에 자원하는 어린 병사는 마치 취업과 경제난을 걱정하며 월 200 ~ 300 정도의 월급을 바라보고 이라크로 지원하는 사병들같다. 그리고 이라크 저항세력이 그러하듯, 베트남의 평범한 사람들은 그러한 가난한 사병들에 대항해서 서로간에 죽고 죽이는 피비린내나는 숨바꼭질을 펼칠수밖에 없다.

 

그러나 알 포인트는 예전의 '플래툰' 이나 '하얀전쟁' 들이 가졌던 반전의식에서 크게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 전쟁의 잔인함, 부도덕성, 비인간성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비판하고 있으나 전쟁의 근본적인 원인과 모순에 대한 비판은 빠져있다. 송아지를 사기위해서 작전에 나서는 군인은 보여주지만 베트남의 우리 군대가 그곳에 파병된 진정한 이유, 박정희가 보다 많은 미국의 원조를 얻어내기 위해서 침략전쟁에 팔아치운 용병단에 불과했다는 부분은 빠져있다. 자본주의 제국열강들이 무엇때문에 그 전쟁을 일으켰으며 그로인해 얼마나 많은 기업들이 성장할수 있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알 포인트를 온전한 반전영화라고 부르기가 어려운 이유다.

 

호러? '그토록 기다려온 품격높은 호러무비' 라는 식의 카피가 아직도 눈앞에 어른어른 하는데, 사실 한국의 호러영화들중 '고품격' 을 꼽으라면 당연 '소름' 이다. 형체없이 밑바닥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그 소름끼치는 경험을 다시 느끼게해줄 '고품격 호러무비' 는 아직 나온적 없다. 그건 알 포인트도 마찬가지다. 알 포인트가 주는 공포감은 어느정도 예견된 것들이고, 가시적인 부분들이다. '순수 호러' 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덤벼드는 영화들과의 경쟁에서 '퓨전 호러' 가 더 큰 말초적 충격을 주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이 '호러' 가 무서움으로 승부하려면 '소름' 을 겨냥하고 극복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종합적으로 알 포인트는 명작의 반열에 올라서기는 내공도 부족했고, 거기에 제작사측이 자꾸 무서운 장면을 넣으라고 강요한것처럼 보이면서 본격적으로 흔들린다. 마지막 부분의 귀신은 안 나왔어도 될뻔했고, 감독도 굳이 그것을 넣으려고 한것은 아닌거 같다. 심리적으로 충분히 압박감을 줄수 있는 상황이었으며, 이전까지의 장면들에서 실제로 군인들을 해친것은 굳이 '귀신' 이라기 보다는 죄책감과 공포감으로 인해 스스로 미쳐가고 서로 죽이는 모습들이었다는 점에서 볼때 후반부의 그 귀신은 아무래도 좀 생뚱맞을수 밖에.

 

이런저런 악재들은 있지만, 그래도 알 포인트는 나름대로 봐줄만한 영화다. 지나치게 평가절하한것 같지만, 사실 전쟁의 상처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잘 묘사되었고 감독의 의도대로 일정부분 '반전' 의 메시지도 충분히 담고있다. 소재도 참신했고, 배우들의 연기나 극중 구성도 무난한 편이다. '그토록 기다려오지'는 않았지만 블록버스터와 액션과 코미디가 판치는 여름 영화판에 그나마 봐줄만한 영화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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